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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아나 Jan 27. 2022

쓸데없는 자책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첫 담당 업무가 생긴 이후로 몇 달 동안 큰 이슈 없이 열심히 일을 해낸 듯했습니다. 

이제 스스로 어떤 루틴 같은 게 생기기도 해서, 

이거 다음엔 저거, 저거 다음엔 이거 생각하지 않아도 손과 발이 딱딱 합을 맞춰 움직일 때도 있었죠. 


그런데 항상 뭔가 익숙해졌다고 생각이 들 때쯤, 

마치 정신차려!라고 하는 듯 사고가 터지곤 하는 것 같아요. 



여느 때처럼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1등으로 도착했던 날이었습니다. 

자리에 짐을 내려놓고, 사장님 방으로 들어가 휴지통을 비우고 화분에 물을 주었고, 

테이블을 닦고 오늘자 신문을 내려놓았습니다. 


오전 업무 중, 사장님이 출근을 하셨고 평소와 같이 음료 2가지를 준비해 사장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음료를 내려놓고 자리에 앉아마자 호통 소리가 뒤통수를 향해 날아왔어요. 

어제자 신문을 치우지 않고, 오늘자 신문과 섞인 채로 그대로 테이블 위에 두고 나왔던 겁니다. 


그리고 한바탕 또 난리가 났던 건, 2가지 음료 중에 하나였던 홍초를 며칠 전 새로 구매했는데

복분자맛을 사야하는데, 석류맛으로 잘못 샀던 겁니다.


사무실 분위기는 싸하게 얼어붙었고, 

누구 한명도 대놓고 '너가 잘못했네, 일을 왜 그렇게 했어...'라고 지적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아무말도 없는 그 묘한 정적이 스스로를 더 자책하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누구라도 '다음부턴 그러지마'라고 말해줬다면, 

그래 다음부턴 그러지 말자라고 다짐하며 웃어 넘길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지금 생각하면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만 나오는 일이지만 어렸을 때 부모님께 혼나던 것을 제외하고, 

성인이 된 이후로 이렇게 큰 질책과 호통을 들어본 게 처음이었어요. 

너무 무서웠고, 적막함 속에 철저하게 혼자인것만 같았습니다. 

(무슨 대단한 실수였다고 말이죠;;)


그 때 이후로, 회사 생활을 10년이 넘게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저는 스스로의 실수에 전혀 관대하지 못합니다. 

실수가 크고 작건 간에 저의 실수는 오롯이 제가 해결해야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저 뿐만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마찬가지였어요. 과도한 책임감과 완벽해야한다는 압박감에 짓눌려있었죠.)


실수 하지 않기 위해서 머리속으로 계속 반복해서 시뮬레이션을 하고 최악의 상황들을 가정해 백업에 백업을 만들고, 

저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을 들들 볶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문제는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오고, 그럴 때마다 저는 또 굴을 파고 들어가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습니다. 


한번이라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다음부터 그러지 않으면 된다'라고 얘기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지금보다 조금은 더 스스로에게 여유를 베풀어 주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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