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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윤미 Dec 09. 2020

<존엄성 수업>으로 본 영화 <소공녀>

저마다의 행복이 아름답게 반짝일 수 있길.

여기, 자신의 행복은 위스키, 담배, 남자 친구라고 정의하는 사람이 있다. 그녀의 이름은 미소. 미소는 입김이 뿜어져 나오는 추운 방에서 옷을 겹겹이 껴입고 지낸다. 그녀의 작은 방은 책상 겸용으로 쓰는 캐리어와 특별할 것 없는 잡동사니가 전부다. 한눈에 봐도 넉넉지 않은 사정은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그녀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도 않고 자신이 택한 삶이 남보다 우월하다 여기지도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취향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일 뿐이다.      


매일 적는 그녀의 가계부 항목은 세금과 월세, 흰머리를 방지해주는 약값과 밥값, 위스키, 담배이다. 가사 도우미인 그녀의 일당은 4만 5천 원. 만 이천 원짜리 위스키와 이천오백 원짜리 담배를 줄이면 삶이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은데 그녀는 위스키와 담배를 포기할 생각이 없다.      


새해가 되자 월세는 오만 원이 오르고 담배 값은 두 배로 뛴다. 지출 항목을 줄이지 않으면 가사도우미 수입만으로 삶을 유지하긴 어려웠다. 수첩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그녀는 오랜 고민 끝에 월세를 지운다. 그녀는 놀랍게도 당장의 주거지를 포기했다. 오갈 데 없어진 그녀는 보증금을 모을 동안만 대학시절 밴드 활동을 함께 했던 멤버들의 집에 돌아가며 묵기로 한다.       



나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 아마 모든 사람이 그럴 것이다. 모두가 꿈꾸는 이 모호하면서도 친근한 일상적인 단어 ‘행복’이란 과연 무엇일까.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각양각색일 것이다. 미소에게 행복은 위스키, 담배, 남자 친구이지만 내겐 그렇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차병직 변호사는 <존엄성 수업>에서 행복은 객관적인 조건들을 통해 좀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적절한 부를 소유하는 편이 가난한 것보다 행복할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그러나 부를 소유했다고 해서 언제나 행복한 건 아니라는 것도 언급한다. 행복의 조건으로 보이는 요소가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며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가치와 힘을 갖지는 못한다. 차라리 행복은 저마다의 주관적인 느낌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행복의 양상이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못해 무한대에 이른다.      


무한대에 이를 정도로 행복에 다양한 얼굴이 있다면 무작정 방을 빼고 나와 24시 카페에 엎드려 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는 미소의 삶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삶은 언제나 다양하고 누군가에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조건이 다른 이에게는 쉽게 버릴 수 있는 카드가 되니 말이다.      


저자는 행복한 삶은 인간다운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경제조건을 염두에 둔 인간다운 생활은 최소한의 생활 보장을 의미한다. 이는 생존권적 기본권이기에 이것만 가지고는 인간답게 살 수가 없다. 굶지 않고 목숨만 연명하는 삶은 ‘생존’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다운 삶이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문화적 조건도 충족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스키, 담배, 남자 친구는 생존과는 상관없으나 미소의 삶을 인간답게 해주는 ‘품격’이 된다.     


미소가 찾아간 다섯 명의 멤버들은 미소와는 다른 삶을 산다. 점심시간을 틈타 자신의 팔에 포도당 주사를 꽂는 친구는 바쁘고 예민한 탓에 미소를 재워줄 수가 없다. 시험 준비하는 남편과 시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친구는 그녀를 재워주긴 하지만 이내 고단함으로 입을 벌린 채 잠이 든다. 그다음에 찾아간 후배는 결혼 8개월 만에 이혼을 하고 영혼을 끌어 모아 산 아파트의 대출금을 갚느라 매일 밤 술 없이는 잠을 못 잔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선배의 집을 찾아갔다가 미소는 며느리 감으로 찍혀서 집에 감금되기도 한다. 선배의 집을 탈출해 마지막으로 찾아간 친구는 대궐 같은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집이 넓고 방이 많으니 편하게 지내라던 친구는 결국 언제까지 남에 집에 얹혀 살 거냐고 염치를 운운하며 적선하듯 미소에게 돈을 건넨다.      


회사 기숙사에 살고 있는 미소의 남자 친구 한솔은 그녀가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그가 집이 있었으면 그녀를 편히 재워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두 사람의 데이트는 헌혈하고 받는 초코파이, 비닐봉지에 달랑달랑 들고 다니는 편의점 음식과 같이 소박하고 따뜻하고 아름답다. 아무것도 재지 않고 그 어떤 편견도 없이 서로의 부족함을 보듬어주는 두 청춘남녀의 찐 사랑은 존경스럽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한솔이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미소와 달리 한솔은 ‘더 나은 삶’에 목이 말라간다.      


웹툰 공모전마다 낙방하던 한솔은 자신의 꿈을 접고 월급을 세 배나 준다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지원한다. 다른 나라로 자처해서 떠나는 그에게 미소는 큰 배신감을 느끼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한솔과의 작별의 순간, 미소는 사우디에서의 삶을 그림으로 그려보라며 수첩을 건넨다. 한솔은 힘겹게 그녀의 선물을 받아 든다. 자신의 한계와 현실의 벽을 깊이 체감한 그가 생명수당이 포함된 돈을 택하고 떠나던 그 날, 미소가 건넨 수첩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독일 바이마르 헌법에 나온 “인간다운 생활”은 1948년 유엔 세계 인권선언에서 ‘인간적 존엄에 합당한 생활’이란 말로 조금 다르게 표현된다. 인간다운 생활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한다는 뜻이며, 적절한 행복을 향유한다는 의미도 내포한다. 행복에 다양한 얼굴이 있는 것처럼 지키고 싶은 존엄한 삶의 모습도 무한대로 다양하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거나 평가해서는 안 되며, 어떤 삶이 더 나은 지 판단해서도 안 된다. 저마다의 행복은 각자에게 고유한 행복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나는 고단한 친구를 위해 반찬을 뚝딱 만들어두고, 이혼의 아픔으로 눈물짓는 후배에게 아침상을 차려주는 미소의 따뜻함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그녀가 계속해서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한솔이 떠난 후, 약값도 포기한 그녀는 백발로 위스키 한 잔을 마신다. 한강변에 친 작은 텐트를 거주지 삼아 몸을 누인 그녀는 끝까지 자신이 택한 행복의 조건을 지킨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행복을 추구하는 그녀의 삶은 왜 이토록 벼랑 끝에 서 있는 것처럼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걸까. 그녀의 행복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까. 나는 그녀가 포기한 조건들이 그녀의 행복을 지속적으로 누리게 돕는 요소였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미소의 삶이 앞으로는 좀 더 편안해졌으면 좋겠다. 미소가 몸을 누인 텐트의 작은 불빛은 우리 모두가 각자의 마음속에 간직한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작은 행복을 상징한다. 우리 모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행복들을 반짝반짝 빛내며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기사로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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