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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한송이 May 10. 2024

경기도 밴쿠버시 그랜빌동

어쩌다 보니 밴쿠버, D-164

유럽 여행 때나 호주 교환학생 때와는 다르게 밴쿠버는 경기도 어느 한 동네 같다.

다만 사이렌이 조금 더 자주 울려 늦은 밤 나가기는 꺼려지는 그런 동네.

오늘 난생처음 무장한 경찰관 네 명에게 둘러싸여 수갑을 차는 남자를 봤다.

소매치기를 당할 위험이 높지 않은 도시임은 분명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 밴쿠버에서 세 계절을 체감하게 될 것이다.

그중 여름이 가장 길 것으로 예상하고 얇은 옷을 잔뜩 준비했지만 웬걸, 5월 밴쿠버는 초겨울이다.

낮엔 22도까지 오르는 기적이 일어나긴 하지만, 바람은 차고 그늘은 서늘하다. 가져온 겨울용 후드티 3개로 간신히 한 주를 버티고 있다. 오자마자 입 근처에 화상을 입어 반쪽자리 조커가 된 마당에 감기까지 걸릴 수는 없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이렇듯 매일 긴장 속에 살고 있는 것 같지만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건 역시 학교다.

오전 8시 45분부터 오후 3시 25분까지 이어지는 수업은 당연히 영어로 진행되고, 알아듣기 위해 부단히 귀를 기울이는 탓에 숙소로 돌아오면 정신이 혼미하다. 첫 주에 PPT 발표와 Reading Test가 진행되는 아찔함의 연속은 탈진하기에 충분했다.


물가도 어마어마하다.

한국 라면 1 봉지가 한화로 약 1만 원이 넘는 상황이니, 길 곳곳에 비어있는 가게가 많은 것도 이해된다.

본가 상가들이 온통 공실이었는데 경제가 어려운 건 어디든 같은 듯싶다.

한 달에 1,000달러(CAD)를 쓸 거란 유학원의 말을 듣고 웃었던 스스로를 반성한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제대로 된 밥을 먹고, 교통을 이용하고, 수업을 따라가기 위한 커피 한 잔을 누리고자 한다면 상당히 부족한 금액이다.

그래도 내가 누구야, 매년 모은 아르바이트비로 유럽 여행을 다녀왔던 사람이다.

마지막엔 돈이 좀 남아 놀러 온 동생과 펑펑 쓰는 사치를 행하고야 말겠다.

길을 익히고, 분위기에 적응하고, 사람들을 마주하며 바쁘게 지낸 한 주가 서서히 저물어간다.

길가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귀여운 고양이를 보는 여유도 생겼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다른 학교 학생과 스몰토크도 하곤 한다.

왠지 여기가 내가 사는 경기도 어느 지역만 같다.


그래도 내가 살던 동네보다 이곳을 좀 더 샅샅이 둘러보고 싶다.

그렌빌동을 벗어나 밴쿠버시 전체를.

시간이 빠듯할 것 같다.

벌써 7일이 지났다.



한국에 돌아가기까지 D-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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