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감상을 즐기는 나는 아이들 학교에서 하는 각종 공연이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하곤 한다. 얼마 전에도 둘째 아이 학교에서 합창단 공연이 있었다. 학부모 대상으로 학교에서 보내주는 공연소식 알림이 떴을 때, 나는 바로 티켓 신청을 하고 아이한테 얘기했다. 아이는 예상외의 답을 내놓았다.
"나 안 갈 건데?"
"응? 뭐라고? 정말 안 가?"
"응"
"왜애? 항상 갔잖아!"
"왠지 시시해졌어. 그리고 학원 숙제 할 게 너무 많아"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아이는 이미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아쉬웠다. 아이 학교의 합창단은 전국 대회에서 1,2등을 할 만큼 실력이 있고, 그만큼 재미있는 공연을 선보여 왔기 때문이다. 아이 학교 합창단은 소위 "Performing Arts"를 추구하기 때문에 노래만 부르지 않는다. 매년 창의적인 컨셉을 정해 위트 있는 노래와 재미있는 율동으로 관중을 행복하게 해 줄 만큼 훌륭해 매년 빼놓지 않고 봐 왔다.
결국 나는 아이의 의견을 존중해 공연장에 가지 않기로 했다. 사실 저녁에 운전해서 공연장을 다녀오는 것이 피곤한 일이기도 했다. 그 대신, 아이가 받아온 티켓을 다른 친구에게 양도해서 억울하게 못 가는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말을 해두었다. 그러나, 며칠 동안 티켓 봉투는 계속 식탁 위에 머물러 있었다.
공연 당일 아침에도 아이에게 학교에 가져가서 티켓을 못 받은 아이에게 주라고 다시 말하였지만, 아이는 티켓을 그냥 놔둔 채 등교해 버렸다. 오후가 되어 하교한 아이에게 간식을 먹이고 학원에 데려다주려고 같이 나가는데, 아이는 갑자기 공연에 가겠다고 선언했다.
"뭐? 그런 게 어디었어? 갑자기 왜 마음을 바꾼 거니?"
"친구들이 공연 보러 간대."
하,,, 친구 따라 강남까지 가는 유형인 둘째 따님 덕에 첫째 아이 때는 몰랐던 극적인 경험을 종종 하게 된다.
"엄마 지금 입은 옷도 별로야. 꾸미지도 못했는데?"
"엄마, 평소 공연 갈 때 보다 지금이 더 나아. 훨씬 자연스러워. 난 자연스러운 모습이 더 좋아."
"......"
달리는 차 안에서 아이는 심지어 늦게 가면 좋은 좌석으로 바꾸지 못한다고, 학원도 중간에 나오겠다고 한다. 선생님께 연락해 달라는 숙제까지 던져준다. 그리고, 저녁식사도 해야 하니 음식을 준비해 두라고 한다. 참나, 어이가 없었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줘야지. 여기저기 연락하면서 아이의 과제를 하나씩 클리어하며 기다린 끝에,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아트센터로 출발했다. 퇴근시간이라 이미 차가 꽉 막혀서 마음이 급해졌다.
7시에 공연이 시작인데 6시 전에 아트센터에 무사히 도착한 우리는 티켓을 교환하는 곳으로 바삐 갔다. 그러나, 티켓팅 부스는 아직 오픈도 안 한 상태였다. 하하하... '이럴 줄 알았으면 수업이나 다 듣고 오게 할걸......' 하는 후회가 잠시 들었다. 팜플렛을 몇 번이나 보다가 아는 사람이 보이면 인사하면서 무료하게 기다리다 보니 어느덧 공연 시간이 되었다. 금년 공연의 컨셉은 "여행"으로 역시 볼거리도 많고 유쾌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더웠던 금년 여름을 힘들게 보내며 지쳐 있었던 나에게 합창단 공연은 단비처럼 시원하고 달달했다.공연이 끝났을 때 나는 열렬히 박수를 쳤고, 앙콜 공연까지 관람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공연장을 벗어났다. 내 얼굴에는 물론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역시 오길 잘했어.'
하지만, 걸려있던 미소는 점점 사라졌다. 한 편으로 씁쓸했기 때문이다. 공연을 마칠 때마다 많은 박수를 받는 아이와 같은 학년인 친구들과, 안면이 있는 후배 아이들을 보고 있으려니 약간 속이 상했다. 우리 아이는 졸업할 때까지 무언가 기억에 남을 만한 활동을 못했기 때문이다. 문득, 아이가 작년 합창단 오디션에 아무런 준비 없이 참여하여 장렬히 떨어졌었던 기억이 스쳐 지나갔다. 학원에 등록해서 준비하라고 했더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하면서 친구와 함께 준비했다가 둘 다 떨어졌었다. 사실 합창단에 우리 아이가 합격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별로 없었기에 별로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학교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정말 마음 아픈 일이었다. 가족들 모두 인정하는, 소위 공인된 '똥고집'인 둘째는 유치원 때부터 바이올린 수업을 듣자고 설득하고 1/4 사이즈의 바이올린을 사 준 엄마의 바람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 나는 다시 1/2 바이올린을 사주고 레슨을 받자고 했으나 역시나 요지부동으로 말을 듣지 않았다. 바이올린을 살 때는 레슨 받기로 하고 나중에 마음을 바꾸는 아이를 어찌해야 할지 참 난감했다.
그러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주변에 친한 친구들이 오케스트라 오디션을 준비한다는 말을 듣고서는, 갑자기 오디션을 보겠다고 급발진을 해버렸다. 하..., 결국 늦게나마 친구들이 다니는 학원에 등록하여 레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시 학년이 올라간 후 스즈끼 3권을 거의 다 나갔을 때쯤 오디션 곡이 공지되었고 이를 급하게 준비하였다. 오디션 곡은 '슈베르트의 로자문데 서곡 (F. Schubert, Rosamunde Overture)'이었는데, 전국 대회에 나가기 위해 준비 중인 협주곡이었다. 전국 대회에서 항상 좋은 성적을 거두는 아이 학교 오케스트라는 그 해에도 어김없이 전국 대회에서 2위를 차지했다. 오디션을 준비하는 동안, 그새 자란 아이의 팔 길이에 맞게 다시 바이올린을 3/4 사이즈로 구입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예비 5학년으로 오디션에 신청한 둘째는 나름 열심히 준비했다. 그러나 오디션 곡이 기존에 들어보거나 연주해 본 곡이 아니라 생소하고 어려웠기 때문에 단 몇 주만에 완전히 소화하기는 힘들었다. 결국 오디션에 떨어졌다. 너무 잘하는 저학년 아이들이 많이 참가하였다고 한다. 둘째는 그 후로는 바이올린에 관심을 완전히 잃고 대회에 나가자는 원장 선생님의 권유도 뿌리친 후, 바이올린을 놓아버렸다. 이 얼마나 씁쓸한 경험인가.
이에 비해, 큰 아이는 해외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초등학생 때 학교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활동을 모두 잘 해내었다. 매년 시즌마다 합창단 공연을 했는데, 성탄절 즈음에는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공연도 하였다. 산타 모자를 쓰고 크리스마스 캐럴을 포함해 여러 곡을 합창하던 큰 아이의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그 당시 아기였던 둘째 아이를 안고 뿌듯한 엄마의 마음으로 큰 아이의 크리스마스 공연을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떠오른다. 큰 아이가 활동한 학교 오케스트라는 정기 공연뿐만 아니라 학교 뮤지컬에도 협연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둘째를 데리고 오케스트라와 뮤지컬 공연을 보러 학교 극장에 자주 갔다. 지금도 뮤지컬 '백설공주'와 '뮬란'의 장면과 이에 어우러졌던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큰 아이를 자랑스러워했던 감정이 새록새록 기억난다. 그 국제학교에서는 브로드웨이 출신의 아트 디렉터를 영입한 이후, 매년 유쾌하고 감동적인 수준 높은 창작 뮤지컬 공연을 한 덕에 큰 아이는 매년 공연 준비에 아주 바빴다.
합창단이나 오케스트라 활동 모두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시절 반 단위의 그룹 활동 규모를 넘어서는 대규모의 조직 활동이며 사회 활동이다. 아직은 미숙한 아이들이지만, 조직의 높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보통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노력과 성취, 사회 활동을 훌쩍 넘는 수준을 경험하게 된다. 우선 많은 연습과 노력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아이들 간에 경쟁과 시기, 알력 다툼도 경험하면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긴 시간 정진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한 단계, 아니 몇 단계 더 성장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이다. 이 얼마나 값진 경험인가?
큰 아이는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오케스트라 활동을 계속했고 외부 봉사단체에서 가입하고 싶다고 하여 자선 활동도 꾸준히 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첼로를 들고 라이드를 하고 간식도 챙겨줘야 하는 엄마의 역할은 만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보람을 느낄만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런 힘든 지원을 다시 해줄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는데! 바이올린도 몇 백만 원짜리를 다시 구입하며 오케스트라 맘이 될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아쉽게도 둘째 아이에게는 그런 멋진 기회가 오지 않았다. 합창단도 마찬가지로 활동할 기회를 잃었다. 생각해 보면, 큰 아이는 큰 아이답게 부모 말을 잘 듣는 편이었다. 내가 짜놓은 로드맵을 잘 실천해 주었기에 합창단 활동도 오케스트라 활동도 열심히 했다. 물론 본인이 원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우리 둘째는 막내답게 본인의 마음대로 고집을 피운다. 그리하여 합창단을 위한 노래 레슨도 거부했으며, 바이올린 레슨도 거부했다. 매년 두 번씩 참석하는 두 단체의 정기 공연에 가서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수준 높은 공연을 멋지게 소화하는 아이들을 볼 때면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맛을 느낀다. 그리고, 내가 큰 아이 때 했던 지원 활동을 하느라 바쁜 젊은 엄마들을 보면 그 씁쓸한 맛은 더 진해진다.
이제 내년이면 둘째 아이가 중학생이 된다. 중학교에 가면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역시 씨알도 안 먹힌다. 사실 아이가 들어갈 중학교는 특목고와 영재고를 많이 보내기로 유명하다. 이에, 그 중학교 오케스트라는 아이들 공부 때문에 오히려 현재 초등학교 오케스트라보다 연주 수준이 더 낫다고 알려주었지만, 우리 둘째는 이번에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