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에 하는 유학의 장점

나이 때문에 유학을 망설이는 30대 직장인이게

by 김물개


*이 글은 유학을 권장하는 글이 아닙니다*



쓸데없는 망상을 잘하는 나지만 의외로 이미 벌어진 일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라 후회도 잘 안 한다. 승진을 한 지 얼마 안 돼서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혹시 모르니 퇴사 말고 휴직을 하라는 사람들에게 싫다고 했을 때, 다들 물었다. “후회 안 할 자신 있어?”. 솔직히 자신까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그렇게 안 하면’ 후회할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그렇게 30대 초반, 나는 미국에서 다시 학생이 되었다.


최후의 보루였던 유학생이라는 선택을 하고, 생전 해본 적도 없던 디자인을 공부해서 감사하게도 다시 밥벌이를 하게 된 지금 그때의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은 ‘좀 더 일찍 왔더라면’ 하고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대개 어릴 때 유학을 와서 모국어보다 영어가 더 편한 사람을 만날 때이다. 아무래도 어린 나이에 유학을 오면 한 나라의 언어나 문화를 훨씬 자연스럽게 익히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어딜 가든 나이를 따져대는 한국 문화는 싫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는데 어린 나이는 절대적으로 유리하다고 생각하기에 (실패해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이 학교를 다녔던 한참 어린 친구들을 볼 때 부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어리지 않은(?) 나이에 유학을 온 사람으로서 느꼈던, ‘30대에 하는 유학의 장점'도 몇 가지 있다. 물론 지극히 나의 의견이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닐 테지만, 혹시라도 하고 싶은 것이 분명하고 능력도 있는데 단순히 나이 때문에 유학을 망설이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점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솔직히 죽을 만큼 힘들진 않다


힘듦의 정도는 사실 상대적인 것이라 나의 이 표현이 누군가에게 반감을 줄 수도 있을 테지만, 오해는 마시라. 나는 유학생활이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가 제일 쉬운 사람이 아닌 이상 나이를 불문하고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고, 돈을 벌며 자리를 잡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외로움과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함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어야 할 감정이다. 예측불가능한 사건사고들은 덤으로. 특히 코로나 시기에 유독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나 역시 5평 남짓한, 빛하나 들어오지 않는 방에서 2주 넘게 칩거생활을 하면서 '내가 여기서 죽어도 아무도 모르겠지'라고 생각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렇다고 어디 학교 생활은 좀 나은가. 막학기에 인턴에, 수업에, 인터뷰에, 거기다 졸업 포트폴리오까지 준비하며 나는 평생 샐 수 있는 밤은 다 새운 것 같다. 사실 30년 평생 밤을 새본 적이 한 번도 없고 '난 죽어도 잠은 자야 돼'라는 주의였던 지라 어떻게 그렇게 유학생활동안 툭하면 밤을 새우고 낮과 밤이 뒤바뀐 삶을 살았는지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다. (아마도 가진 건 체력뿐이었던 듯) 거기다 디자인이라곤 포토샵 조금 끄적거려 본 게 전부인 내가 전혀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건 꽤나 큰 도전이었다. 쏟아지는 과제를 꾸역꾸역 해내고, 어떻게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데 이 과정이 어찌 즐겁기만 했을까. 고백하건대 난 그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도 아니고, 실제 나의 유학생활 하루 하루는 즐거움보다는 늘 고통과 스트레스의 연속이었던지라 때때로 ’증발해버리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구구절절 말했지만 핵심은 아무리 생각해도 2년간의 지난 유학생활에 무엇하나 쉬운 건 없었다는 거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이라면 감히 말하건대 이 정도는 다 견딜 수 있다. 내가 누구보다 특출 나게 독해서도 아니고, 긍정적이어서도 아니고, 경험이 많아서도 아니다.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유학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대개 문제가 명확하고, 선택지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학업 그 자체 거나, 영어라든가, 재정문제라든가 혹은 유학생 모두가 맞닥뜨리는 신분문제라든가. 유형이 매우 비슷해서 보통은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거나, 미리 경험한 사람에게 자문을 구하며 해나갈 수 있다. 마치 보기가 정해져 있는 객관식문제 같다. 하지만 직장인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오는 무료함이나 출근길이 무슨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기력함,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들과 적당히 잘 지내면서 늘 괜찮은 사람인 척을 해야 하는 부담감, 주어진 밥그릇은 해내야만 한다는 압박감, 원치 않는 회식에서 즐거운 척을 해야 하는 피곤함. 난 이런 것이 훨씬, 훨씬 힘들다고 생각한다. 일단 답이 없고, 어차피 뭘 해도 모두를 행복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시선을 신경 쓰며 살아야 하는 한국 30대 직장인의 삶은 분명 유학생의 삶보다 무겁고, 고단했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학생으로 돌아가는 것 자체는 너무 싫었지만 (난 자본주의의 노예니까), 막상 학생이 된 이후의 일상은 오히려 단조롭고 심플해서 마음은 더 편한 경우가 많았다. 그냥 정신 똑바로 차리고 좀 더 부지런해지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빨리 잘할 수 있을까만 고민하면 된다. 재수가 너무 없어서 사건 사고에 얽히거나 몸이 아프지만 않다면 유학생 라이프는 사실, '나름 할 만하다.' 물론 그렇다고 다시 하고 싶다는 것은 절대 아니고.



뚜렷한 목적의식


경험상 30대에 유학을 하는 사람들은 3가지 케이스로 나뉜다.

1) 원하는 바가 있어 꿈을 좇아 오는 경우

2) 배우자의 주재원/해외 발령을 따라 온 경우

3) 지적 호기심 혹은 학위 자체에 열망이 있는 경우

내 주변엔 1번 케이스가 많았다. 그리고 이런 이유로 온 사람들은 당연히 절박함의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포기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등살에 떠밀려,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몰라서 어쩌다 보니, 남편/아내 따라왔는데 할 게 없어서 등등 여러 이유로 학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적지 않은 시간과 자산을 투자하고 유학을 오지 않았다면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기회비용으로 지불해야만 하는데 '안되면 말고'의 태도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또한 돌아갈 곳이 없다는 사실 역시 30대 유학생이 강해질 수밖에 없는 요인이 아닐까 한다. 나 역시 그랬다. 기다려 줄 테니 휴직하고 돌아와서 일하라는 전무님의 권유에 ‘퇴직금으로 학비 보태야 돼서 휴직은 못해요'라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진심은 돌아올 구실을 만들면 안 될 것 같았다. 배수의 진을 쳐야 어떻게든 뭐라도 하겠지 라는 생각으로 떠났고, 그런 마음으로 왔으니 누가 뭘 하든, 어딜 놀러 가든, 얼마나 좋은 집에 살든, 얼마를 벌든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그저 실리콘밸리에서 UX디자이너가 되느라 바빴으니까.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집안이 유복하거나 처음부터 나와는 가진 환경이 많이 달랐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모은 돈 다 털어놓고 그걸로도 한참 모자라 통장에 기하급수로 커져가는 마이너스 숫자를 보며 생활해야 했던 내가 애초에 시작점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면 심심치 않게 현타가 오고는 했는데,아마도 어린 나이에 유학을 왔다면, 상대적으로 이런 자극에 훨씬 취약해 열등감을 느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부정적인 감정은 가뜩이나 바쁜 유학생활에 distraction(방해요소)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온 나는 사실 그런 것 따위에 신경 쓸 여유 따윈 없었다. 참 너무 다행이다.


실패를 해도 빠져나갈 구멍이 있는 사람과, 이미 버린 게 너무 많아서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사람. 누가 더 절박하고 간절할까? 같이 유학을 했던 몇 안 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확신했다. 뚜렷한 목적의식과 절박함으로 무장한 30대 유학생은 높은 확률로, 결국 뭐라도 해낸 다는 걸.




빠른 회복탄력성


마지막으로 미국에서 취업을 하며 가장 감사했던 부분 중 하나인데, 행여나 시련이 와도 금방 회복한다는 것이다. 영어로는 Resiliency라고 하는데, 나는 30대 유학생의 회복 탄력성이 누구보다 높을 것이라 추측한다. 왜냐, 이미 한국에서 다 겪어본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취업과정은 더더욱.


알다시피 취업을 하는 과정은 희망과 좌절의 무한 루프이다. 어떤 날은 내 디자인이 괜찮아 보였다가 또 다음 날은 ‘이런 쓰레기를 보고 누가 날 뽑겠어' 하며 좌절하고, 인터뷰가 잡히면 열정이 뿜뿜이었다가 탈락하면 또 저 아래 지하 바닥까지 가라앉는 기분이란. 멘탈이 어마 무시하게 강한 사람도 가끔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무기력증이 찾아오기도 하고, 하염없이 울적하고 짜증이 나는 것이 구직활동인 것 같다. 거기다 미국의 유학생은 시간제한까지 있다. 졸업 후 본인이 선택한 날짜를 기준으로 90일 안에 취업을 하지 못하면 불법체류자로 한 순간에 신분이 변하기 때문이다. 실로 환장하게 하는 조건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미 한 차례 겪어 내성이 있는 30대는 이 무한 루프 열차에서 튕겨져나가지 않고 생각보다 금방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나도 참 지겹게도 인터뷰에서 떨어지고, 거절당하고,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했지만, 힘든 순간도 20대 때에 비해 비교적 빨리 털어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미 해본 '짬바'덕분이 아닐까 한다.


회사에 들어와서도 늘 생각하지만, 경험치가 주는 심리적 힘은 엄청나다. 마치 나도 몰랐던 은행의 이자 같다. (이자는 너무 적으니 코트 속에 숨겨놓은 비상금 정도 되려나) 아무튼, 비록 과거의 경험이 현재의 상황과 그다지 관련이 없다고 해도, 크고 작은 어려움과 고비를 넘겨본 당신이라면 결국 시련은 지나간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유학생활에서 찾아오는 힘든 순간에도 더 의연히 대처할 수 있다.






후회 최소화 법칙 (Regret Minimization Framework)


아마존의 창립자 제프 베조스 회장이 했던 말 중에 후회 최소화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지금은 세계 최고 부자가 된 이 아저씨도 처음엔 창업을 할지 말지 고민을 했었다고 한다. 그때 80살이 된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최대한 후회를 적게 하고 싶다는 전제 하에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한다.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어떤 행동을 한 것을, 혹은 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가?" 그는 이 질문 끝에 고액 연봉을 받는 헤지펀드사를 그만두고 시애틀에 있는 자신의 집 차고에서 아마존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다. 실패하는 것보다는 시도하지 않은 것을 회상할 때 느끼는 후회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는 유학을 무조건적으로 예찬하는 사람도, 유학의 끝이 현지 취업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아니다. 하지만, 과거의 나처럼 목적이 분명한데 단순히 '나이' 때문에 유학을 망설이고 있다면, 잠시 나이를 접어두고 당신이 진짜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그것에 나이가 정말로 걸림돌이 될지를 고민해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어쩌면 한국에서만 유독 획일화되고 가혹한 '30대 직장인'의 표본과 사회적 기대치에서 벗어나는 것이 두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이라는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어떤 것이 옳은 지는 우린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도 나도 이미 알고 있는 말이 하나 있다.


No pain, No gain. (고통 없이 얻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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