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센 강변의 작은 책방
오늘, 2024.06.17. 오전 10:30분, 울산 <센 강변의 작은 책방>에서 두 번째 북토크를 열었다. 두 번째 시집으로 진행하는 두 번째 북토크여서 더 의미가 남다른 유월의 어느 날이었다.
독자분들은 훨씬 일찍 오셔서 책방에 앉아 음악을 듣고 계셨다. 첫 번째 북토크에도 오시고 두 번째 북토크에도 와주신 음악을 사랑하시는 어느 독자분께서, 다들 기다리시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신청곡을 받아 틀어주고 계셨다. (세상에, 감사하여라!) 열 시 이십 분쯤 도착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여덟 분의 참석자들과 아리따운 책방 대표님이 싱그럽게 반짝이고 있었다.
이삼십여분 동안, 나의 삶에 있었던 ㅡ 내가 지나쳐온 인생의 역사를 두서없이 펼쳐 보였다. 그다음엔 참가자 분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이 뽑은 시 한 편, 그리고 “각자의 인생의 역사”를 나눠주셨다. 시 같은 삶을 듣는 동안, 삶을 시처럼 걸어가는 일상 속 영웅들의 멜로디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잠시 찔끔거렸다.)
참가자 분들이 오늘 해주셨던 이야기들이다.
- “지각”이라는 작품이 너무 좋아… 캡처해서 주변에 돌렸습니다. 시인님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달리기에 비유하셨는데요, 저는 뛰기는커녕.. 겨우겨우 걸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요. 기권 안 할래요 저도. 포기 안 하고 저도 쭉 걸어가 보려고요.
- “리트머스 종이가 빨개집니다”에서 같은 트라우마를 돌아보았고, 이 사회에 여전히 내재된 폭력성에 저항하고자, 나로 살고 싶어서, 늦은 나이에 방통대에 들어가 이것저것 공부하는 중입니다.
- 표제작 “사는 게 만약 뜨거운 연주라면”을 읽으면서 상처에 매몰된 상태가 아닌, 그로부터 벗어난 객관적이고 담대한 시각이 읽혀서 좋았습니다.
- 제 삶의 굴곡들은 이러이러했는데, 이 시집의 제목처럼, 음악과 함께하는 요즘의 삶이 의미 있고 즐거운 삶이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 소설가는 북토크를 하면 플롯과 사건, 캐릭터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저도 소설가인지라, 소설 이야기 뒤에 숨어서 내 자신의 이야기는 잘 안 해왔던 것 같습니다. 오랜만에 시집 북토크에 참여해서 자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꾸밈없는 이야기를 듣고 감명받았습니다. 나를 드러내는 것이 얼마나 용기 있는 일인지 모릅니다. 저 역시 나를 가감 없이 내보이는, 그런 소설을 한 번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요즘 놀이공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자유이용권”이란 시가 너무 와닿았어요. 꼭 놀이기구 많이 타고 뽕을 뽑아야 좋은 걸까요? 그냥 즐겁게, 마냥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손길”이라는 시가 제일 좋았어요. 내게 내밀어준 손길들을 떠올려 보았고. 나도 누군가에게 손길이 될 수 있을까 싶었습니다.
- “저기요 불행씨”를 읽으며 웃음이 났어요. 내 삶에 오는 불행에게 이런 유머를 날리며 견딜 수 있다면.. 정말 잘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 저는 이러이러하게, 이렇게 살아왔거든요…. 그래서 그냥 눈물이 나요. ㅠㅠㅠ
시를 쓰다 보면 내 속을 탈탈 털어 내 뒤집고 적나라하게 까보이는 작품을 쓸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다. 사실 시를 쓰려면 이런 태도로 정직하게 써 내려가는 것이 옳다. 나의 두 번째 시집은 영화 “블루 자이언트” 속 대사처럼, “내장을 까보일 정도로 자신을 드러내는” 시들이었다.
오늘 참가자분들께 힘주어 말한 부분이 있다.
“폭력과 차별을 대물림하지 않고,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꾸준히 시를 쓰며 걸어올 수 있었던 것은, 제가 잘나서가 아니었습니다. 제 삶에 존재했던 수많은 손길들 덕분이었습니다. 혼자 일어설 수 있는 삶을 살게 되기까지, 수많은 타인들의 손길, 누군가의 일으킴이 존재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손길들이 분명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 스스로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손길이 되어주세요. 그런 돈 안 되는 일들이 세상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6/28일 10AM 에는 경남 교육청 양산 도서관의 북적북적 책방산책 프로그램 작가로 양산 <기빙트리> 책방에서 북토크를 진행한다.
7/12일 7PM 에는 경주 독립서점 <아니마아니무스>에서 힐링&치유 콘셉트로, 맛있는 걸 먹고 마시며, 시집이야기 / 시 이야기 / 삶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차이나미에빌의 말 “우리는 이를 악물고 희망하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된다.” 는 글과 함께 실려있는 김해자 시인의 시, “바위 뛰기 펭귄”의 첫 행을 옮겨 적으며 오늘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저 크레바스 너머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 바위 뛰기 펭귄 같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나는 떨어져도 으깨지지 않는 배로, 미끄러져도 발딱 일어서는 불룩한 영혼을 싣고, 배로 밀고 나아간다. 저 ㅡ 먼 ㅡ 너머에, 내 마음이 희망으로 일렁이고 있을 미지의 생을 향하여.
ㅡ 때가 되었다 가자, 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