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넌 대체 무슨 일을 하는데?

UX 디자이너, 그리고 디자인 시스템

by 김물개



작년 여름 향수병을 핑계로 한 달간 한국에 방문했었다. 사실 미국에 오기 전까지 디자이너 친구는 커녕 디자인 씬에 아는 지인도 없던 지라 한국에 있는 나의 지인들 대부분은 UX 디자인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가족들도 마찬가지고. 그래서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과 학교는 어땠는지, 샌프란시스크 생활은 어떤지, 영어는 할 만한지 등에 대해 신나게 얘기하다 보면, 꼭 공통적으로 물어보는 질문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조심스럽게. 물어보는 게 실례도 아닌데.



"저기.. 그런데 도대체 네가 하는 일은 그래서 뭐니?"



처음엔 부모님에게, 그다음엔 친구들에게, 그리고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을 반복하다 보니 의도치 않게 나름의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설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우선 팩트는 이렇다.



현재 나의 직무 타이틀은 UX Designer이다.

회사에 따라 Product Designer라고 부르는 곳이 있고, 간혹 Interaction Designer라고 부르는 곳도 있다. 이건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C사의 협업 플랫폼인 Webex의 디자인그룹 소속이다.

나는(+ 우리 팀은) Webex의 디자인 시스템을 만든다.



여기서 따라오는 Top 2 질문.


그럼 UX Designer는 뭘 디자인해? 웹사이트? 아님 앱? 그 소프트웨어 화면을 네가 만드는 거야?

(만약 디자인에 조금 관심이 있다면) 디자인 시스템이 뭐야? 일반 UX 디자이너랑 달라?


그럼 이제 위 두 개의 질문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자.





사용자 경험, 그게 대체 뭔데


UX에 대한 정의는 사실 이제 TV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한 용어가 되었다. 사실 단어 뜻도 별로 어렵지 않다. User Experience = 말 그대로 '사용자 경험'. 하지만 솔직히 이 단어는 너무나 추상적이고 광범위해서 ‘그래서 도대체 그게 뭔지’에 대해 일반인이 감을 잡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사전적 정의로서의 사용자 경험은 인간이 제품 혹은 서비스를 사용하며 겪는 총체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품 혹은 서비스라고 표현한 이유는 UX가 단순히 눈에 보이는 Product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abillion-F0e3AdcwVbM-unsplash.jpg 모바일앱이든, 웹사이트든 사용자가 있는 모든 곳에 UX가 있다


가령 밤중에 야식이 당겨 야밤에 치킨을 시켜먹는다고 치자. 김아무개가 휴대폰에서 배달앱을 실행해서→ 치킨을 검색한 뒤→ 내용을 확인 후 주문을 하고 → 배달원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다가 → 치킨을 건네받은 후 → 맛에 감동하여 후기를 남기고 → 다음 날 다이어트 따위는 까먹고 또다시 치킨을 시켜먹는 것.

이 모든 과정에서 사용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액션을 취하는 모든 ‘경험' 이 UX다. 이 경우엔 사용자의 경험 대부분이 모바일 플랫폼에서 일어나므로 UX 디자이너가 실제로 디자인하는 것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일 테지만, 엄밀히 말하면 사용자 경험이 일어나는 모든 곳에서 UX 디자인의 니즈가 발생한다 -모바일 앱이든, 웹사이트든, VR게임이든, 자율주행차든, 메타버스든, 뭐든지 간에. 국밥집에서 국밥을 시키는데 메뉴판 글씨가 너무 작아서 손님들이 자꾸 다른 메뉴를 주문한다면, 이 국밥집은 메뉴판의 사용자 경험을 개선시킬 필요가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디자인하든지 간에, UX 디자이너의 제일 중요한 역할은 이러한 일련의 사용자 경험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늘 사방에 널려있다. 사용자가 치킨 검색을 하는 과정이 어려워서 이탈률이 높을 수도 있고, 치킨가게가 너무 많아서 그 많은 정보를 어떻게 선별해서 보여줄 것인지에 대한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이걸 디자인으로 해결하는 거다. 디자이너가 아니었던 사람의 입장에서 나는 이 점이 가장 끌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를 ‘보이는’ 디자인으로 해결해주는 것. 알고 보면 숫자놀이가 대부분이었던 마케팅과는 달리 보다 실질적인 해결책을 주고, 무엇보다 궁극적으로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역할이 아닌가! 입으로만 떠드는 사람 아니고, 뒤에서 돈놀이하는 사람 아니고,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 이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가!!



+여기에 덧붙여 개인적으로 UX 디자이너의 역할은 단순히 문제 해결이 아니라 그것을 비즈니스 임팩트로 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회사의 목적은 이윤 창출이다. 디자이너는 무언가를 보기좋게만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심미적인 개선도 업무 목표가 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최종 골이어서는 안되고, 궁극적으로 그것이 어떻게 비즈니스에 임팩트를 줄 수 있는지 늘 고민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UX 디자이너는 그냥 예쁘게만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다. 슬픈 것은 사실 회사에 있으면, 그리고 복잡한 제품을 만들다 보면 예쁜 디자인을 할 일도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예쁜 게 전부는 아니거든.





디자인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


alphacolor-ipmwlGIXzcw-unsplash.jpg 레고와 닮은 점이 참 많은 디자인 시스템


디자인 시스템을 설명하는 가장 좋은 예시는 레고가 아닐까 한다. 디자인 시스템 관련 영어로 된 자료를 찾다 보면 심심치 않게 “Building Blocks”이라는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만큼 디자인 시스템을 잘 표현한 구절이 없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언급한 치킨 주문 예시를 다시 들어보겠다. 여기서 사용자가 쓰는 제품, 즉 배달앱을 하나의 완성된 레고 집이라고 생각해보자. 레고 집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부품이 들어간다. 집을 세울 판때기 (주로 초록색이더라)가 있고, 벽을 이루는 벽돌들 하나하나, 지붕, 창문, 굴뚝, 집 앞 정원에 있는 가짜 꽃까지. 이 모든 부품들을 조립해서 하나의 집이 완성되는 거지.



디자인 시스템은 사용자들이 효율적, 체계적, 그리고 성공적으로 레고 집을 완성할 수 있도록 ‘집짓기 세트’를 제공하는 것이다. 여기엔 많은 업무들이 포함되는데 가장 기본적인 3가지는 이렇다.



1. Component Library (컴포넌트 라이브러리)

레고 집에 쓰이는 부품(Component)들을 만들고, 이 부품들이 모여있는 저장소인 컴포넌트 라이브러리를 관리하며 업데이트한다.


2. Documentation (가이드라인)

각 부품이 언제 어떻게 쓰이는지에 대한 설명서 (가이드라인)을 작성한다. 단순히 빨간색 블록은 벽돌용, 노란색 블록은 거실 바닥 용도라든지, 창문은 1번 벽을 만들면서 조립한다든지. 나아가 이것이 어떤 콘셉트의 레고 집으로 되어야 하는지, 다른 레고 집들과 어떻게 융합되는지 좀 더 총체적인 관점 (브랜딩)을 제시해주면 좋다.


3. Communication (커뮤니케이션)

하지만 때로는 설명서를 봐도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때문에 집을 짓는 사람들 (주로 디자이너, 엔지니어)을 효율적으로 서포트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타임을 가진다거나 (Office Hours), Q&A 게시판을 만드는 것이 있다.



이것을 나의 업무에 빗대어보면 결국 나는,



협업 툴인 Webex를 디자인하기 위한 컴포넌트들 (예: 버튼, 입력 폼, 카드)를 플랫폼 규격에 맞추어 디자인하고, 실제 화면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이것을 잘 사용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제공해주어야 하며, 디자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모든 사람들 (디자이너, 엔지니어, 마케팅 등등) 이 쉽고 올바르게 디자인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유지 관리하고, 진화시키는(시켜야하는) 사람이다.



즉 나의 엔드유저는 웹엑스를 사용하는 바깥세상의 사람들이지만, 1차 유저는 회사 내부의 디자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모든 동료들인 셈이다. 이들이 디자인 시스템을 사용하면서 겪는 모든 크고 작은 경험(UX)을 개선시키는 디자이너. 한마디로 내가 디자인하는 제품은 디자인 시스템 그 자체인 것. 늘 진화해야하는 시스템인지라 어떤 사람들은 디자인 시스템을 가리켜 'Never ending product'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쓰고 나니 임무가 막중하다. 그래서 이렇게 힘든가 봐.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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