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어릴 적 일상 루틴은 다음과 같다.
오전 7시.
자던 잠 더 자겠다고 칭얼대는 3살 아이 옷을 입히다 보면
예정한 시간보다 늦는 날이 많아져 지하철역까지 전력 질주하곤 했다.
일산 쪽에서 출발하여 서울로 가는 출근 지하철 안.
“죄송합니다. 저희 좀 들어갈게요!”
최대한 예의를 갖춘 외침에도 불구하고
빈틈없는 사이 유모차로 비집고 들어가는 일은 매번 눈치를 사야 했다.
생각지도 못한 ‘3호선 민폐 맘’이 되자 나는 고심 끝에 방법을 바꾸었는데
일단 걸음이 느린 아이를 업고 역까지 가고,
지하철 안에서는 쪼그려 앉아 무릎 위에 아이를 앉혔다.
불편함은 여전했지만, 그나마 눈치를 덜 보는 선택이었다.
어린이집 문이 열리자마자
1등으로 아이를 들여보내고 뒤돌아서는 순간마다
울컥하는 감정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가 곧 터지듯 사라지곤 했지만
이내 땀을 훔치며 지하철에 오른 후
인터넷 마트 장바구니를 채우다 회사에 도착했다.
퇴근 후엔 미리 주문해 둔 식재료로 저녁을 차렸다.
아이를 씻기고, 한 열 곡쯤 자장가를 불러 꿈나라로 보내기.
눈만 뜨면 쉴 틈 없는 하루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당시 자주 떠올렸던 생각이 있다.
‘단 며칠 만이라도 어딘가에 혼자 갇혀 있고 싶다.’
물론, 남편은 수용소 농담쯤으로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나에겐 가장 진실한 소망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 여백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의 일정을 소화하고, 남편도 제 할 일을 하러 나가면서.
어느 날 문득, 아무도 없는 집에 나 혼자 남는 순간이 생긴 것.
“정말, 나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걸까?”
사실 꼭 뭘 해야 의미 있는 정답은 아니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자유로움 속에서 빨래들처럼 널브러져 있고 싶어졌다.
남는 시간이 아니라 온전한 ‘내 시간’이었다.
약을 먹거나 잠을 자야만 회복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나를 위해 온전한 휴식을 취하는 일
이 역시 게으름이 아니라 ‘회복 활동’이었다.
정수기 온수 70도에 맞춰 제주녹차 티백 하나를 우리며
창밖 부스스 내리는 비를 식탁에 앉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온전하게 비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 날의 기억이 언제였던가.
무심코 흘려보냈던 마음들이 촉촉하게 젖어감을 느꼈다.
주말 오후, 오롯이 나를 느끼고 숨 쉬며
우주 한복판 나 혼자 팔딱팔딱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
제대로 쉼을 느낀 사람은
다시 걸어갈 힘을 얻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하루가 존재함으로써
풍년을 맞은 농부가 그간의 힘듦을 잊게 되듯,
풍족한 휴식 앞에 우리는 또다시 내일을 걷는다.
우리는 원래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가진 자유인이었음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