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설레는 도시였다니, 부산
한 영혼의 여행 2021년 5월
나라는 한 영혼은 여행 다니기를 사랑한다. 27년을 살면서 사랑하는 것들을 꽤 많이 찾았지만, 여행을 뛰어넘을 취미는 발견 못했다. 서동식 작가의 [나를 위한 하루 선물]에서 "죽음을 앞둔 사람이 제일 후회하는 것은 '삶을 그렇게 심각하게 살지 말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별의 순례자이며 단 한 번 즐거운 놀이를 위해 이곳에 왔다."는 말은 내게는 곧 인생이 여행과도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단 한 번 주어진 즐거운 놀이는 내게 여행이다.
2021년, 마스크 없이 돌아다녀서는 안 되는 바깥세상은 우리 모두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이젠 마스크 안 낀 내 모습을 보는 게 어색할 지경이지만, 여전히 마스크에 가려 표정을 모르겠는 사진 속 나는 안 반갑다. 유럽 곳곳을 누비며 활짝 웃었던 지난날이 그리웠고, 마치 향수병이 도진 것처럼 우울감이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여행 한 번 안 한다고 어떻게 되는 건 아니지만, 행복하지 않을 건 확실했다. 정부 지침을 철저히 따르면서 돌아다녀보자, 국내 여행으로 눈길을 돌렸다.
2017년, 동생과 다녀왔던 부산이 2021년 내 첫 국내 여행지였다. 외투는 과하고 반팔은 오버인 다소 쌀쌀한 계절에 방문한 부산 바다. 짭짤한 비린내가 코끝을 두드리자 저절로 미소가 마중 나왔다. 첫 부산 방문 때처럼 활발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정서적으로 편안했다.
늦은 밤 비행기에서 내려 도착한 광안리는 화려한 불빛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가슴을 울리는 버스킹 가수들의 매혹적인 목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시원한 파도가 검은 모래사장에 내려앉는 찰랑거림이 느껴졌다.
방역수칙으로 시간 예약이 적용된 해운대 해변 열차를 타고 툭툭 떨어지는 빗물을 보면서 감성에 젖었다. 날이 풀린 송도는 뜨거운 햇살 아래 반짝이는 바다 빛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동행인은 로맨틱했다. 석양 시간에 맞춰 요트를 예약해 잊히지 않을 기억을 만들어줬다. 뭘 먹을 때 빼곤 마스크를 벗을 수 없었지만, 사진 속 우리는 여느 때보다 잔뜩 휘어진 눈으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부산 송도는 길고양이와 어울려 사는 동네였다. 카페, 길가, 유적 공원 등 고양이를 해치지 말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라는 수도권 아파트 정책과는 사뭇 달랐다. 이런 곳에서 살아야 하는데, 아쉬움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나는 고양이를 좋아하니까.
첫 부산 여행 때는 버스, 뚜벅이, 기차가 전부였지만 이번엔 요트와 케이블카, 비행기가 추가됐다. 많은 여행객을 피하기 위해 이른 아침, 늦은 밤에 돌아다닌 덕에 걷는 시간이 많았다. 서울의 양화대교부터 신촌까지 걸어갔다고 비유하면 적절하겠다. 실제로 그런 적도 있었는데, 그때보다 더 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았다. 화창한 하늘, 푸른 바다, 두 손 꼭 잡은 동행인까지. 삼박자가 맞는 예쁜 부산이었다.
삶에서 여행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진 이유는 아직 모르겠다. 지나치게 무겁게 내려앉은 평범한 일상의 무게를 견디기 어려워하는 본인이 한심하게 느껴진 적도 있다. 남들 다 참고 사는데 왜 나만 이렇게 도망가고 싶은 걸까 두려웠다.
취미가 뭔지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게 없었을 때 얼마나 난감했었나. 먹는 게 좋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머리가 띵했었다. 거창할 필요가 없는데 소소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부끄러웠다. 지금은 여행이라고 떳떳하게 이야기한다. 책임져야 할 생활로부터 도피하는 행위라고 해도 괜찮다. 내 인생 목적이 생겼으니까, 무의미한 삶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므로,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냈기 때문에, 여행은 내 취미가 맞다.
책이나, 영화, 미디어에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우선순위에 과거를 가장 뒤로 빼둔다. 근거는 거창하다. 뒤 돌아보지 말고 열심히 달려서 성실하게 살라는 교훈도 준다. 내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난 과거가 있기 때문에 현재를 살 수 있고 미래를 그릴 수 있다. 사실 지금도 1초 후의 나에겐 과거가 되는 셈이지 않는가.
여행기를 남기는 이유도 그래서다. 오늘, 어제를 추억하며, 내일을 살기 위한 또 다른 여행이다. 반드시 어딘가를 가지 않아도 된다. 맛있는 음식을 먹은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한 시간을 보낸 것도 여행이 될 수 있다. 내 설레는 여행지는 단지 부산이었을 뿐이니까.
그대의 설레는 기억은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