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에서 어른이로 바뀌어가는 입맛 첫 번째, 가지 이야기
가지.
이름부터 가지가 뭐야.
정말 가지가지한다.
- 라는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가지.
어린이에서 어른이로 바뀌어가는 입맛
첫 번째 이야기로 선택한 식재료,
가지이다.
어린 시절, 난 가지가 참 싫었다.
식습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던 부모님 밑에서 자랐던 나는, 어린아이치곤 가리는 음식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 그 흐물텅 거리며 축축 늘어진 잿빛 회색의 가지를, 입 안에 넣고 씹으면 뭔가 물컹 흐물거리는 그 식감이 도저히 좋아지지가 않았다.
억지로라도 좀 먹으라고, 몸에 좋은거라고 잔소리를 오조오억개 시전하는 아빠의 혼구녕을 피하기 위해
입 안에 넣고 몇 번 씹는 척 하다가 아빠 몰래 싱크대나 화장실에 가서 퉤 뱉어내고 버리곤 했다. 반찬투정이나 해가며 가지를 안 먹는다고 반항하기엔 호랑이같은 아빠가 너무 무서웠으므로.
어른이 되었다고 입맛이 크게 달라진 건 아니었다.
스무살이 되어 내돈내산 외식을 시작한 이후에 가장 많이 먹으러 간 건 역시 파스타였으니까.
나름 요리 전공이라고, 당시 학과 수업 중 이태리 요리 시간에 배운 뇨끼며, 바질페스토며, 봉골레 라는 메뉴를 이젠 레스토랑에서 아는 척 하며 콧대 높이 들고 멋있는 척 시킬 수 있게 되었으므로 스무살 갓 어른이 된 나의 주식은 거의 파스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내 스무살 시절) 쏘렌토라는 레스토랑이 인기였다. 종각역을 나와 파파이스를 지나 종로2가방향으로 내려가다보면 쏘렌토가 나왔는데 그 바질페스토, 라는 메뉴가 얼마나 새롭고 충격이었던지, 난 “바질페스토”를 아는 어른이지, “가지나물“따위야 더 큰 어르신(?)들이 드시는 메뉴라 치부하곤 한식을 참으로 등한시 했었더랬다.
너무나도 어리석었던 스무살의 나였던 것이다.
(한식이 이렇게나 세계화 될 줄 _ 모르지 않았다 사실 , 교수님들이 계속해서 강조하셨으므로)
(단지 내가 교수님의 말씀을 귀 담아 듣지 않았을 뿐)
그런 내가
어떻게 하다가 가지를 좋아하게 되었느냐 하면,
그건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를 가게 되면서부터이다.
아빠의 권위적인 울타리안에 갇혀 사는게 너무도 지쳤던 나는 초등학교 - 중학교 - 고등학교 - 대학교를 점차 아빠에게서 멀어져만 갔는데 아빠의 손아귀를 더더욱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급기야 호주로 훌쩍 떠나버리기에 이르렀다.
당시 내 나이 스물 둘.
아빠의 손아귀에서만 얌전히 살아가기엔 난 너무도 아빠의 피를 이어받았고(?) 24시간 아빠의 감시하에 살아가는 그 일상이, 그게 그렇게나 답답할 수가 없었다.
일부러 아르바이트도 굳이 지하철 한 시간 반 거리, 왕복 세 시간 거리를 다녔으니 말 다 했지 뭐. 그 시간만이 유일하게 내 숨통이 트이는 시간이었으니까.
여하튼 ,
한참 워킹홀리데이가 유행하던 시절이라 나도 외국 나가서 한 번 살아보겠다고 그냥 냅다 비자 신청하고, 영어 회화 학원을 끊고는, 그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일주일에 세 군데씩 뛰어가며 준비했다. 아빠의 품을 벗어날 준비를.
아빠는 그래봐야 네가 어디 갈 수 있나 두고 보자, 하는 태도로 안일하게 지켜보셨고, 추석연휴 마지막 날,
난 진짜로 시드니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었더랬다. 물론, 그 전 날 내 방문을 잠그고 그 안에 온갖 기물잡다가 방 천장을 날아다니며 아빠와 크나큰 전쟁을 치른 뒤였지만 . 하하.
(사실 전쟁은 예상하고 있었다. 워낙에 권위적이면서도 날 아끼는 아빠였기에 아빠 품을 떠나는것은 무조건 반대 할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일부러 연휴에 외가 친척들을 집에 오시라 했었다. 외가 친척들이 있으면 아빠의 전쟁이 그나마도 조금 일찍 끝날까 싶어서.
아빠는 갈거면 날 밟고 가라고 정말 난리 난리를 피우셨지만, 한 번 한다고 마음먹으면 하고야 마는 내 성미를 아는 아빠는 결국 대성통곡(?)을 하시며 백기를 흔들고야 마셨다)
그렇게 도착한 시드니에,
난 한국 돈으로 현금 단 돈 80만원을 환전해서 들고 갔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호주 달러로 겨우 790불.
(외국이라고는 조리과 다니며 식문화탐방이라는 명분으로 방콕 한 번, 상하이 한 번 간게 다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어린 나이의 두둑한 배짱이었던 것 같다.)
하물며 시드니 도착 한 첫 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데다 거의 이민가방 수준으로 끌고 간 캐리어는 도착하자마자 망가져서 진짜 인생 최악의 진흙탕이 있다면 바로 지금 여기가 아닐까 , 생각이 들 정도로 다사다난했던 시드니 생활 초창기.
돈이 넉넉치 않았기에 바로 job을 알아봤어야 했고, 1불짜리 식빵 한 줄과, 1불짜리 딸기쨈 하나, 1불짜리 파스타 한 봉지와, 1불짜리 토마토 소스 한 병으로 일주일을 죽어라하고 버텼더랬다.
잠은 유스호스텔에서 자면서 .
오래 묵을 집을 알아보고,
조금씩 적응을 하며 시드니 시티 내의 마켓을 처음 구경 갔던 날.
그 곳에서 난 처음으로 서양가지를 만나게 되었다.
난 그제서야 가지가 왜 영어로 eggplant 인지 단박에 이해했다.
서양가지는 길쭉한 한국 가지와는 다르게 정말 달걀 모양을 한, 거대한 타조알 같은 둥글고 통통한 생김새였던 것이다.
저 커다란 가지가 한 개에 단 돈 1불. 우리나라돈으로 치면 천 원 남짓. 저 똥똥한 가지 하나면, 그래도 2-3일은 거뜬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나 싫어했던 가지였는데, 무슨 연유에선지 그 날따라 가지에 마음이 확 끌려서 가지 하나, 야채 몇 가지를 사서 손에 들고 파머스 마켓을 나왔다.
다행히 한국에서 챙겨온 기본 양념들이 있었다.
엄마 아빠가 현지에 가면 한국음식이 많이 그리울거라며 넌 요리를 전공했으니, 스스로도 해먹게 될 날이 분명 올 것이라며 챙겨주신 양념들. 유스호스텔에선 그 매캐한 한국 양념을 쓰기가 눈치보여 못 썼는데.. 유스호스텔을 탈출해 첫 셰어하우스에 입성했던 그 날, 가지를 사온 바로 그 날, 드디어 내 인생 처음 가지요리를 도전해보게 되었다.
사실 가지 자체를 어떻게 요리해야할지 몰라서 네이버에 검색해서 블로그 레시피를 찾아봤었는데 내가 알던 가지요리하고는 너무도 다른 것이었다. (지금은 출처를 다시 찾을 수도 없겠지만 그 당시 레시피 올려주신 분 감사합니다)(이 날을 계기로, 제 인생에 가지가 들어오게 되었어요 !)
가지도 수분이 많은 야채 중 하나이다. 가지를 반으로 갈라 어슷썰어둔 후, 그 위에 소금을 뿌려 두면
가지에서 스믈스믈 물기가 올라온다. 그럼 찬 물에 살짝 절여진 가지를 담궜다가 꾸욱 손으로 짜주면
소금에 살짝 절여진 덕에 우리가 알던 가지의 식감이 아닌 약간 꼬독꼬독한 가지가 된다.
그럼 밥공기같은 그릇에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설탕, 깨소금, 식초, 다진마늘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후라이팬에서 볶아지고 있는 꼬독한 가지에 양념을 휘휘 둘러 부어 휘리릭 볶아주고 나면 두 말 할 것 없이 퍼묵퍼묵하게 되는 가지덮밥용 가지볶음이 완성되는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레시피도 조금씩 더 발전되기도 하였지만, 이 가지 레시피로 진짜 죽어도 가지 안먹는다던 친구부터 레스토랑 일하던 시절 스텝밀로도 성공했던, 항상 집밥을 할 때마다 내어주는, 정말 아빠 난 가지가 싫어, 라고 외치는 온 세상 어른이들에게 다 맛있게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가지요리 레시피이다.
어린이 향이가 싫어하던 가지를
어른이 향이는 좋아하게 된 것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앞으로도 바뀔 내 입맛을 기대해보며
언젠간 텁텁한 간도, 콩비지도, 추어탕도, 들깨가루도 좋아하게 되겠지
세월이 흐름과 동시에 조금씩 달라져가는 나의 입맛 변화 여정의 기록 :)
[가지덮밥 레시피]
재료 : 가지 2개, 양파 1/4개, 홍/청고추 각각 1개씩 (혹은 홍/청피망 1/2개씩)
양념 : 맛간장 혹은 쯔유 4T, 깨소금 1T, 설탕 1T, 고춧가루 1.5T, 참기름 (혹은 들기름도 괜찮습니다) 1T, 미림 1/2T, 후추 약간
만드는법
1. 가지는 반으로 갈라 어슷썰기 해서 소금을 뿌려 약 10분정도 살짝 절여둔다.
2. 절여진 가지는 찬 물에 담궈 헹궈내어 물기를 꼭 짜준다.
3.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센 불에 가지를 볶아준다.
4. 가지가 노릇하게 볶아지면, 만들어둔 양념장을 넣고 불을 중약불로 줄여준다.
5. 가지에 양념이 고루 잘 베어들도록 볶아준 뒤, 따뜻한 밥 위에 얹어준다.
6. 기호에 따라 달걀 후라이를 얹어 곁들여주면 완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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