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밴쿠버, D-117
수업 시간에 obligation, prohibition, permission, recommendation 표현에 대해 공부했다.
중학생 기초 문법이라 대부분 알고 있겠지만, 영어로 수업을 듣는다면 또 다르게 다가온다.
더불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수업에서는 다양한 excercise 활동을 하면서 해당 표현들을 익히곤 하는데,
아무래도 나는 해당 표현들을 자주 사용하지는 않을 것 같다.
특히 어려워하는 표현은 recommendation이다.
누군가에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 혹은 조언은
듣고 싶지 않은 말이면서,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묻지도 않았는데 누군가 조언을 건넨다면,
순수하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그 의도에는 감사하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어쩌면 잔소리 비슷한 무언가로 들리는 느낌이랄까.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충고를 한다고 해서 듣는 경우는 드물다.
사람은 직접, 간접 경험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에,
구하지도 않은 충고에 귀를 기울이기는 어렵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누군가에게 득이 되는 말 역시 자제하는 편이다.
생활 속 아주 가벼운 이야기들을 제외하고는.
예를 들면, 학생증을 가져가면 할인해주는 카페
정보 정도는 제공한다.
20대 초반, 해외여행으로부터 얻은 건 이분법적 사고에서 탈피했다는 거다.
해도 된다, 안 된다 등 금기시되는 상황이나 의무인 경우를 제외하고 언제나 "그럴 수도 있지"를 생각한다.
MBTI가 J로 끝나기 때문에 쉽지는 않다. 독특한 무언가를 보면 '왜 저래?' 하는 의문이 여전히 앞선다.
대한민국은 오랜 시간 동안 단일민족으로서 개성보다는 단합을 중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의문으로 인한
큰 부작용은 없었다. 그러나 이곳 캐나다에서 '판단'을 해버리는 순간, 내가 되려 이상한 사람이 된다.
감사하게도, 어렸을 때 해외 경험들이 나를 보다 유연하게 만들었다.
매 순간 상대방 혹은 문화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마음가짐 자체는 타고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피곤할 때도 있다.
그럼에도 노력하는 이유는, 내가 정답이 아니니까.
정답이 있는 문제라고 가정하고 타인을 대하면,
그 순간부터 모든 관계는 수직으로 형성된다.
수직적인 인간관계가 수평적인 인간관계보다 나은
점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는 고민해야 한다.
특정 조직에서는 이러한 관계값이 필요할 수 있지만
그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과정에서는 불필요하다.
우리는 일방통행으로 인생을 걸어 나가지 않는다.
줄지어 걷는 건 개미들의 습성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고, 함께 걷고, 뛰는 사람을
보기도 하며, 뒤처지는 사람들을 기다리기도 한다.
'너는 틀렸어. 다른 사람들은 다 나처럼 생각해. 뭐가 문제야?
지금 그런 걸 얘기해서 뭐가 달라지는데? 난 원래 이래'
삶을 무조건 옳고 그름으로 나누거나, 자신이 정답이라고 우기는 일방적인 가치관을 강요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감하게 끊어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내가 싫어하는 recommendation이 아니라, 사회적인 규칙으로서의 prohibition, 혹은 obligation이다.
본인이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밴쿠버에서 지내는 나는 요즘 행복하다.
내 생각에 100% 동의하는 사람과 100%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불편하면서도 정중하게 존중받는 이 기분은 가히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사고를 확장하는 경험들이 오늘도 나를 성장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