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를 잘 버티려면

연대의식

by 양윤미

WHO에서는 지난 3월 11일 코로나 팬데믹을 선언했다. 이미 전 세계 감염자가 12만명인 상황이었기에 선언 시점은 여전히 논란 가운데 있으며, 최근트럼프는 WHO의 개선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면 자금 지원은 물론 영구탈퇴하겠음을 선포했다.


코로나19가 팬데믹으로 발전하자 실로 전 세계가 막대한 손실을 겪고있다. 우리 모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이 어렵고 힘든 싸움을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는 중이다.


우리나라는 정확하고 빠른 코로나 키트로 확진자들을 신속히 격리 및 치료했으며 지금도 고생중인 의료진들은 소독제로 손이 다 트고 마스크와 방호복차림으로 인해 피부가 짓눌린 채로 집에 가지도 못하고 여전히 환자를 돌보고 있다. 가슴 뭉클한 의료진의 노고에 우리나라 국민들 모두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대구경북 사태를 일으킨 31번 신천지 감염자, 이태원 클럽사태를 일으킨 용인 66번 감염자, 거짓진술을 한 인천 학원 강사에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신천지 감염자와 인천 학원강사는 거짓진술로 방역체계에 구멍을 냈을 뿐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의 지역감염을 초래했다. 용인 감염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이 완화 되었으나 마스크 착용은 반드시 필수였던 5월의 황금 연휴에 마스크를 쓰지 않고 밀폐된 클럽에서 시간을 보냈다.


이런 사례들은 대부분 지극히 이기적인 욕망에서 출발한다. 나 한사람의 잘못된 행동이 누군가에게 크나큰 불이익이 된다는 것을 안다면 결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이들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코로나 종결을 걷어차버렸다. 시민들이 위 사례의 확진자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해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도 그들에게 책임을 묻고자 함이리라.


연대의식, 다시 말해 공동체의식은 이기심의 정 반대에 위치한다. 연대의식은 모두가 함께 일을 도모하는 것이며 함께 책임을 통감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자유로울 권리도 행복할 권리도 있다. 그러나 나의 행복과 나의 자유가 함께 이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사회 공동체 일원에게 해를 끼친다면 멈춰야 한다. 이는 집단을 위해 개인을 희생시키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시민 각자의 존엄성을 지키고 모두의 건강과 안전을 위한 일에 있어서 만큼, 우리는 손을 맞잡은 연대이다.


그러니 위 사례에 나온 빌런들은 일단 차치하고, 코로나 종결을 위해 정부 수칙을 잘 지켜가며 이를 악물고 버티고 있는 내 이웃과, 내가 잘 알지 못하는 특정 집단에 대해 함부로 질타하거나 폄하하지도 말자. 어려운 시기이기에 스트레스는 점차 내재되어가고, 그로인해 모두가 지치고 예민한 시기이다. 우리끼리 물고 뜯는 싸움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심하자. “그래도 너는 나보다 낫잖아.”와 같은 불행 올림픽의 서막을 알리는 대사 따위는 목구멍으로 삼켜라.


시민의식과 연대의식은 서로를 향한 존중과 배려에서 나온다. 이런 불안한 때에 직장에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어쩔수 없이 내 아이를 보육기관에 맡기는 심정을, 곧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심정을, 하루종일 아이와 씨름하며 온라인 숙제까지 해줘야 하는 엄마의 심정을, 일이 다 끊겨 집에만 있어야하는 자영업자의 심정을 우리는 직접 겪어보지 않는 이상 체감할 수 없다. 동병상련의 아픔처럼 직접 똑같은 상황이 되어보지 않는 한 우리는 누군가의 생애 무게를 감히 짐작할 수 없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결의하고 이겨내야 할 재난 상황에서 쓸모없는 감정 소비로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


좋은 시민들의 행보가 많다. 우리르 포함한 모두가 애쓰고있다.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밥 한끼 대접하는 예쁜 마음씨, 월세를 받지 않는 착한 건물주,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시민들처럼 여전히 희망은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