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에세이> 2026. 3월호 수록작
몇 해 전 겨울의 일이다.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많이 아팠고 몸살 기운이 밀려왔다. 말을 하는 것도 음식을 삼키는 것도 곤란했다.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낸 후, 병원 진료를 보고 왔다. 점심식사도 대충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약 기운에 까무룩 잠이 들었다. 하원시간 즈음 겨우 정신을 차렸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재잘재잘 거리는 딸들을 보니 희미하게나마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목이 찢어질 듯 아프고 오한이 심해서 목욕을 시키는 일도, 옷을 갈아입히는 일도 평소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쌀을 씻어 밥을 안쳐두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반찬이 부실했다. 반찬가게 문 닫을 시간이 다 되어가는 탓에 다급히 전화를 걸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탕수만두와 계란말이, 그리고 국 종류 하나를 주문하려고 했는데, 방금 기름 전원을 꺼버려서 탕수만두도 안 되고, 마감시간도 다 되어서 주문받기 어려울 것 같다는 대답을 들었다. 어쩔 수 없지만 아쉬운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
남편은 야근이고, 아이들은 배가 고프고, 나는 몸이 안 따라주고, 삼박자가 동시에 설상가상이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기운이 빠졌지만 조금 더 일찍 주문했어야지 하며 스스로를 탓했다. 매장을 정리하던 사장님에게는 쉽지 않은 주문을 굳이 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고 되뇌면서 말이다. 몸이 아픈 것도 나의 사정이고, 아이들이 어린것도 나의 사정이고, 하필 그런 날에 남편 퇴근이 늦는 것도 나의 사정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생이 다 원대로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었다. 서른에 결혼을 하고,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를 갖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일 년 만에 겨우 가졌던 아이도 결국 유산했다. 오히려 아이를 갖겠다는 마음을 비우고 살았더니 덜컥 연년생 엄마가 되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지 않음을 체득해 가고 있었다.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상황과 내 힘으로 통제할 수 없는 일들에 초연해져야 살아갈 수 있었다. 몸도 아프고 반찬도 부실한 날이었지만, 그조차도 내가 오롯이 잘 견뎌내야 할 내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반찬가게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아, 네. 반찬가게인데요. 방금 주문하신 거 해드릴게요.”
“네? 정말요?”
“전화를 끊고 돌아서니, 손님 목소리가 자꾸 마음에 걸려서요. 몸이 좀 아프신 것 같아서요. 일단 최대한 빨리 만들어서 보내드릴게요.”
“사장님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손님인 내 사정을 헤아려준 사장님 덕분에 ‘내 세상’이 따뜻해졌다. 그날 내 세상의 온도는 올라갔고, 내 세상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내 세상은 '나와 내 가족이 살아가는 세상'인 동시에 ‘나의 그릇만큼 품을 수 있는 세상’이기도 하다. 마음의 키를 키우고 마음의 품을 넓힐수록 인생의 품도 넓어진다. 내가 살아가는 세상 속에 나와 너, 그리고 ‘우리’가 함께 있다면, 우리 모두의 세상은 조금씩 더 넓어질 것이다.
점점 더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사회에서 ‘우리’라는 개념이 어쩌면 다소 촌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요즘 현대인들이 기피하는 ‘우리’는 지나치게 간섭하고 자기 생각만을 강요하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지, 친절과 배려 그 자체는 아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에는 스스로 크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시절에 나보다 품이 너른 어른들의 사랑과 이해심 속에서 성장해왔다. 잘 배운 현대인의 ‘우리’는 개개인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면서도 필요할 때, 기꺼이 타인을 배려하는 어른들의 집단일 것이다.
나는 어제 어느 상가에 들어서다가 뒤따라 오던 아이를 위해 무거운 문을 잠시 잡아주었다. 귀여운 아이를 보며 나도 웃었고, 아이도 나를 보며 방긋 웃어주었다. 기꺼이 누군가를 위해 친절할 수 있었던 순간들이 모여 인생의 품을 만든다. 2026년 새해에도 내 세상을 사랑으로 넓혀가고 싶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게 손 내밀어준, 내게 친절을 가르쳐준 무수한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이다.
2026, 창간 39주년 <월간에세이>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