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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Dec 26. 2022

봄볕 하나

한국작가회의 겨울호 통권 138호 손바닥소설

  그날은 연분홍 꽃비가 내렸다. 파란 하늘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 알록달록하게 진열된 새빨간 과일들, 그리고 까맣고 맑은 눈동자가 잊혀지지 않던 그날, 그날은 봄이었다.      




  복지기관 3층, 햇살지역아동센터. 그곳은 나의 첫 일터였다. 작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맞은 편에는 방과후 교실 두 개와 급식실이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돌봄 일지 및 관찰 일지 작성과 기타 서류 정리였다.      


“야! 내가 먼저 줄 섰잖아. 뒤로 가!”

“싫은데? 내가 먼저 왔는데?”

“아니거든? 니가 방금 옆에서 끼어 들었잖아!”

“아니거든? 내가 조금 먼저 왔거든? 와, 깜둥이가 간식 먼저 받을려고 새치기를 하네!”

“야! 너 뭐라고 했어!”

“깜둥이가 새치기를 했대요, 줄도 못선대요. 메롱, 메롱.”

“놀리지 마아아!”

“뭐 내가 틀린 말 했냐?”

“하지 마아아아아! 으아아아앙!”     


  입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은혜라는 아이가 들어왔다.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동그랗고 큰 눈동자, 무엇보다 돋보이는 건 까만 피부 색이었다. 아빠가 없는 은혜는 한국인 엄마와 단둘이 산다고 했다.      


  어딜가나 있는 짓궂은 녀석들은 우리 센터에도 있었고, 하필 은혜의 울음보가 터진 날, 은혜 엄마가 아이를 일찍 데리러 왔다. 교실 문 앞에 서서 그 광경을 다 지켜보셨다고 한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한참을 서 계셨다는데. 은혜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다시 서럽게 울었고, 은혜 엄마는 판다처럼 달라붙은 은혜를 안고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집으로 돌아가셨다. 다음 날 은혜는 결석을 했다.      


“쌤, 저번에 말한 교육 프로그램 기획 어떻게 돼가고 있어요?”

“네, 시설장님. 지역 도서관과 연계해서 그림책 읽기 활동을 해보려고 해요. 성품교육이나 인성 관련 동화책 위주로 놀이 체험도 병행하고, 그러면 어떨까요?”

“음. 좋은 생각인 것 같네요. 우리 센터에도 다문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으니까 다 같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책을 선정해 봐요. 아 맞다. 보니까 은혜가 아직 안 왔던데.. 오늘 화요일이면 5교시 하는 날이잖아요. 지금 와 있어야 될 시간 아니예요?”

“네, 안 그래도 다른 아이들은 다 왔는데, 아직 은혜가...”

“어제 울면서 간 것 같던데. 신경이 좀 쓰이네요.”

“네. 많이 속상했을 것 같아요.”

“잘 적응하게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이 녀석들이 진짜, 내가 다시 한 번 단단히 주의를 줘야겠어요.”

“저, 시설장님. 은혜 어머니께 전화 드려 봤는데 오늘 학교도 결석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요?”

“어머니 과일가게에서 하루 종일 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속이 아주 많이 상했나보네.”

“저, 그래서 말인데요. 제가 잠시 은혜네 다녀오면 어떨까요?”

“네? 지금요?”

“네, 길 건너 임대 아파트 상가에서 은혜 어머니께서 과일가게를 하시는데요. 별로 안 멀더라고요. 속상한 일 있다고 이렇게 안 와버리면, 혹시라도 습관이 될까봐 걱정되기도 하고요. 누군가 찾아가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요.”

“쌤이 마음이 쓰이나 보네요. 하지만 아이가 결석할 때마다 매번 찾아가볼 순 없다는 것도 아시죠? 현실적으로 그래요. 그렇지만, 뭐, 은혜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또 어제는 속상할 만한 일도 있었고 하니까, 겸사겸사, 한 번 다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네요. 오후 교육 프로그램에 차질 없이 늦지 않게 돌아오시고요.”

“네!”     


  임대주택 단지에는 4월의 벚꽃이 만개했고, 간간이 꽃비가 쏟아졌다. 커다란 벚꽃나무 아래, 은혜 엄마의 과일 가게가 보였다. 가게로 들어서자 누군가 쪼르르 달려가는 소리가 들렸고, 작은 방 문이 쿵 닫혔다. 은혜였다.      


“안녕하세요.”

“어머, 복지사님. 안녕하세요.”

“은혜가 학교도 안 갔다고 하니, 걱정이 되어서요. 오늘 오후에는 은혜가 너무너무 좋아하는 만들기 수업 있는 날이거든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한 번 데리러 와 봤어요.”

“아유, 선생님 이렇게 마음 써주시고, 정말 감사해요.”

“별 말씀을요. 저희가 더 세심하게 돌봐야지요. 어제 은혜를 놀린 친구도 반성 많이 했을거예요.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제가 잘 지도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어머, 아니예요. 선생님 잘못도 아니고, 이런 일이 처음 있는 것도 아니고. 은혜가 무슨 잘못이 있겠어요. 다 제 탓입니다, 제 탓.”

“아유, 어머니,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냥 다 제 잘못 같고, 미안하고, 정말....”

“어머니, 은혜 잘 적응하고 센터에서 좋은 시간 보낼 수 있도록 제가 최선을 다해 도울게요.”

“네, 선생님. 말씀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요.”

“잠시, 은혜 얼굴 좀 보고 와도 될까요?”

“그럼요, 그럼요. 저기 작은 방에 있어요. 은혜야, 선생님 왔는데 잠시 나와 볼래? 은혜야, 은혜야?”

“싫어! 안 볼거야! 센터 안 갈 거야!”     


  작은 방에 있던 은혜는 갑자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다. 도망치는 은혜를 붙잡으려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열심히 은혜를 뒤따라 달리고 있었다. 가게 앞 인도를 따라 질주하다가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잠깐만 기다려 달라는 내 말에 은혜가 힐끔 돌아보며 멈췄다. 잠시 눈물을 쓱 닦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이제 멈추나 싶었는데 다시 고개를 획 돌리고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있었다. 제발 이제 그만 멈춰 줬으면 싶었다. 평범한 봄날의 어느 화요일 하교 시간, 재빠른 아이 하나가 아파트 단지 안을 달려갔고, 저질 체력의 사회복지사 하나가 버겁게 그 뒤를 추격했다. 가까스로 멈춘 은혜가 놀이터 시소를 붙잡고 헉헉 거렸다. 나는 아파트 화단 옆 나무를 붙잡고 헉헉 거렸다. 우린 서로를 바라보며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은혜는 재빨리 미끄럼틀 계단을 올라가더니 동그란 원통형 미끄럼틀 안에 숨어버렸다. 나는 숨을 고르며, 목과 이마에 진득하게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은혜도 더 뛸 생각은 없어 보였다. 나는 미끄럼틀 아래 쪽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았다.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난감했다. 문득 늦지 말라 하시던 시설장님 말씀이 떠올라 시계를 봤다. 어느 새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곧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은혜야, 선생님이 너 막, 그냥 억지로 데리고 가려고 온 건 아니니까, 절대 걱정하지 마. 알았지? 그냥 선생님 너랑 이야기하러 온 거야. 네가 어제 너무 속상했을 것 같고, 선생님도 네가 안 오니까, 네 생각이 많이 났거든.”

“.........”

“은혜야, 있잖아. 세상엔 말야. 진짜 너무너무 이상한 일도 많고, 진짜 해도 해도 너무한 일도 많아. 어제 진짜 속상하고 화 많이 났지? 선생님은 네 마음 다 이해해. 선생님이 대신 다시 한 번 사과할게.”

“.........”

“근데, 막 화나고, 짜증나고, 막 힘들고 그래서 다 보기 싫을 수도 있어. 그래. 그런 마음 충분히 이해해. 근데 있잖아. 화나고, 짜증나고, 막 힘들다고 해서, 그럴 때마다 이렇게 피하고 도망치면 안 돼.”

“왜 안 돼요?”

“응?”

“화나고, 짜증나고, 막 애들이 나 힘들게 하는데, 학교도 안 가고 센터도 안 가면 아무도 나 안 놀리잖아요! 왜, 왜 피하면 안 되는데요?”

“어, 그게.”

“아무도 보고 싶지 않아요. 싫어요!”

“그러면 안 돼 은혜야. 있잖아. 그렇게 피하고 도망치면, 너만 너무 너무 손해야. 선생님도 화나고, 짜증나고 그런 일 진짜 많았거든. 근데 그렇다고 학교도 안 가고 사람들도 다 피하고 그랬으면, 지금도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걸? 그게 뭐야, 그렇게 지내면 정말 불쌍하지 않을까? 너무 슬프고 불쌍한 일 아닐까?”

“선생님.”

“응?”

“선생님도 내가 불쌍해 보여요?”

“뭐?”

“선생님 눈에도 내가, 아빠도 없고, 생긴 것도 쌔까맣고, 그래서 막 불쌍해 보여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네가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나도 모르게 소리를 꽥 질렀다. 유모차를 밀던 아이 엄마와, 양 손 가득 비닐봉지를 들고 지나가던 어르신이 잠시 멈춰섰다. 관자놀이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참새 몇 마리가 종종거리며 지나갔고, 숨어 있던 은혜가 슬쩍 일어섰다. 맑고 커다란 은혜의 눈망울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은혜야, 선생님은 네가 하나도 안 불쌍해. 너는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그리고, 키도 크고,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는 정말 멋진 친구야. 선생님 눈에 너가 얼마나 멋지고 대견스러운지 몰라! 선생님은 너를 만나서 기쁘고 너랑 앞으로도 잘 지내고 싶어. 진짜야! 그러니까, 그런 생각 하지 마. 내가 불쌍해 보인다느니, 막, 그런 이야기는 하지마. 선생님 너무너무 속상하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막, 소리를 질러 버렸네. 놀랐다면 미안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열변을 토했다. 뭐라고 계속 횡설수설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서 달래서 엄마에게 돌려보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시설장님 말씀처럼, 현실적으로 생각했어야 했다. 내가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은혜는 도망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결석을 하더라도, 나중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센터에 왔을 수도 있다. 너무 마음만 앞섰던 것 같아 은혜 어머니께도 죄송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었다.      


  손목시계를 한 번 더 확인했다.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더 오래 있어주고 싶지만, 다음 수업이 있어서 선생님은 이제 그만 가야겠노라고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다고도 말했다. 은혜는 스르륵 미끄럼틀에서 내려왔다.      


  다시 과일 가게로 돌아가던 길, 은혜는 말없이 터벅터벅 나를 따라왔다. 은근슬쩍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기도 했다. 새빨간 사과가 진열된 과일가게가 보일 때였다. 갑자기 은혜가 내 손등을 톡톡 두드렸다. 그리고 나를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만들기 수업 하러 가도 되냐고. 은혜의 말에 깜짝 놀란 건 나였다.      


  파란 하늘 사이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눈부시던 봄날이었다. 그날의 우스꽝스런 경주가 헛되진 않은 모양이었다. 돌아가는 길에 혼자가 아니어서, 나는 새어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 봄볕 하나가 은혜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던 것도 같다. 참 따뜻한 봄이었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작가회의 회보에 손바닥 소설을 싣게 되었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 한 명을 상상하고, 그 한 사람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적어보았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즐겁게 읽으셨길.....^^


요즘, 정말 많이 춥습니다. 얼마 전에 시작한 유일한 근력운동이 필라테스였는데, 이마저도 감기가 걸린 뒤로 못 간지 일 주일이 넘어가네요. 지금은... 딸래미들까지 감기 기운에 유치원을 못가고.... ㅎㅎ 하루 하루가 쉽지 않습니다.^^ 삼시세끼 누가 밥차려주는 기숙사에서 글만 썼다면 명작이 나왔을까요? ㅎㅎ 글쎄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보다 나아진 무언가를 찾아 기운을 내 봅니다. 몸의 근육 만큼 마음의 근육도 늘어난 듯 합니다. 내가 바꿀 수 없는 일들에 연연해 하는 건 시간낭비겠지요. 언제나 중요한 건 "지금 나의 최선은 무엇인가, 어떻게 균형을 잡고 한 걸음을 더 나아갈 것인가" 에 대한 나만의 답이니까요.


2022년이 지나갑니다. 어쩌다 이 글이 한 해를 마무리하는 글이 되었네요. 가슴을 데워주는 봄볕 하나, 어쩌면 그건 지금 이 순간 내가 고백할 수 있는 진짜 감사에 있는 것 같아요. 우리에겐 주어질 새로운 한 해에도, 더더욱 감사한 일들로 가득하기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을 축복합니다. 행복한 연말, 따스한 겨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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