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143
모두가 결혼을 반대한다.
내가 마주한 기혼자들은 다들 결혼에 비관적이다.
아이를 낳는 게 아니라면 굳이 할 필요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
캐나다인도 마찬가지였다.
수업 시간에 갑자기 불거진 결혼 논쟁으로 다른 반 선생님까지 토론에 동참했다.
결혼은 안 하느니만 못한 법적 제도라는 말까지 들었다.
'결혼은 미친 짓'이라는 말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표현이었다.
어렸을 때 나 역시 결혼을 꿈꿔본 적은 없었다.
고등학생 때 꿈이 현모양처라던 친구가 대단해 보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할 수 없었다.
아이를 원하지 않고, 자유롭게 세계 여행을 즐기며 사는 게 내 꿈이었으니까.
물론 지금도 마음 한 켠에서는 각국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노후를 그리고 있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결론에 다다랐기 때문에 서럽게도 꼭꼭 숨겨두었다. 그와 동시에 안정감 있는 삶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도 체감했다.
둘 만 살 거면 결혼은 필요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결혼의 목적이 아이이기 때문일 거다.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내가 만일 결혼한다면, 굳이 목적을 찾아낸다면, 안정감이 전부일 것이다.
마음이, 가치관이, 생활 패턴이, 삶을 대하는 방식이, 감정 코드가 같은 사람을 만나 즐겁게 아침을 시작하고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하는 평범함을 동경한다.
이곳 캐나다 밴쿠버에서의 하루는 많이 평범하다.
내 체력 상 짧은 기간 머나먼 여행은 불가능해 어딘가를 나돌아 다니지도 않아 누군가에겐 따분할 수도 있다. 주말 중 하루 근교 하이킹이 전부고, 어쩌다 한 번 친구들과 외식하는 게 일반적이니까.
하지만 열심히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 가 공부를 하고,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드는 하루 루틴이 마음에 든다. 주에 한 번씩 같은 반 동기들과 정처 없이 거니는 시간도 만족스럽다.
대학을 조기 졸업하고 곧장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논문을 쓰고 졸업하면서 지칠 대로 지쳤었다. 용돈이라도 벌어보려고 취득한 자격증을 활용해 강사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기본 체력이 마이너스로 깎였다.
대학원 졸업 시즌에 바로 취직을 하면서 쉼 없이 뭔가를 해내야 했다.
생각보다 순수하게 살아왔던 내가 마주한 세상은 지독하게 추웠고, 사람에 대한 경멸이 커졌다,
그럼에도 사람을 사귀고, 또 상처받고. 그게 반복되면서 마음이 황폐화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난 이 작은 하루도 행복하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나름의 가벼운 철학을 이야기하며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게 기쁘다.
반복되는 일상에 안정감을 갖고 내일을 기대할 수 있는 오늘이 찬란하다.
평범하게 잘 살아준 오늘의 우리가 참, 멋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