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음악과 함께라면 더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날은 내 마음이 편안해지는 날이다.
푸르른 식물과 감각적인 그림들로 가득 찬 카페의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지인과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좋아한다. 여행 도중 만난 비 덕분에 숙소에 누워 빗소리를 베개 삼아서 책 속 주인공의 하루를 따라가보는 여유로움도 좋아한다. 그리고, 나른한 재즈음악을 들으며 재즈의 리듬에 맞추어 붓을 움직여 몇 시간이고 그림에 빠져드는 날도 좋아한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느린 템포의 재즈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재즈 리듬을 듣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힐링이 되고 마음은 나른해진다. 갑자기 음악 얘기를 왜 하는지 이상한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날은 그림 그리는 날이다. 그 중에서도 재즈음악과 함께 하는 그림 그리는 시간은 더욱 특별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리고 색감을 다채롭게 표현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에 가득 찼던 온갖 걱정거리나 해야 할 의무, 나를 옭아매던 책임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온전히 집중하여 무아지경에 빠진 듯 몰입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가버린다. 나에게 그림 그리는 시간이란 스트레스를 풀고 힐링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그림 그리기의 또다른 매력은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의 지난한 글이나 어영부영한 말보다 내 감정을 더 뚜렷하게 전달해 주기도 한다. 구구절절 말로 표현하기 힘든 나의 슬픔이나 좌절감뿐 아니라 나의 열정, 내가 느끼는 아름다움에 대한 환희까지, 내가 느꼈던 감정과 사색했던 것들을 끄집어 내어 오브제와 색감으로 다채롭게 표현하다 보면 어느덧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내가 그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주제를 공감해주는 분이 나타나면 나의 카타르시스는 더욱 더 커진다. 오랜 마음의 벗을 만난 것 같은 충만감도 함께 든다. 2년 전, 아이 학교에서 학부모 그림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전시회를 했을 때 그런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꼭 말을 하지 않더라도 비슷한 경험을 공유한 사람끼리는 그림 한 장 만으로도 통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그림은 비록 작고 또 미숙할지라도 우리집 벽을 장식해 준다. 그림이 완성되어 우리집 실내를 장식할 생각을 하면 더욱 신이 나고 기대감에 심장이 두근거린다. 미술 전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마음에 드는 그림을 감상할 때 느끼는 만족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커진다. 어느덧 우리집 거실 벽은 내 그림과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렸던 그림으로 가득 채워졌다. 내 그림을 보면 그 당시 내 관심사와 내가 느꼈던 긍정적, 또는 부정적 감정이 떠오른다. 나는 미래에 관심이 많지만, 가끔은 과거를 반추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위의 배경에 있는 여성의 그림이 이번 해 여름이 오기 전에 마무리한 유화이다. 제목은 "독서하는 나, oil on canvas". 의식적으로라도 책을 옆에 두고자 하는 나와 달리, 우리 가족은 동영상을 훨씬 좋아한다. 독서하는 집안 분위기를 꿈꿔왔던 나에게는 참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내가 추구하는 바를 그림으로 표현해보았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인물화는 처음이었기에 한 명을 그렸는데도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웠다. 게다가 그림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마지막 작업은 항상 지난하기 마련이다. 풍경화나 추상화보다는 인물화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독서하는 나" 그림은 거실 소파 옆에 걸어두었다.
복도에는 주로 아이들 그림이 걸려있는데, 그 그림들을 보고 있노라면 아이들의 어리고 사랑스러웠던 시절로 잠시 돌아가서 회상에 빠지게 된다. 매일 똑같은 그림이 걸려있더라도, 복도를 지나가다가 문득 눈에 띄는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내 얼굴은 흐믓한 미소로 가득 찬다. 예전의 행복했던 – 또는 행복했다고 미화 해버린 - 추억에게 잠시 내 곁을 내어준다.
9월 말이지만 아직도 많이 무덥다. "지구열대화"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라는 것을 매일 느낄 수 있다. 그래도 오늘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이제 비가 그치면 더위가 서서히 끝나고 시원한 바람이 불 것이라 기대한다. 시원하고 쾌적한 가을이 되면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한다. 새로운 기법의 추상적인 표현을 그려보고 싶다. 새로운 그림이 마음에 든다면, 예전 그림은 기꺼이 자리를 양보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