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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 Park 박민경 Aug 16. 2017

아이와 단 둘이 뉴욕 여행

주머니는 가볍게, 마음만은 편하게 뉴욕 구석구석 

뉴욕은 몇 해 전 회사 출장으로 일주일 가량 다녀온 적이 있다. 당시에는 센트럴 파크 옆에 위치한 힐튼 호텔에 묵으며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주머니는 가볍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딸과 오붓하게 둘만의 여행을 계획했다. 


항공권은 최가가 비교 검색으로 가장 저렴한 델타항공, 그 다음은 숙소! 

맨해튼 내에 머물러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을 것 같았다. 맨해튼은 숙박비가 비쌀 수밖에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BnB(가정집에서 침실과 아침식사를 제공하는 형태, Bed&Breakfast)를 알아보았다. 하지만, 몇 곳을 골라 아이와 동행이 가능할지 문의하니 거절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또, 집 렌트비가 비싸기로 손에 꼽히는 뉴욕에서 BnB를 할 정도의 게스트룸을 가진 곳은 맨해튼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곳이었다. 


너무 저렴한 호텔은 안전과 청결이 의심스러웠고, 내부에서 음식을 먹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번뜩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것이 생각났다. 한인게스트하우스 중에는 기본적으로 밥과 라면을 제공해주는 곳이 많고, 와이파이, 전기, 샤워, 세탁을 모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가격 대비 아주 훌륭하다. 


최종 결정은 맨해튼에서도 가장 중심가, 무려 타임스퀘어 한복판에 새로 오픈한 한인 게스트하우스였다. 딸과 나, 여자 둘만 가는 여행이라 출입 시 보안이 철저한 건물에 있다는 점도 안심이 되었다. 타임스퀘어는 교통 중심지라 업타운을 가든, 다운타운을 가든 이동이 편하고, 브로드웨이의 공연이 늦은 시간 끝나기 때문에 지난번 뉴욕에 갔을 때에도 밤늦도록 길거리를 걸어 다녀도 위험하지 않았던 기억이 있었다. 중저가의 호텔비 정도로  최적의 위치와 주방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 최대 장점이다. 


다만 2인실이 예약이 되어 있어서 3인실에 묵으며 다른 여행자와 룸 셰어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친구를 사귀려고 여러 명이 함께 묵는 도미토리에 묵기도 하는데 한 명과 룸 셰어를 하는 것쯤이야. 마음을 바꿔 먹고 결제를 했다. 항공과 숙소만 예약되면 여행 준비의 절반 이상은 끝. 


LAX에서 JFK 국제공항으로. 두 공항은 미국에서도 가장 붐비고 규모가 큰 국제공항이라 꽉 찬 사람들로 정신이 없었다. 몇 해 전 보스턴 출장을 갔을 때, 환승지였던 뉴욕 JFK공항에서 짐가방이 분실되어 여행도 아닌 출장에서 화장품과 옷가지 하나 없이 며칠이 지나고서야 좀비 같은 행색으로 겨우 찾은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JFK공항은 가기만 해도 일단 긴장이 되는 곳이다. 


예약해 둔 한인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로 들어갔다(한인 택시나 우버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가장 저렴하다). 도착한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다른 예약자가 없어 딸과 둘이서만 방을 사용했고 나머지 절반은 다른 여행객과 함께 사용했다. 룸을 함께 쓰는 여행자들과 거실에 앉아 밤늦도록 수다를 이어가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혼자 온 20대의 대학 졸업반 아가씨는 방학 때면 필리핀에 있는 한국 어린이 대상 영어학원에서 단기간 일을 한다고 했다. 한국 초등학생, 중학생 아이들이 방학을 이용해 단기 영어연수를 가서 머무는 기숙사 형태의 학원이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도록 쉼 없이 영어수업이 이어지고, 매일의 단어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 외울 때까지 취침시간도 늦어진다고 했다. 밤 12시까지 나머지 공부를 하면서 아이들은 울기도 하고 엄마에게 전화해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며 애원하기도 하지만 몇 주가 지나면 그마저도 적응이 되어간다고 했다. 본인도 아이들의 학업 스케줄 관리를 해주는 입장이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심정이었다고...... 정작 본인의 고민은 눈앞에 닥친 취업이었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이름으로는 서류전형도 통과하기가 어렵다며 두려워했다. 


그 친구가 떠나고 새롭게 방을 나눠 쓰게 된 서른 살의 아가씨는 명문대 졸업 후 번듯한 대기업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사표를 던지고 혼자 며칠간의 여행을 떠나왔다고 했다. 생각했던 업무의 성격과 너무 달랐고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일단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찾아볼 것이라고 했다. 


아침부터 밤 12시까지 영어단어를 외우던 아이들의 부모들이 가장 바라는 것이 자녀의 명문대 입학이고, 아이들을 영어학원에서 관리해주던 졸업반 학생이 가장 바라는 것이 대기업 입사일 텐데 정작 명문대 졸업 후 대기업에 안정적으로 다니던 직장인은 뒤늦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란 것을 깨닫고 서른 살이 다 되어서 사표를 던지고 본인의 미래에 대해 처음부터 다시 고민한다. 


아이들도, 아이들의 학원비를 대느라 허리가 휘는 부모들도, 대학 졸업반 학생들도, 직장 근로자들도, 모두 자신의 자리와 위치와 나이에 맞는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세 명이 룸을 나눠 쓰는 한국인 게스트하우스. 맨해튼의 중심가 타임스퀘어에 위치하여 최적의 장소이고, 새로 생긴 게스트하우스라 청결하고 가격도 합리적이었다. 머무르는 기간의 절반은 다른 예약이 없어 딸과 둘이서만 방을 사용했고 절반은 다른 여행객과 함께 사용했다. 


▶ 한인 게스트 하우스의 장점은 주방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쌀이나 시리얼 등의 기본적인 음식을 제공해 주는 곳도 많다. 냉장고는 공동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개인 물품과 음식에는 이름을 써 놓는다

▶ 온 거리를 가득 채우는 화려한 광고 전광판으로 눈이 부신 타임스퀘어.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던 숙소



짐은 역시 최소로 챙겼다. 한국에서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가져온 두꺼운 점퍼 하나와 껴입을 얇은 옷 몇 벌, 잠옷, 게스트하우스에서 몇 끼는 먹을 셈으로 챙긴 간단한 밑반찬과 즉석밥, 아이 책 두 권이 전부였다. 


단, 뉴욕은 워낙 많이 걸어야 하는 곳이라 아이를 위해 초경량에 손바닥 사이즈로 접히는 의자를 하나 구매해서 가방에 매달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앉게 했다. 그 의자가 아니었다면 여행의 이동경로가 확연히 줄었을 것 같다. 줄을 서 있을 때에도, 박물관에서 몇 시간씩 해설을 들을 때에도 짬나는 대로 계속 아이를 앉게 한 덕분에 체력을 비축할 수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왔거나 연세 많은 분들은 의자를 어디서 구매했냐며 같은 것을 구매하고 싶어할 정도였다. 



미국 자연사 박물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현대미술관(MOMA), 911 메모리얼 뮤지엄, 록펠러센터 전망대, NBC 스튜디오, 성 패트릭 대성당, 브루클린 브리지 야경투어 등의 일정은 고민 없이 결정했지만 자유의 여신상에서 망설여졌다. 검색을 해 보니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 섬까지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탑승을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에 멀찍이서 지나가며 자유의 여신상을 보고 비용도 아낄 수 있는 무료 통근용 페리를 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추천하고 있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결국 섬에 가보기로 결정했는데 막상 가서 보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었다. 사실 자유의 여신상을 멀리에서 보나 가까이에서 보나 거리에 따라 크게 감흥이 다르지 않았지만,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자세한 설명을 들으니 설명을 들은 전과 후의 동상이 달리 보였다. 무엇보다 리버티섬에서 다시 배를 타고 약 1km쯤 가야 하는 엘리스 섬(Ellis Island)이 가장 인상 깊었다. 사실 엘리스 섬에 대해서는 나는 듣거나 배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곧바로 맨해튼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으나 딸아이가 마침 학교에서 미국의 역사와 뉴욕에 대해서 배우던 중 엘리스 섬을 비중 있게 배웠다며 반드시 가보고 싶다고 했다.


엘리스 섬은 아주 작은 섬으로 1892년-1954년 사이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이민자들이 입국 심사를 받던 곳이다. 그들의 운명이 이 곳에서 갈렸다. 돌아가야 하거나, 남거나. 그때 입국심사를 기다리며 창문 밖으로 보이는 자유의 여신상이 그들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입국 불가 판정을 받았을 때 과연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또는 입국 허가서를 받아 들고 어떤 각오로 맨해튼에 발을 내디뎠을까. 이민자들이 건국한 미국이라는 나라의 관문이었던 엘리스 섬의 이민박물관을 둘러보며 그 시간을 상상해보았다. 

▶ 자유의 여신상을 멀리에서 보나 가까이에서 보나 크게 감흥이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자유의 여신상에 대하여 자세하게 듣고 나니 듣기 전과 후가 달리 보였다.



▶ 엘리스섬 이민국 레지스트리 룸. 이 공간에 거의 매일,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많게는 약 5천 명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60여 년간 약 1200만 명의 사람들이 거쳐가면서 미국 인구의 약 절반이 이곳 이민 관리소를 통해 입국한 이민자들의 후손이라고 추정된다. 그들에게 이 곳은 새로운 삶을 시작한 뿌리와도 같은 장소일 것이다


▶ 베이글의 쫄깃함과 짭조름한 연어-락스 Lox-와 고소한 크림치즈가 환상 궁합. 유대인이 많은 뉴욕이라 유대인 음식인 베이글을 파는 식당이나 마켓이 많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가는 날은 하루 종일 걸을 것을 단단히 각오하고 접이식 의자를 잘 챙겨 들고 길을 나섰다. 내부에 물론 입장객이 많기는 했지만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로 붐비지는 않았다.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 국립공원 레인저들의 수많은 해설을 들어보면서 한국에서와 한 가지 다른 점을 알아챘다. 휴대용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이크를 사용하면 끝에 있는 사람까지 모두 잘 들릴 텐데 장비가 없어서 그런가, 해설자가 챙겨 오는 걸 깜빡했나 싶었다. 하지만, 장비 때문이 아니라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잘 들리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설에 참가하지 않는 주위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가도, 경복궁에 가도, 심지어 여행사 가이드도 모두 허리에 작은 마이크를 차고 이용한다. 인원이 많든 적든 공간이 야외이든 실내이든 내가 본 경우는 대부분 그랬다. 


얼마 전 한국에 놀러 온 일본 친구 유지와 요시와 함께 경복궁에 가서 해설을 들을 때에도 인접한 곳에서 동시에 일본어, 한국어, 영어 등 여러 언어의 투어가 진행되다 보니 경쟁적으로 마이크 볼륨도 높아져 결국 모든 사람이 서로 방해를 받고, 방해를 하게 되는 경험을 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이나 자연사박물관 투어의 참여자 수도 결코 적지 않았다. 그랜드캐년에서 좁은 공간의 실내에 앉아 레인저의 설명을 들은 것도 아니었다. 아이와도 돌아오는 길에 이것에 대해 토의해 보았다. 국내외로부터의 관광객이 점차 많아지는 한국에서도 한번 생각해 볼 이슈인 것 같다. 

▶메트로폴리탄 전시 작품 가이드 투어 일정. 우리는 11시 45분과 2시 투어에 참여했다. 카페테리아에서 뉴욕에 거주하는 탤런트 서민정 씨를 마주치기도 했다 


▶근사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가슴에 핑크색 손수건까지 꽂은 노신사분이 해설가이다
▶뉴욕 현대미술관 MOMA. 금요일 오후에는 운영시간도 연장되고 입장도 무료이다




▶ 여러 곳의 뮤지엄을 다니면서 같은 화가의 다른 작품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이다. 각각 LA의 게티 뮤지엄,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파사데나의 노튼 사이먼 뮤지엄에서 찍은 사진이다. 아이도 이제는 피카소, 르누아르, 리베라 칼로, 램브란트, 고흐, 고갱, 마티즈 등의 작품을 척 보기만 해도 누구 작품인지 알아본다>

▶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촬영했던 미국 자연사박물관





▶맨해튼 34번가에 위치한 메이시스 백화점 헤럴드 스퀘어점. 전 세계 700개가 넘는 메이시스 백화점의 점포 가운데 이곳이 플래그샵이자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쇼핑몰이다. 1978년에 국립 역사기념물(National Historic Landmark)로 지정되었다.


▶1902년에 생긴 메이시스 헤럴드스퀘어점은 당시 최초의 현대식 에스컬레이터를 설치했다. 지금도 전체 11층 중 일부 구간에서 나무 에스컬레이터를 운행 중이다


 ▶ 록펠러센터의 ‘탑 오브 더 락’ 전망대. 가장 높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전망대에서 보는 경치도좋지만, 맞은편에서 엠파이어스테이트를 바라보는 전망이 더 아름답다. 무엇보다 야외전망대만 있는 엠파이어스테이트는 춥고 바람이 심해 오래 머물기가 어렵다. 탑 오브 더 락은 전망대가 실내와 실외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머물며 뉴욕의 석양과 야경을 모두 지켜볼 수 있었다.



▶ 몇 해 전 뉴욕에 갔을 때 Le Parket Meridien호텔의 레스토랑 NORMA'S 브런치에 반해 연속 세 번 매일 아침을 먹었던 기억에 꼭 다시 한번 가보고 싶었다. 메뉴이름부터가 독특하다. "MOM CAN'T MAKE IT."(엄마는 이거 못 만든다!) 이름처럼 집에서는 절대 만들지 못할 비주얼과 맛이다. 



▶뉴욕을 떠나는 3월 17일은 맨해튼에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St.Patrick’s Day)라 페스티벌이 성대하게 열리는 날이었다.


친구인 Hide가 여행 일정을 묻기에 3월 17일에 뉴욕을 떠난다고 하자, 

“Oh~No~! 미리 알았더라면 하루 더 묵으라고 말해줄 걸!” 

"왜요???"

"그날은 맨해튼에서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 퍼레이드가 성대하게 열리는 날인데 아주 재미있는 구경을 놓치게 되었구나."


St.Patrick's Day는 아일랜드 성자를 기리는 날이기에 거리는 온통 상징색인 초록색의 물결이다. Hide는 뉴욕 여행 전날 클로이에게 아이리쉬 IRISH라고 쓰인 초록색 배지를 선물로 주셨고 우리도 마지막 날 배지를 달고 잠깐이나마 흥분되는 분위기에 동참했다.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는 길 멀리서 시끌벅적한 퍼레이드가 한창인 것이 보였다. 


미국에서 달력이 두 바퀴 돌았다. 공휴일이나 축제일마다 학교에서 그 날의 의미에 대해 배우고, 도서관에서 기념일과 관련된 책을 대여해 읽다 보니 이제는 세인트 패트릭스 데이가 무엇인지, 마틴 루터 킹 데이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독립기념일에 무엇을 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 나라의 기념일을 알면 역사가 보이고, 한 발짝 더 다가가고 좀 더 이해하게 된다.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中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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