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싱가포르 살이중

맞지 않는 실내화에 발을 욱여넣으며, 그냥 되는대로 사는, 그런 사람.

by merry go round

저녁 일곱 시가 넘어가는데도 아직 공기가 뜨겁다.


이제서야 해는

조금씩 얼굴을 감추며 노을빛을 드러내고 있고,

거리의 사람들은 습한 기온에 익숙한 듯,

후텁지근한 공기를 유유히 헤치며 발길을 내딛는다.

카페에 앉아 유리창 밖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나는,

카페의 찬 에어컨 바람에 손발이 시릴 정도인데 말이다.


투명한 유리벽을 사이에 하나 두고,

저 창 밖의 사람들은

그렇게도 습한 기온이 익숙한 듯 스쳐 지나가고,

에어컨 빵빵한 카페에 앉아있는 난,

찬 기온에 재채기를 연신 해대며

수족냉증이 불치병인 양 이 더운 나라에서

손에 입김을 호호 불어대며

이렇게 오랜만에 느긋이 앉아 글을 쓰고 있다.


어느덧, 싱가포르에 온 지도 한 달 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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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대체 뭘까,

매 년, 매 순간마다,

더 이상의 놀라운 이슈는 없을 것만 같은데.

어쩜 이렇게 매 년 매 순간마다

예상치도 못한 일들이 일어나는지.

인생이 무료하고, 재미없고,

늘 똑같은 루틴에 지겨워 죽겠다며,

도대체 무얼 해야 즐거운지 재밌는지 도통 모르겠다는,

그 사람들이 도리어 난 궁금하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똑같은 루틴과

안정된 삶을 사는 거죠?

어느덧, 마침내, 결국은 나이 앞자릿수가

숫자 4를 찍어버린 저는

아직까지도 인생이 매 년 매 순간

스펙타클하기만 한데요.

그건 아마도 저에겐,

타고난 질병 같은 이것 때문일 테지요.

한 곳에 엉덩이 들러붙이고 끈덕지게 살지 못하는,

발에 뿔 달린 병.

온 세상을 떠돌이 방랑자마냥 돌아다니는, 그런 병.

한 번도 안 걸린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걸리는 사람은 없다는 그 몹쓸 병.


그러다 보니,

문득 또다시 기록이 하고 싶어 진 모양이다.

나의 지난 이십 년을 돌아보자.

성인이 된 이후,

나의 이십 년은 도대체 어떻게 흘러서 여기까지 왔나.

한 번 기록을 해서라도 쭈욱 , 쭉 - 돌아보자.

다른 이야기는 말고, 일 이야기만.

그냥 한 번 주욱 적어보고 싶었다.


갓 스물 조금 지난 나이에 호주 시드니에 있었던 나.

그때는 패기 어린 나이여서 그렇다고 쳐도,

사십 줄에 발 끝을 들이민 지금의 나는,

어쩌자고 싱가포르에 와 있게 된 걸까.

요리라는 카테고리를 크게 벗어나지도,

그렇다고 그 안에 갇히지도 않은 채로

그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반복하며,


요리를 하기도,

안 하기도 하는 커리어를 반복하면서.

이렇다 할 계획이기도,

아니기도 한 계획을 따라가면서.

아니지, 그렇다고 계획을 했다고 하기도,

안 했다고 하기도 참 애매한.

모도 아니고 도도 아닌 인생.


그건 아마도 맞지도 않은 슬리퍼를 사 와선,

바꿀 생각도 없이 그냥

불편하고 불편한 그 슬리퍼 안에

통통한 발을 끼워 욱여넣어 까치발로 신으며 사는,

정말 되는대로 사는 내 이 성격 때문인 듯하다.


앞으로 현재와 과거를 와리가리 하면서

기록을 해 나가보려 하는데,

과연 머릿속 정신없이 얽히고설킨

이 복잡한 실타래 같은 이야기들이

손 끝의 글로 풀어내면서

얼마나 정리될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낫겠지.

기록은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돌아보기 위해 하는 것이니까.

맨 - 날 하다 말다 하다 말다 하지만,

뭐 또 해보지 뭐. 원래 다 이런 것 아니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리잖아요.

또 하다 말수도 있지만,

뭐라도 되겠죠. 뭐라도 남겠죠.

적어도 남겨놓은 기록들만이라도, 남겠죠.


p.s :

그나저나,

저 슬리퍼. 그냥 바꾸러 갔어야 했을까?

분명 내 발보다 한 치수 큰 자리에서 꺼내서 사 온 건데,

택 다 뜯고 이미 반나절을 신고 보니

내 발보다 한 치수 오히려 작은 슬리퍼였던 것.

그조차도 왜 반나절이나 지나서야 알았을까.

그냥 종일 걸어다니느라

발이 퉁퉁 부어 안들어가는줄 알았다.

이렇게나 무심하다.

내 몸에 달린 내 발에 신긴 슬리퍼인데.

아마도 누가 신어보고 제자리에 안 두었었나 보다.

그걸 또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난 사가지고 온 것이고.


이렇게나 그냥 되는대로 산다.

누가 보면 참 답답한 사람이다 할 수 있겠지만.

그냥 이런 것에 또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고 사는

저 같은 사람도 있는 거거든요.


스무 살의 나와, 마흔 살의 내 이야기를

두서없이 정신없게, 풀어나가보겠습니다.

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요.

그냥 제 자신을 위해서요.


그래도 다들, 안녕하시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