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삶을위한수업 -마르쿠스 베른센 /오연호-
4살 된 딸이 요즘 부쩍 자기 이름에 관심을 보인다. 종이에 이름을 적어주니 한참을 뚫어져라 쳐다본다. 한글을 일찍 가르쳐줄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딸이 먼저 호기심을 보이니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이름에 들어가는 자음과 모음을 알려주자 아이는 신이 나서 따라 적기 시작한다. 희한한 그림을 그려 놓고 자기 이름이라며 뿌듯해하는 아이는 정말로 귀여웠다. 그 후로도 아이는 계속해서 이름을 적었고 시간이 갈수록 아이의 낙서는 제법 글자다워졌다.
조금만 더 고치면 제대로 한글을 쓸 것 같다는 가능성을 본 순간, 내 마음속에서는 똑바로 가르쳐줘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나는 아이를 앉혀놓고 좌우가 바뀐 시옷을 손가락으로 지적하며 아주 다정한 목소리로 이건 틀렸으니 다시 적어보자고 말했다.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며 글자를 끄적였던 아이는 틀렸다는 나의 말 한마디에 금세 속이 상해서는 더 이상 쓰지 않겠다며 도망가 버렸다.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나라의 교사들은 학생들이 글자를 막 배우기 시작할 때 ‘어린이다운 글자(children spelling)“를 쓰도록 권장한다. 절대로 ’이 글자는 틀렸어 ‘라고 지적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며 학생들이 쓰는 것 자체를 즐기도록 내버려 둔다. 그들은 쓰는 행동 자체를 칭찬하며 학생들이 쓰는 것을 즐기게 되면 나중에 스스로 틀린 글자를 찾아낼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딸이 호기심 어린 마음으로 문자와의 만남을 시도할 때 내가 했어야 하는 일은 묵묵히 바라봐주고 스스로 방법을 찾아가도록 기다려주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영어 강사로 일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니 교사로서 학생들을 이끄는 일과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일 모두는 꽤나 큰 인내심과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제야 걸음마를 뗀 아이에게나, 새로운 학문을 접하는 학생에게나 ‘처음’은 언제나 서툴고 어려운 것이다. 새로운 것을 배워나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나는 좋은 부모로서 좋은 교사로서 아이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베풀며 살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한국의 교육은 오랫동안 권위주의에 빠져 교사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긍하도록 아이들을 길들여왔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는 수많은 생각과 감정들은 존중받기보다 표현되지 못한 채 사장되었고 학생들은 입을 다무는 데 익숙해졌다. 이러한 교육현장을 개선시키기 위해 많은 교사들이 권위주의를 버리고 학생들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지만 그 와중에 몇몇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사의 권위 자체를 훼손시키는 교권 침해 사례들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 모든 일들은 아마 존중하고 존중받는 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의 안타까운 귀결이 아닐까.
덴마크 교사 마르쿠르 베른센이 적고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가 편역한 <삶을 위한 수업> 속에는 교사가 학생들을 ‘젊은 어른’으로 대하고 학교생활과 수업의 여러 가지 부분에서 학생들의 참여를 필수 요소로 여기는 덴마크의 학교 풍경이 나온다. 유치원에 다닐 때부터 권위에 도전하는 것이 장려되는 덴마크의 교육은 학생 한 사람 한 사람을 고유한 존엄성을 가진 한 인간으로 존중한다. ‘선생님의 어떤 말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길러야 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를 버릇없게 키우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주체성을 지닌 아이로 만드는 일이다.
학생들을 존중하면서도 여전히 교사로서의 일정한 권위를 유지하는 덴마크의 ‘절묘한 균형’은 한국의 모든 어른들이 반드시 배워야 할 새로운 균형 감각이다. 사실 아이들에게 학교에서의 생활만큼 중요한 것은 졸업한 이후의 삶일 것이다.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맞닥뜨리게 될 학교 밖의 삶, 한국의 오늘은 어떤 모습일까?
학생 때 공부를 잘해 두지 않으면 뒤처지는 사회, 20대 때 학위와 경험을 쌓아두지 않으면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 30대 때 탄탄한 직장을 잡아 돈을 벌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과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지는 사회, 안타깝지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한국의 현주소다. 한국은 인생의 각 시기별로 달성해야 할 여러 과업을 정해 놓고 그것을 성취하는 삶을 정답이라고 인정하는 경직된 사회다. 모두가 도달해야 하는 하나의 정해진 목적지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데 사람들은 그 길에서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막연한 긴장과 불안감에 시달린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을 나오고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 안정적으로 사는 길을 정답이라고 정해놓은 사회 속에서 아이들을 다양한 길로 이끌어 주긴 쉽지 않다.
내 아이가, 나의 제자들이 ‘좋은 직업’과 ‘괜찮은 연봉’이라는 프레임으로 서로를 판단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길 원한다면, 모두가 정답이라고 말하는 단 하나의 길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란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 택한 삶을 지지해주어야 한다.
중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 진학 전에 에프터스콜레(덴마크의 인생설계 학교)에서 1년을 보내고,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원하는 만큼 ‘안식년’을 가지는 덴마크의 학생들은 ‘좋은 직업’과 ‘괜찮은 연봉’이라는 프레임에서 보다 자유롭다. 많은 덴마크 부모들이 걱정하는 것은 “내 아이가 열정을 가지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일을 과연 스스로 찾을 수 있을까?”이다. 덴마크 학부모들의 애정 어린 걱정 속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봤던 핵심 문구는 ‘스스로’였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많은 선택을 내리고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며 살아간다.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고 그로 인해 후회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선택은 ‘스스로’ 내린 것이어야 한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깨닫는 경험이 없다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 덴마크의 교육은 자신의 삶의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삶을 관장하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덴마크의 교육은 졸업한 이후의 삶에도 큰 영향력을 미친다. 우리의 인생에서 학생 신분으로 살아가는 날보다 그렇지 않은 날이 더 많다면 교육은 삶을 위한 교육, 인생을 위한 수업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통해 교사로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그리고 앞으로 아이가 살아가게 될 더 나은 미래의 한국을 꿈꾸는 한 시민으로서, 수업을 이끌어갈 방향과 아이를 키우는 태도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다. ‘아이들이 살아갈 인생’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아이들이 나보다 덜 힘들고 더 평안한 삶을 살길 바라는 간절한 진심이 있다 하더라도 아이들의 삶에 월권을 행사해선 안 된다.
우리는 그저 아이들이 ‘스스로’ 행복한 삶을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묵묵히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아이들을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들이 스스로 선택한 다양한 삶의 모습을 진심으로 응원해줄 수 있다면 좋은 어른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어른이 되어줄 때 우리는 비로소 ‘선생(先生)’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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