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짓는다는 것, 그것은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내 삶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여정, 그 길에 서서.

by 양윤미

20대 중반,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사명선언서라는 아주 거창한 문서를 작성했다. 앞으로의 인생을 이끌어갈 중요한 가치와 목적을 정리하고 ‘어떤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길고 장황하게 적은 글이었다. 이뤄놓은 것 하나 없으면서 패기 하나만큼은 넘치도록 뜨거웠던 20대에 쓴 글이라니. 다시 읽게 된다면 굉장히 낯 뜨거울 것 같았다. 메일함에 저장해 두지 않은 탓에 현재 남아있는 문서는 없지만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또렷이 기억나는 두 가지 문구는 있다. 그것은 바로 "글 쓰는 사람이 되자." 그리고 "가르치는 사람이 되자."였다.

영어가 좋아서 영문학을 전공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들을 만나고 언어를 가르치는 자체에서 즐거움을 얻고 있었던 나는 나의 또 다른 열망인 '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힘썼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서점에서 책을 읽었고 어떤 날은 문예창작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내게 아주 큰 영향을 주었던 것은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을 함께하고 있는 인문학 독서모임이 아닐까 싶다. 인문학 책모임은 혼자라면 완독 하지 못했을 어려운 책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같은 책도 서로 다르게 읽혔기에 모임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실시간으로 인식의 확장을 경험했다. 서로 다른 삶이 빚어내는 서로 다른 독후감은 세상을 좀 더 넓고 깊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왔다. 내 삶에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취미이자 친구인 책은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게 하는 다리가 되어주었다. 책이라는 다리를 걸으며 작가의 마음과 내 마음,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오갈 수 있었고 인간에 대한 이해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씩 배워갔다.

결혼을 하고 계획에 없던 연년생을 낳으면서 나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잠시 뒷전으로 미뤄야만 했다. 하루 종일 나의 손길이 필요한 작고 여린 아이를 끌어안으며 글을 향한 나의 짝사랑은 마음 한편에 고이 접어 두었다. 언젠가 때가 되어 아이가 자란 만큼 나 또한 더 자랐을 때 다시 글 앞에 서리라 다짐하며 글을 향한 나의 열망에 잠깐의 이별을 고했다.


출산과 동시에 가르치는 일도 글 쓰는 일도 모두 그만두었으니 어떻게 보면 사명 선언서에서 정립했던 내 삶의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내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독서모임에서 책으로 소통했던 즐거운 기억들은 서서히 빛바랜 추억이 되어갔고 오랜 시간의 공백 속에서 다른 멤버들도 나와 같이 엄마가 되고 아빠가 되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치열한 일상을 살아내느라 분주한 듯했다. 내게 새롭게 주어진 엄마라는 이름은 이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할 행복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를 정신없는 일상을 선물했다.


엄마라는 정체성에 익숙해지는 데는 5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행복하면서도 힘든 육아에 잔뼈가 굵어지고 숨통이 트일 때쯤,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두 가지 정체성이 다시 얼굴을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난 5년간 비슷하게 굴러가던 나의 일상에 큰 변화를 일으키기로 했다. 영어수업을 다시 시작했고, 책을 다시 집어 들었으며, 다시 한번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오랜 벗과 같았던 책도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도 모두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리고 나는 용기를 내어 내가 적어낼 수 있는 글들을 서툴고 투박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있는 모습 그대로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읽은 책들을 리뷰 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느낀 육아와 삶에 대한 작은 통찰을 풀어냈다. 누군가에겐 별 일 아닐지도 모르지만 나는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작가로 입성했고 오마이뉴스에 “양윤미의 책 산책”이라는 기사 연재를 시작했다. 책 읽기는 내 삶에 또 다른 출발점을 선사해 주었고 작가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이 길의 끝에 내가 다다르게 될 곳이 어디인지 나는 아직 잘 모른다. 다만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가르치고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지금은 충분하다. 나의 글이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의미를 갖는 경험은 내 삶에도 큰 의미를 주고 있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계속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살 것이 분명하다.


최진석 작가님이 쓴 <인간이 그리는 무늬>라는 책 속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외국 철학자들 이름을 막힘없이 들먹이면서 그 사람들 말을 토씨 하나까지 줄줄 외우는 것보다 거칠고 투박하더라도 애써 자기 말을 해보려고 몸부림치는 자, 이념으로 현실을 지배하려 하지 않고 현실에서 이념을 새로 산출해보려는 자, 믿고 있던 것들이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자, 이론에 의존해 문제를 풀려하지 않고 문제 자체에 직접 침투해가는 자, 봄이 왔다고 말하는 대신에 새싹이 움을 틔우는 순간을 직접 경험하려고 아침 문을 여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이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자기답게 살아갈 때 그려지는 인간의 무늬, 어쩌면 그 무늬는 한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일 평생을 거쳐야 마침내 완성되는 거대하고 독창적인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무늬가 아닐까.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삶과 철학이 녹아든 책을 읽는 일과 나의 삶과 철학을 녹여낸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마음의 결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이 그리는 무늬를 알아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 같다. 거칠고 투박한 몸부림일지라도, 주어진 인생의 여러 계절들을 피하지 않고 오롯이 맞서 경험하며, 삶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깨달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인문학을 제대로 배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더욱 나다운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