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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 Park 박민경 Aug 16. 2017

그랜드 캐니언 국립공원 캠핑

죽기 전에, 죽더라도, 죽어서도 꼭 봐야 할 곳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할 세계 명소로 매번 1위에 오르는 그랜드 캐니언.

 

그 유명세만큼이나 정말 좋을까? 실제 어떤 모습일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캠핑용품을 구입하고 겁도 없이 우리의 첫 번째 캠핑지를 그랜드캐니언으로 정했다.


우리가 사는 곳(캘리포니아)에서 애리조나주의 그랜드캐니언까지는 약 500마일(800킬로미터). 서울-부산 왕복 거리를 과연 하루 만에 무리 없이 잘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영화에서 보던 사막의 끝없이 펼쳐진 직선도로를 쉼 없이 달리기를 몇 시간. 앞뒤로 차가 거의 없어서 브레이크 한 번 밟을 일이 없고 속도 변경할 일도 없다. 몇 시간 동안 마냥 직진. 한국에서는 무용지물인 차의 크루즈 기능(핸들과 엑셀레이터 조작 없이 차량이 일정 속도로 가는 기능)이 이렇게 유용할 수가. 아침 8시에 출발하여 주유를 위해 멈춘 것을 제외하고는 쉬지 않고 운전하며 부지런히 갔는데도 도착하니 오후 3시였다.


방문자 센터 방문도 뒤로 하고 궁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그랜드캐니언 너 대체 어떤 녀석인지 일단 얼굴 한번 보자”

하는 심정으로 전망 포인트로 향했다.

그저 편평한 직진 도로를 따라왔을 뿐인데 대체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깎아지른 협곡이 있다는 것인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마음이 급해 앞서 가던 남편이 허어억 탄성을 내뱉는 소리가 들렀고, 얼른 뒤돌아 다시 오더니 양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엉거주춤 눈을 가린 채로 따라가던 나를 도착지에 세워두고서야 남편은 살그머니 손을 뗐고 강렬한 태양빛에 눈을 꿈뻑이다 흐릿한 초점을 맞추었다. 도무지 어떤 특별한 광경도 펼쳐질 것 같지 않던 고요한 그곳에서 태풍의 한가운데에 서있는 듯한 전율이 느껴졌다. 그랜드캐니언의 전체 조망이 한눈에 들어왔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눈 앞의 광경에 숨이 훅 막혔다.


굽이쳐 흐르는 콜로라도 강이 만들어 낸 대협곡이었다. 길이만도 447km, 깊이가 1.6km에 달하고, 형성된 지 20억 년이 되었다는 모든 숫자의 기록은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눈 앞에 펼쳐진 장관을 말없이 한참 동안 감상했다.

<워낙 광활해서인지 관광객이 많은 몇몇 장소를 제외하고는 절벽에 펜스 하나 쳐 있지않다. 탁 트인 전망을 감상할 수 있기는 하지만 순간 발을 헛디디면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첫날은 무리하지 않고 쉬엄쉬엄 가기로 했다. 볼 것 많은 여행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나무 그늘 아래에서 쉰다는 것은 좀이 쑤시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때 캠핑 의자를 한껏 젖히고 한참 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순간이 여전히 또렷하다. 나무가 울창한 캠핑장 사이로 나뭇가지가 두껍지 않은 그늘을 만들어주어 곳곳에 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한여름인 7월인데도 해발 2100m 되는 높은 지대라 탄산수 같은 청량한 시원함이 느껴졌다. 거대한 캠핑장임에도 한없이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오감이 깨어나 작은 바스락 거림 하나에도 귀가 기울어졌다.  


첫날은 가장 유명한 장소에서 일몰을 보려니 인파가 많아 사람들 뒤통수만 보았다. 다음 날은 차를 몰아 미리 한적한 곳에 자리를 잡고 바위틈에 앉아 일몰을 보았다. 시시각각, 심지어 분 단위로 풍광이 달라진다.

거대한 협곡의 사이사이, 개미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할 작은 틈에도 빛은 깊게 스며든다. 수백 만년 간 빛을 머금고 토해내는 과정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우리 옆에 나란히 호주인 가족이 앉았다. 아빠와 중학생 딸과 고등학생 아들이었다. 가족은 지난 1년간 온 가족이 함께 미국 여행을 위해 준비해 왔다고 한다. 여행 루트와 일정을 짜고, 숙소와 렌터카를 예약하며, 자료를 찾아보고 책을 보며. 그 1년 동안 가족이 얼마나 이 순간을 꿈꾸며 많은 대화와 상의를 하고 행복해했을까.


그랜드캐니언은 서부 패키지 상품으로 많이 나오는 곳이라 유독 한국인 단체 관광객이 많이 보인다. 사진을 찍는 잠깐 조차도 가이드의 “빨리빨리”라는 말이 여러 번 들려온다.

“여기보다 저 쪽이 사진이 더 잘 나오니 여기서 지체하지 말고 빨리빨리 움직이세요”

하더니 그랜드캐니언을 처음 마주하는 순간의 감동을 느낄 새도 없이 이동한다. 제일 유명하고 사진 찍기 좋은 뷰포인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한국인 관광객을 만나보기 어렵다.


그 날은 보름달이 떴다.

텐트에서 잠들기 직전 한밤중의 협곡을 보기 위해 낮에 갔던 뷰포인트에 다시 가보았다. 가로등 하나 없는 그곳에 오직 달빛만으로 몸의 그림자가 선명하게 생겼다. 낮에 보았던 그곳이 맞나 싶을 정도로 해가 진 후의 그랜드캐니언은 적막하기만 하다. 돌멩이를 하나 던지면 협곡의 바닥까지 수 킬로를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다.


협곡을 마주하고 서자 마치 거대한 우주 한가운데의 진공 상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움직임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면 우우웅~하며 우주의 기운이 마치 협곡 저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종교가 없지만 신이 있다면 저절로 무릎 꿇고 기도드리게 될 것만 같았다. 1870년까지 거의 미지의 세계였던 이 곳은 1919년에야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지만 사실 수천 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었다고 한다. 원주민들은 수천 년 전, 이런 기분으로 무릎 꿇고 그들의 신께 기도드리지 않았을까.     




'넓은 것은 오지랖, 깊은 것은 정, 많은 것은 흥 뿐이고

좁은 것은 세상, 얇은 것은 지갑, 적은 것은 겁 뿐인 가족'


<'겁 없이 살아 본 미국' 책은>

평범한 40대 회사원 남자가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 입학부터 졸업하기까지,  

10년 차 워킹맘직장을 그만두고 떠나 무료영어강좌에서 수십 개 나라의 사람들과 부대끼며 생활하고,

알파벳도 구분하지 못하던 큰 딸이 2년 만에 해리포터 시리즈를 완독하고,

Yes/No도 모르던 작은 딸의 미국 유치원 적응기까지, 다양한 미국의 교육 현장 이야기와

전화도 터지지 않는 서부 국립공원 열 곳에서 한 달 이상의 텐트 캠핑,

현지인들과의 소중한 인연,

경험이 없는 덕분에 좌충우돌 해 볼 수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담은 책.


출간 두 달 만에 2쇄 인쇄. 브런치 글 100만 뷰.

페이스북 팔로워 1400명(www.facebook.com/MKLivingUSA)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그리워지는 장소와 사람과 음식이 생겼고

나이와 국적에 대해 견고하던 마음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친구 삼을 수 있는 사람의 스펙트럼이 넓어졌고,

서로 다른 문화와 라이프스타일을 경험하며 다름을 인정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 뚝 떨어져 어떠한 상황이 닥쳐도 당황해서 주저 앉아 울고만 있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그것이 결국은 '성숙해진다'는 것이 아닐까.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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