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음을 비우고 추석 때 시댁에 가서 중노동을 할 결심을 했다. 혼란스러웠던 내 마음은 가라앉고 어느새 편안해졌다. ‘에휴, 뭘 어쩌겠어......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이번 추석에도 내 한 몸 희생하는 걸로 해야지. 그냥 포기하고 아픈 걸로 하자.’
운전도 잘 못하고 길 눈도 어두운 나는남편이 한국에 없는 동안 독박육아를 해야 했다. 특히 큰 아이 입시를 위해 밤낮으로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서울과 경기도 사이에서 학교와 학원, 다시 학교를 오가며 엄청난 양의 독박 라이딩을 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내 양쪽 발바닥에는 염증이 생겼고, 조금만 무리해서 걷거나 운전을 오래 하면 발바닥이 아파졌다. 운전하면서 엑셀과 브레이크를 밟을 때는 오른쪽 발이 아팠고, 운전대를 돌려 코너링을하려면 양 팔꿈치와 팔이 아픈 지 벌써 1년이 훌쩍 넘었다. 이런 몸으로 분당에서 서울 강북까지 왕복 운전할 생각을 하니 너무 끔찍했다. 특히, 일을 끝낸 후 지친 몸을 이끌고 또렷한 정신으로 운전대를 잡은 채 아무 문제 없이 집에 돌아올 자신이 영 없었다.
내 사정을 알고 있는 큰 아이는 택시를 타고 가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금년 추석에는 생전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시댁에 이틀간 왕복하기로 결정했다. 시댁은 잘 곳도 마땅치 않고 그리 위생적이지 않아 항상 힘들었는데, 금년에 기후 재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추석 즈음에도 30도를 웃돌았다. 30도를 넘는 한여름 날씨에 에어컨도 없이 도저히 못 잘 것 같았다. 내가 일하는 동안 아이들이 뭔가 하기에도 어려운 환경이라, 차라리 내 한 몸 희생하는 김에 더 희생하기로 결심했다. 추석 전날은 나 혼자 시댁에 가서 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 잔 다음에, 추석 당일 새벽에 애들을 데리고 다시 시댁으로 가는 일정을 잡았다. 그리고, 남편에게 연락해서 내 계획과 함께 두 번의 왕복 택시비를 달라고 말했다. 짠돌이 남편은 내가 일하러 시댁에 간다고 하니 아주 흔쾌히 이틀간의 택시비를 부담하겠단다. 그의 흔쾌한 수락에 나는 괜히 더 섭섭했다.
내가 지병도 있고, 몸이 건강하지도 않은데, 게다가 연말에는 수술도 해야 하는 상황인데, 스트레스는 절대 받지 않도록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야 한다고 의사가 조언해 주었는데도, 나를 환자로 보지 않는 남편은 역시 '남의 편' 임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리고 명절 때만 되면 오는 현타가 다시 찾아왔다.
‘도대체 내가 왜 이 남자와 결혼을 해서......’
뉴스에서는 추석연휴를 맞아 10만 명 넘는 인파가 해외여행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을 빠져나갔다고 알려주는데, 내 인생은 여행과 하등 관계없는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 남들의 여행 이야기는 나를 더 열받게 했다. 추석 전날이 되었다. 아침에 아줌마가 오셔서 넓은 집을 함께 청소하고, 두 아이들과 강아지가 더럽히고 어질러 놓은 집안 곳곳을 끝없이 치우고 쓰레기를 버렸다. 그리고 출발할 때 시어머니께 조용히 연락을 드렸다.
“어머니, 추석 장보고 준비하느라 고생하셨죠? 저 청소 마치고 지금 출발해요. 오늘은 저만 가서 일하고, 내일 새벽에 다시 애들 데리고 갈게요.”
그랬더니 시어머니는,
“……응? 혼자 온다고?...... 그럴 필요 없다. 이번에 음식 안 차렸다. 나물만 해서 벌써 다 끝났어. 지금 설거지하는 중이야. 그러니 오늘 오지 말고 내일 와라. 새벽에 다 자는데 오지 말고, 그냥 8시나 9시에 차례 지낼 때 와.”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원래 명절 전날 저녁때까지 계속 일을 하는데 이번에는 웬 행운이 깃든 것일까!
아니다. 드디어 시어머니께서도 내 곱절의 기간 동안 힘들게 노동했던 명절에 지쳐서, 과중한 일을 덜어내기로 큰 결심을 하셨나 보다. 매년 일을 줄이자고 간청해 왔지만, 듣지도 않으셨는데...... 놀란 나는 기뻐서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대답했다.
“어머니, 너어~무 잘하셨어요. 어머니께서 만든 전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지만, 몸이 힘든데 안 하고 안 먹는 게 차라리 더 낫죠. 이제 명절 좀 편히 보내요...... 어머니, 힘드시게 일하셨는데 못 도와드려서 죄송해서 어쩌죠? 내일 차례 지낼 때 맞춰서 어떻게 가요~ 너무 염치없잖아요~~~ 애들 깨워서 일찍 갈게요!”
얏호~~~! 오늘 안 가도 된다니!!!
앗, 기쁨도 잠시, 남편이 이를 알게 되면 또 뭐라 할지..….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추석 전날 시댁에 안 가도 된다니!!! 새로운 변화는 항상 반가운 것!
우리 가족 세명은 추석 전날 저녁에 '생애 최초의 외식'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 후엔 카페 테라스에 편히 앉아 커피와 음료를 마시며 한가롭게 이야기도 나누었다. 어찌나 여유로운지…… 노을과 어우러진 푸르른 숲의 풍경이 눈앞에 보이니 오히려 현실감 없게 느껴졌다. 원래 이 시간이면 연기와 기름 냄새 속에서 열심히 전을 부치고 있었을 텐데......
추석 당일 새벽. 나는 6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흔들어 간신히 깨우고 택시를 호출해서 7시에 시댁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큰 아이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
“엄마, 나 장염 걸려서 먹으면 안 된다 하고 그냥 누워 있을게.”
“뭐? 아무것도 안 먹겠다고? 갑자기??? 배고파서 어쩌려고?”
“응. 나 할머니 음식 싫어하잖아. 비위생적이고. 입맛에도 안 맞고. 집에 와서 먹으면 돼.”
큰 아이는 대학생이 된 후 상시 다이어트 중이었다. 이에 질세라둘째도 맞장구친다.
“맞아, 나도 할머니 음식 먹기 싫어.”
허... 나는 시댁 음식이 맛있기만 하고만, 요즘 아이들 입맛에 시댁 음식이 맞지 않는 건 알았지만 명절 음식을 건너뛸 만큼 좋아하지 않을 줄이야...... 큰 아이는 말을 길게 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제 의사만 간단히 전달한 후 곧바로 잠에 빠져들었다. 두 아이가 잠든 조용한 택시 안에서 나는 창 밖으로 휙휙 지나가는 한강변의 풍경을 편하게 바라보며 시댁으로 이동했다.
시댁에 도착하니 7시 40분. 얼추 차례상 준비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런! 너무 늦었네! 금년에는 왜 이리 빨리 준비하신 걸까?’
상 차리느라 고생하셨을 시어머니와 형님께 면이 서지 않았다. 나는 얼른 손을 씻고 차례상 마무리를 도왔다. 이번에도 조카는 여행을 가서 보이지 않았다.
결혼한 후 시댁에 가서 가장 놀란 것 중에 하나가 외가와 달리 여자들은 제사를 안 지내는 것이다. 명절 음식을 차리기 위해 장보고 씻고 다듬고 요리하고 설거지하느라 고생하고 중노동한 여자들은 정작 제사에서 소외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상한 전통(?)에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의사대로 남자들과 함께 절을 올리고 제사를 지내 왔었다. 그런데, 하필 이번 차례를 지낼 때 시아버지께서 우리들에게 '다 같이 절 올리자'는 말씀을 한 번도 안 해주신 것이다! 아주버니까지 남자 두 분만 계속 차례를 진행하셨다. 큰 아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계속 나를 쳐다보았지만, 난 그냥 멍하니 서서 두 남자가 제사를 지내는 뒷모습만 지켜보았다.
‘나는 누구? 뭐 하러 여기에 왔을까?’
추석 차례상 앞에서 우리 셋의 존재감은 개미보다 못하게 느껴졌다. 우리 아이들 보기에도 참 민망했다. 보다 못한 시어머니께서 시아버지께 한 마디 말씀하셔서 드디어 우리도 함께 절을 올릴 수 있었다.
추석 차례는 단상이라 바로 끝났고, 나는 음식과 제사상을 정리했다. 역시 일하는 사람은 세 여자들 뿐. 차례를 마치자마자 두 남자는 향 불도 끄지 않고 방으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안되어 보였는지, 소파에 어색하게 앉아 있던 큰 아이가 과일 나르는 것을 도와준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손에 물 한 번 묻히지 않고, 학교에서 집안일 도와주기 행사를 해도 끝까지 도와주는 것을 견디지 못했던 아이인데! 처음 있는 일이었다. 시어머니는 다시 음식을 데우셨고 형님은 그릇과 수저를 다시 설거지했다. 나는 반찬과 수저를 상으로 날랐다.
상차림이 끝나자, 어느새 거실에 나타난 남자 어른 둘만 먼저 아침식사를 시작했다.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기주장이 강한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모습은 이상하고 낯선 광경이며 매우 불편하게 비칠 것이다. 시댁 어른들은 평소에도 덕담을 통해 아이들이 뭔가를 배운다거나 힘께 어울릴만한 거리도 얘기해 주신 적이 없다.
아침상이 다 차려지자 큰 아이는 예고한 대로 누워 있겠다며 바로 방에 들어가 버렸다. 이를 본 형님이 큰 아이를 좇아 방에 들어갔다가 나오면서 말했다.
“아주 먹는 족족, 싼다네.”
"아 네, 장염이래요."
'헉, 식사 자리에서 듣기 안 좋으니 차라리 다른 병명으로 바꾸라고 큰 아이한테 언질을 주었는데, 아이는 결국 바꾸지 않고 그대로 말했나 보구나. 누가 '최 씨' 아니랄까 봐 고집 좀 봐.'
조금 후, 둘째 아이도 입맛이 없다면서 밥을 반만 먹고 언니가 누워있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는 둘째가 남긴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입 안도 깔깔하고 차례 음식이 참 맛없게 느껴졌다.
식사 후 상을 치우고, 많은 양의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는, 시어머니와 형님을 위해 다방 커피 두 잔을 타드렸다. 나도 커피가 너무 마시고 싶었지만, 집에 가서 내 취향의 커피를 편하게 마시는 것이 낫겠다 싶어 두 잔만 탔다. 내가 주방 뒷정리를 하는 동안 시어머니는 우리가 가져갈 음식을 바리바리 싸 주셨다. 손녀가 밥도 못 먹고 누워있으니 마음이 불편하셨는지 재촉하신다.
“애도 아픈데 얼른 가봐라. “
“설거지만 다 하고 갈게요. 집 근처에 문을 연 병원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어요. 아무래도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나는 대답했다. 정리가 대략 끝나니 9시 반이 조금 넘었다. 방에 가니 큰 아이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피곤해 보였지만 나는 자고 있던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 택시를 호출했다. 어머니께는 팔다리가 아파 운전하기힘들어서 택시를 불렀다고 말씀드렸다.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리고 짐들을 들고 시댁 문을 나섰다. 시아버지께서는 왜 점심도 안 먹고 벌써 가냐고 역정을 내셨다. 우리는 아파트 정문 앞에서 기다리던 택시를 얼른 타고 집으로 출발했다. 택시 안에서 둘째가 말한다.
“와! 이번에 기록 새웠어!”
“응? 무슨 기록?”
“이렇게 빨리 나온 거 처음이잖아, 2시간 만에 나왔어! 개좋아!!!”
“말할 때 '개' 붙이지 말랬지!”
둘째의 말버릇에 바로 응징의 한마디를 해줬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둘째 아이 말대로 2시간 만에 시댁에서 탈출하다니, 정말 신기록이 맞았다. 명절 때마다 시댁에서 꼬박 이틀 동안 있었는데, 2시간 만에 나왔으니 성공적으로 신기록을 달성했다고 자랑할 만했다. 저절로 콧소리가 나왔다. 우리는 집에 가서 푹 쉬었다. 큰 아이는 집에 와서 본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간단히 챙겨 먹고 잠을 잤다. 아이에게 병원에 가자고 했지만 쉬다가 다른 요일에 가겠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화장실에 들락날락하는 걸 보니, 영락없는 장염이 맞았다. 큰 아이가 냈던 묘수는 다행히도(?) 거짓말이 아니라 사실이라는 점에 안심이 되었다.
문제는 나였다. 이튿날부터 나도 화장실에 들락거리게 된 것이다. 큰 아이한테 옮았나 보다. 다행히 약한 장염인 것 같았다. 힘들 때면 몸에 염증이 생기는 편인데, 굳이 병원에 가서 항생제를 타 올 필요는 없어 보였다.푹 쉬면서 몸이 회복되면 자연치유가 되기 때문이다. 나는 남은 연휴 때 먹는 걸 조심하면서 일도 무리하게 하지 않으며 보냈다. 명절 연휴가 끝나니 장염이 가라앉았다. 큰 아이도 괜찮아졌다면서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역시, 명절은 나에게 편히 쉬지 말고 즐기지 말라고 알려주는 신의 계시 같다.
그래도이번 추석은 여러모로 바람직한 연휴였다. 추석 전날에는 생전 처음 외식도 해보았고, 추석날 아침에는 단 2시간만 시댁에 머물렀으며, 운전하지 않고 편안히 다녀왔으니, 삼단 콤보로 추석 신기록을 달성한 것이다. 내년 추석에도 이렇게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는 추석연휴 때 햇빛 가득한 화창한 날을 골라 단 하루라도 국내 어디든 휴식을 위한 힐링 여행을 가보고 싶다. 푸르른 하늘 아래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시원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의 자태를 감상하고 싶다. 잊어버리기 전에 내 버킷 리스트에 새로 추가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