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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ndestine Jul 10. 2020

이데올로기 앞에서.

선우휘 著 『쓸쓸한 사람』을 읽고

 우리 문학은 가슴 깊이 와닿는 맛이 있다. 문화와 역사를 공유하지 못 하는 데에서 오는 필연적인 거리감 때문일까? 외국어 글보다 우리 글이 훨씬 더 정겹고 살갑다. 더군다나 민족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라면, 글 사이사이에서 우리 민중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번역으로 정제되지 않은, 살아있는 문장들이 내뿜는 억척스럽고도 비통한 그 뜨거운 호흡들.


 한반도가 겪은 질곡의 시간 속 개인들을 그려낸 선우휘의 작품들 역시 내게 그런 인상을 주었다. 시대 속에서 충분히 존재했을만한, 혹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인물들이 작품 속에 등장한다. 선우휘 작품은 시중에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나는 문학사상사의 단편집을 골랐다. 제목의 『쓸쓸한 사람』을 포함해 여덟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 쓸쓸한 사람 (일제강점기)

                  - 불꽃 (일제강점기-해방)

                  - 외면 (일제강점기)

                  - 단독강화 (한국전쟁)

                  - 도박 (일제강점기-한국전쟁)

                  - 묵시 (일제강점기)

                  - 상원사 (한국전쟁)

                  - 선영 (일제강점기)


 괄호 안은 작품들의 시대상으로, 여덟 개의 이야기 모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즈음에 초점을 맞춘다. 제국주의 일본의 압제에서, 광복 이후에는 파도처럼 밀려드는 공산주의자들의 물결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맞서며 또 순응하는가를 작품들은 그려낸다. 책의 머리에 실린 『쓸쓸한 사람』은 일제의 탄압 속 기독교인들을 조명하며 진정한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문을 던진다. 선우휘 명성의 도약대가 되어 준 『불꽃』에서는 3.1 운동으로 일본군에 의해 아버지를 여읜 주인공이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를 지나오며 느끼는 실존적 고민을 다룬다. 『외면』은 일제강점기 당시 징용 조선인으로서 겪는 불합리를, 『단독강화』는 한국전쟁 당시 우연히 조우한 남북 군인 두 명의 안타까운 이야기를 다룬다. 『도박』 역시 그 주된 배경은 남북 분단으로서 그에 따른 등장인물의 고민을 드러내고, 『상원사』 역시 한국전쟁 당시 실화에 바탕을 둔 이야기이다. 마지막으로 『묵시』 와 『선영』 도 마찬가지로 시대 흐름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을 소개한다.


 여기서 제국주의나 공산주의와 같은 이데올로기는 개인에게 시대적 요구로서도 작동하는 동시에, 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낳는 배경으로서도 작동한다. 그리고 그 배경 속에서 유교나 기독교와 같이 또 다른 사상에 천착하는 시대적 개인들도 나타난다. 즉, 모든 등장인물은 그 시대에 흐르는 다양한 사상과 관념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선우휘의 글들은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관계, 이데올로기 속 개인의 모습을 치밀히 묘사한다. 글쓴이의 시선은 대부분 참여자이기보다 관찰자에 가깝고, 참여자로서도 관찰자의 시각을 어느 정도 내포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감정을 면밀히 표현하지만 글에서 이성적 절제가 묻어난다. 감정과 상황 그 자체를 그려내고 싶었다기보다는 '그 시대 속' 개인이 처한 상황을 소개하고 싶었다는 느낌이다. 작가이자 신문기자였던 선우휘는 문학작품 속에서도 시대상을 고발하고자 하는 언론인의 사명을 드러낸 것일까?


 여덟 작품들 모두 시대 속의 안타까운 개인을 조명하고 있는 점에서는 같지만, 특히 『불꽃』은 실존적 고민을 거쳐 주체적 존재로 거듭나는 개인을 그려낸다. 주인공 현은 어지러운 세상을 견디지 못해 고향에서 소일하며 지내기를 원했으나, 일본군으로 전쟁에 참전하게 된다. 어렵사리 탈영한 끝에 고향으로 돌아와 여학교에서 교편을 잡지만, 당시 득세하던 공산주의자들의 인민재판을 보며 이데올로기가 잠식한 세상에 환멸을 느낀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인민의 해방이란 방정식에 절대적인 의미를 붙이고 이를 갈고 있는 이들은 말하자면 청탁자가 없는 청부업자였다.'라는 표현은 현이 세상에 대해 서서히 느낄 역겨움을 암시하고 있다. 공산주의에 빠져 버린 친구 연호와의 언쟁 뒤 현에 머릿속에 흐르는 이 독백 역시 마찬가지다.


 망연히 꽃밭을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느끼지 못한 꽃들의 개성이 드러나 있었다―인간은 꽃에다 여러 가지 뜻을 붙인다. 정열, 불안, 비애, 고결, 죄악, 분노, 모호, 온순, 광약狂躍. 그러나 꽃은 그저 아름다울 뿐인데. 때가 오면 피고 때가 가면 말없이 지고. 그런데 인간은 꽃에다 제멋대로의 의미를 붙인다. 뿐더러 인간 자신을 색깔로 갈라놓고 편과 편을 만들어 서로의 가슴에 칼날을 겨눈다―

 

 제국주의와 공산주의를 모두 겪으며 느낀 현의 환멸은 인민재판에서의 언행으로 인민군에 쫓기는 극한의 상황에서 고조된다. 자신을 회유하러 온 할아버지가 연호가 쏜 총탄에 사살되자, 스스로의 인생에 대한 회고와 함께 존재 의미를 고민하며 걷잡을 수 없는 사유의 폭풍을 경험한다. 그리고 이 환멸의 정점은, 현이 주체적 인간으로서 재탄생하는 시발점이 된다.


껍질 속에 몸을 오므리고 두더지처럼 태양의 빛을 꺼린 삶. 산 것이 아니라 다만 있었다. 마치 돌멩이처럼 결국 너는 살아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살아본 일이 없다면 죽을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살아본 일이 없이 죽는다는 것 아니 죽을 수도 없다는 안타까움이 현의 마음에 말할 수 없는 공포의 감정을 휘몰아왔다. 현은 잃어져가는 생명의 힘을 돋구어 이 공포의 감정에 반발했다. / '살아야겠다. 그리고 살았다는 증거를 보이고 다시 죽어야 한다.'


 세상에 대한 회피, 어쩔 수 없이 마주했던 이데올로기와 자신. 그리고 이 과정을 거쳐 수동적이고 소극적이었던 현은 비로소 자존적 개인으로 거듭난다. 선우휘는 여기서 스스로의 허물에서 벗어나는 현을 묘사하며 그의 가슴 속에서 나오는 '갑자기 우직하고 깨뜨려지는 자기 껍질의 소리'를 언급하는데, 이 대목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온, 알을 깨기 위해 투쟁하는 새를 떠올리게 한다. 데미안의 싱클레어처럼, 현 역시 이전의 스스로를 벗어던져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현의 마음속에 이는 재탄생의 불꽃이 그렇게 피어나며, 글은 마무리된다.



  이처럼 『불꽃』은 실존소설이라 불릴 수 있을 만큼 개인의 변화와 극복, 재탄생을 다루고 있다. 선우휘 작품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다는 글이어서 더욱 눈여겨보았고, 두드러진 특징이 바로 주인공의 실존적 고민과 주체적 인간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글만이 의미 있는가? 이 단편집에 실린 다른 글들은 새로이 거듭나는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으나, 시대의 장면들을 꽤나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슬픈 민중을 이 글들에서 재발견하게 된다. 선우휘의 작품들이 반공 또는 반일 소설로서 지난날의 우리 교육에 쓰였다는 점은 사실이나, 그 시대가 그러했듯 표현 하나하나를 다소 침소봉대하여 가르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몇몇 부분들을 떼어 놓고 본다면 충분히 그렇게 쓰일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작품들은 특정한 이데올로기에 대한 찬양 혹은 비판보다는 이데올로기라는 존재 자체 앞에 놓인 한반도의 개인에 주안점을 두었다고 보는 편이 맞을 듯싶다. 혼란의 시대 속 개인들을, 우리는 이 책에서 읽을 수 있다. 역사라는 거대 담론 속에서 자칫 뭉뚱그려질 수 있는, 충분히 그랬을 법한 우리 민중의 삶과 생각을 곰곰이 살펴볼 수 있는 선우휘의 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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