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오늘이라는 계절』의 첫 낭독회를 앞두고 커피와 간단한 과자를 사들고 갤러리로 갔다. 기존에 있던 티비를 옆방으로 옮기고, 전시장에 있던 배너와 커다란 페이카를 옮겨오니, 낭독회장 분위기가 조금 살아났다. 테이블을 박박 닦고 있으니 큐레이터님이 오셔서 도와주셨다. 마당에서 불어온 흙먼지들을 같이 쓸어내고, 은은한 음악도 틀어두었다. 와주시는 분들께 드릴 디카시 엽서 세트를 꺼내 두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참여자들을 기다렸다.
낭독회를 어떻게 진행하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마음을 열고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 현대 사회에, 시간을 내어 발걸음 해주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전체적인 흐름은 처음으로 지은 시에서 가장 최근에 쓴 시 순서로 낭독하고, 편안한 나눔과 감상을 이끌어내리라는 어렴풋한 가이드라인을 잡았다.
시 낭독회를 참여해보고 싶었다는 큐레이터님을 포함하여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 네 분이 더 모였다.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환영인사를 드렸다. 시와 커피를 좋아하신다던 동화작가님께 "비엔나커피"를 읽어달라고 부탁드렸다. 시 한 편을 읽고 나누는 감상이 내게 더욱 감동이었다. 잡념이란 단어로 시작해서 생을 사랑하는 자로 마무리되는 시가 참 희망적이라던 말씀은 큰 힘이 되었다.
각자가 읽고 싶은 시들을 읽고 돌아가면서 감상을 나누다 보니 한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돌아가신 엄마를 생각하며 쓴 시를 소개했는데, 자신의 마음속에 있던 아픈 이야기를 꺼내 주시던 분도 계셨다. 시 한 편이 위로가 되셨기만을 마음으로 기도했다. 최근작을 읽고 싶다고 하시던 분께서 "오늘이 슬픔이어도"를 낭독하셨다. 두 번째 연에서 낭독을 잠시 멈추시는 해프닝도 있었다. 너무 많은 공감이 되어서 더 읽어나갈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단어 하나하나에 힘이 있다고 말씀해 주시던 진솔한 이야기가 큰 응원이 되었다.
첫날에 다섯 분과 모임을 잘 마쳤고, 두 번째 날에는 갤러리 레지던시 예술가 두 분이 참여해주셨다. 퍼포먼스와 시각 예술을 하시는 작가님께서는 숨바꼭질이라는 시를 생생하고 실감 나게 읽는 방법을 보여주셨다. 발랄한 작가님의 개성 넘치는 낭독에 모두들 배꼽이 빠져라 웃었다. 차분하게 읽는 낭독도 좋지만 숨바꼭질을 실감 나게 묘사하며 읽는 것도 꽤 매력적인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음 낭독회 때는 약간의 쇼맨십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용기가 나면 시도해보리라.^^) "웃옷 안주머니" "주머니"처럼 주머니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로 시작해서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진지하게 작품을 곱씹다가도 장난스러운 농담에 모두들 깔깔 웃던 통통 튀는 두 번째 낭독회 시간도 잘 마무리되었다.
디카시 전시회장에 몰래 꽃을 두고 간 후배가 있었다. 이틀 뒤에 꽃의 존재를 알게 되었는데, 다행히 갤러리 매니저님께서 생화인 듯하여 물을 주었다고 이야기해주셨다. 친정엄마와 함께 데이트하러 왔던 후배는 엄마와 자신이 꼽은 베스트 작품이 똑같아서 놀랐다고 했다. 심지어 그 두 작품을 구매하겠노라 말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그림책 모임에서 알게 되었던 부산의 한 선생님도 전시를 보러 와주셨다. 일정이 맞지 않아 낭독회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전시 잘 보고 간다 하시며 예쁜 풍로초 화분을 건네주셨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것을 받고 누려도 되는지 의아한 기분, 이틀 동안 뭔가 실감이 나지 않는 묘한 기분이었다.
낭독회를 마치고 전시회도 마치고. 전시장 철거를 위해 B동 103호로 들어갔다. 지난 2주간 방문해주신 관람객들의 방명록을 넘겨보았다. 큐레이터님 말로는 근처 주민들도 오며 가며 관람하셨고, 시험 기간을 맞이한 중고등학생들도 보고 갔다고 하셨다. 귀여운 글씨체 몇 개를 보니 그 학생들인 것 같았다. 한 장 한 장 넘겨 읽다가 관람 소감 하나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나왔다.
"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날아온 나비였음을,
알게 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가 나비처럼 날아와 나비처럼 날아가고 만다는 사실,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기에, 더욱더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싶다.
한 때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비였던 한 관람객의 이야기처럼,더욱 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내게 우연히 날아든 나비들과 행복한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