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의와 존중은 기본, 더 나아가 공감합시다

더욱이, 문인이니까, 그럴게요

by 양윤미

문학의 전성기는 70~80년대라고들 한다. 70년대는 문인들이 시대를 이끌던 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4년에 태어난 MZ세대인 나는 아쉽게도, 기저귀를 찬 채 먹고 자고 싸느라 바빠, 시집을 가슴에 품고 다니진 못했다.


문인들이 당대의 지성인으로 주목받고 수많은 독자들이 문학을 읽었던, 문학의 전성기를 경험한 세대는 아마도 베이비붐 세대들일 것이다. 사회 문화적 분류로는 산업화 세대(1955~1959년대), 86세대(1960~1969년생), X세대(1970~1974년생)로 나눌 수 있다.


산업화 세대는 전쟁으로 망가진 국가의 재건을 책임졌다고 볼 수 있다. 그들이 성공과 부를 갈망하는 것은 세대 전체의 숙명과도 다름없었다. 86세대는 80년대에 대학을 다닌 60년대생이란 의미지만,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다수의 인구를 사회에서 배제시킨 단어이기도 하다. 60년 대생들 중 직장과 사회에서 '중졸자', '고졸자'라는 이유로 무시와 차별을 받던 사람들은 더더욱 열등감에 기인한 학벌이라는 가치에 함몰되었다. X세대가 과도한 교육열에 시달렸던 것도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이라 볼 수 있다.


그 세대를 지나 내가 태어났다. 감사하게도 보다 민주적인 사회였고, 불행히도 폭력과 차별의 잔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나의 부모 세대가 선보이는 가부장적인 태도, 남성과 여성을 향한 차별, 권위주의와 권위 의식 등을 MZ세대들은 자라면서 온몸으로 체험했다.


MZ세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에서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2019년 기준, 통계청 자료를 보면 MZ세대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34%, 1,7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MZ세대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그들은 부모 세대보다 가난한 최초의 세대이자, 고학력 엘리트들이다. 이들은 너무 쉽게 퇴사하고, 자기 좋을 대로만 사는 욜로족이라는 이유로 빈축을 사기도 한다. 이들이 우울증과 불안장애, 공황장애에 걸리는 현상에 대해서 윗 세대들은 고생을 안 해봐서 그렇다며 조롱하기도 한다. 여전히 베이비붐 세대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한국 사회에서, MZ세대는 그들과 달리 위아래의 수직적인 개념보다 수평적인 프레임을 선호한다. 직장 상사라는 이유로 무조건 머리를 숙이지도 않고, 나이 많은 웃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따르지도 않는다. 우리 모두는 같은 인간으로서 동등하고 평등하다고 믿는다.


이전 세대의 학벌에 대한 집착적인 교육열 덕분에 MZ세대는 배울 만큼 배웠다. 자라면서 체감한 다양한 부조리에 대한 경험으로 인해, 무엇이 이 사회를 망가뜨리고 자신들을 위협하는지도 본능적으로 안다. 그래서 다양한 방식으로 권위에 저항하고, 폭력에 순응하지 않는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것처럼, 회사라는 거대한 조직을 바꿀 수 없으니 사표를 던지고, 도무지 바뀔 것 같지 않은 사람들과 거리를 둔다. 문학판도 예외는 아니다.


특별히, 문학의 길을 걷는 MZ세대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날의 토론 주제는 “문학계, 바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였다. 사실 어느 업계(?)이든 그 속에서 오랫동안 잔 근육을 다져가며 살다 보면 보이는 게 있다. 그들은 문학계에서 서로를 “선생님”으로 높여 부르는 것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지에 대하여, 글 노동자에게 원고료를 주지 않는 어처구니없는 관행에 대하여, 표면적으로는 글만 본다고 하면서 은근슬쩍 다른 조건들로 서열을 나누는 차별에 대하여 열변을 토했다. 모 대학 문예창작과를 나온 친구는, 현재 절필하고 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산다고 했다. 교수 라인을 따라 짜고 치는 판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란다.


칼보다 강한 펜을 든 문인들에 대해서는 기대치가 남달라서 그런지, 더 쉽게 실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왠지, 문인이라면 기본적으로 시대를 통찰하는 안목을 갖췄을 것만 같고, 반드시 동시대 사람들의 삶을 공감하는 자세를 가졌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불이익보다 불의를 더 견디지 못할 것만 같은 인물, 그런 사람이 꼭 문인인 것만 같기 때문이다. 문인들이 말을 함부로 하거나, 험담을 하거나,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행동을 할 때, 지극히 계산적으로 자신의 이익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본질이 파악되는 때에, 기대치가 높았던 만큼 실망감도 크게 몰아친다. 나 역시 내가 어떤 순간엔 지극히 졸렬하고 옹졸하고 치사하고 유치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두렵고 겁이 나서 시인이라는 소개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내가 문학계에 발 들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2021년, 전국 문학상 실태 조사를 하겠다는 기사가 연이어 나올 정도로 유명했던 손아무개 사건이 일어났다. 타인의 단편 소설을 도용해 제목만 바꿔 제출함으로써, 5개의 문학상을 거머쥔 실로 어처구니 없는 사건이었다. 손아무개 같은 날도둑놈은 차치하고서라도, 심사자들은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심사를 했길래 표절을 두 눈 뜨고 못 알아보았단 말일까. 차라리 그간 관행이란 이름으로 알게 모르게 자행되어 왔던 상 나눠먹기가 오히려 나았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심각한 경기 침체와 취업 불안, 결혼과 출산 기피, 1인 가구의 증가, 단절과 불통, 정치의 퇴보와 혐오의 극심함이 서로를 더욱 타자화시키고 있다. 로봇이 사람을 대체하고,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있다. Chat GPT의 출시로 특정 직업군들은 사라질 위기에 놓였으며, AI가 ‘아직은’ 하지 못하는 직군들만이 겨우 살아남아 있다. 코로나라는 전염병이 휩쓸고 지나갔으며, 여전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나지 않고, 기후 위기와 환경의 오염도 극심한 상태다. 지금을 살아가는 현대인 중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타자화에 저항하고 싶다.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나 역시도 가장 듣고 싶을 이야기를 적어내고 싶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한다고, 꼭 그런 말들을 적어내고 싶은 것이다. 아직 완전히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말이다.


내 안에만 갇혀 있으면 결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자신이 어떤 틀 안에 갇혀 있는지조차 모른 채, 수십 년을 비슷한 글만 앵무새처럼 생산해 내는 문인은 자폐나 다름없다. 시대를 읽지 못하고 젊은이들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 배워야 한다. 발전이 아닌 퇴보를 거듭한다면 자신들만의 리그 속에 갇혀 자정 능력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글을 쓰는 작업이 칩거를 동반하는 폐쇄성을 지닌다고 하여도, 모든 예술은 그 예술을 향유하는 독자와 관객이 필수적이며, 예술은 일방적인 말하기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대화이며 소통이다. 그래서 문인은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배우고, 시대를 통찰하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와 다른 시선, 나와 다른 세대, 나와 다른 견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해야 한다. 그래서 질투가 날 만큼 멋지게 쓴 소설에 반하고, 눈물 나게 아름다운 시들을 사랑한다.


어떤 이에게는 이미 꺾인 노땅이고 어떤 이에게는 아직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랗게 어린 MZ작가인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언제나 기도한다. 나도 모르게 당연히 여기던 옳고 그름의 프레임에서 벗어나기를. 나와 다른 시선에 관대하기를.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겐 더더욱 너그럽기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글을 쓰기를. 그래서 세상이 한 뼘이라도 나아지기를. 무엇보다, 공감하는 인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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