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157
취향이 없는 게 취향인 내게도 취향이 있긴 하다.
스무 살이 넘어서야 여행이 내 가장 큰 행복이란 걸 깨달았기 때문에 확신하건대, 아마 시간이 흘러갈수록 나 자신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혹여나 나와 비슷한 무취향인들이 있다면 그것 또한 취향이므로 괜찮다고 미리 말해두고 싶다.
취미와 특기란 채우기가 가장 어려웠던 사람으로서 결국엔 알게 되더이다-라고 감히 안심하길 바란다.
난 하늘색을 좋아한다. 요즘날 대한민국의 뿌연 하늘색 말고, 맑고 청아한 하늘색. 너무 파랗지 않은 그 정도의 스카이 블루 색상을 가장 좋아한다. 옷, 안경집, 머리끈, 귀걸이 등 하늘색 혹은 파란색을 고집한다. 피부가 지금보다 더 까매지면 먹구름 낀 하늘이 되겠지만, 그럼에도 사 모은다.
어린 시절은 태양보다 뜨거웠지만, 성장하면서 이상하리만치 에너지를 잃었다. 성숙해지면서 달을 좋아하게 됐는데 지금은 하늘이 더 좋다. 하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 있는 하늘색 하늘이. 너무 뜨겁지도 않고, 지나치게 외롭지도 않은 그런 상태가.
밴쿠버의 하늘은 오후만 되면 환하게 빛난다. 해가 지면 주황색 노을이 하늘빛을 물들인다. 그리곤 점차 보랏빛으로 변하고, 어두워진다.
이곳에서도 별은 잘 보이지 않는다. 얼마 전 갑자기 오로라 알림이 울려 많은 사람들이 새벽까지 분홍, 초록, 푸른빛 오로라를 구경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달이 밤을 비춘다.
그래서 하늘이 좋다.
모든 예쁜 것들을 담아낼 수 있어서.
우러러볼 수 있는 무언가를 이상향으로 삼는 경향이 있는데 스스로가 마음이 넓지 않음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늘은 모두를 담는다. 대지도, 바다도 모두 하늘 아래 있다. 어쩌면 하늘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이를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물아홉이나 됐지만 아직도 실수투성이에 겁도 많다. 여럿보단 혼자가 편하다. 머리로는 아는데 마음으로는 내키지 않아서 머뭇거리는 순간이 늘 존재한다. 그럼에도 나는 하늘을 본다. 그래서 괜찮을 것만 같다.
앞으로의 내 하루들이 굉장하지는 않더라도, 살 맛은 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