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없는 삶
올해 초, 나는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을 비활성화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적지 않은 시간을 두 SNS에 빼앗기곤 했다. 항상 이들에 얽매여 있는 느낌이 들면서도, 오랜 시간 접속하지 않을 때마다 세상과 단절된 것만 같아 두려웠다. '1일 n번 접속'이라는 느슨한 자기 통제선은 스스로 침범하기 일쑤. 자기 전에 의무적으로 확인하는 뉴스피드,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확인하는 간밤의 업데이트. 수면도 끊지 못한 접속의 여운은 피곤함으로 바뀌어 나를 괴롭히곤 했다. 결국 지칠 대로 지쳐버린 나는 결국 한 번에 싹둑! 두 세계 속의 나와 현실의 나를 단절시켰다. 두 플랫폼 모두 비활성화 상태로 전환한 뒤,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을 삭제했다.
그 뒤로 어느새 9개월가량이 지났다. 이제는 두 SNS가 없는 삶이 일상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훨씬 더 여유롭고 편안한 삶을 살고 있다. 중간중간 유혹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페북과 인스타가 있던 삶에서 없는 삶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에는 성공한 것 같다. 이제는 최소 하루에 한 번 정도는 접속해야 할 것 같은 강박도, 예쁜 풍경이나 맛있는 음식을 보자마자 떠올리던 '인스타에 올려야지'와 같은 조건 반사도 없어졌다. 자유라고 생각했던 것이 도리어 속박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주류 SNS의 흐름에서 벗어나 있는 삶이 무조건 편하다고만은 말할 수 없다. 인스타와 페북에 접속하지 않으면서 놓치는 면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에 접속하지 않는 삶이 주는 안온함은 불편함을 감수하고도 남는다.
가장 먼저, 시간을 훨씬 더 생산적으로 쓸 수 있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화면 위에서 끊임없이 엄지손가락을 움직이며 하루에 몇 시간씩을 '정보 확인'에 사용했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짧은 시간에도 으레 두 SNS에 접속하곤 했다. 지난 몇 년 간 그렇게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어마어마할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안타까운 점은 그렇게 많은 정보를 보고 들었건만 정작 머릿속에 남은 것은 손에 꼽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적지 않은 시간을 페북에 인스타에 쏟았는데, 무얼 얻었는지 명세하게 말하기 힘들다.
하지만 계정들을 비활성화하자 두 SNS가 차지하는 분량만큼의 가용시간이 새로이 생겨났다. 이제 나는 뉴스피드를 의미 없이 훑는 대신 영어 공부에 필요한 팟캐스트를 듣고, 때로는 독서를 하며, 이따금은 그저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보낸다. 집에 도착해서도 침대에 누워 10분 20분씩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시간을, 조금 전에 엘리베이터에서 들은 영문 표현을 되짚거나 지하철에서 정리해 둔 생각을 메모하는 데에 쓴다. 영어 공부나 독서나 생각 정리 모두 SNS를 하건 안 하건 어차피 해야 할 일들이기에, 늘어난 가용시간은 일의 진전에 확연히 도움을 준다.
다음으로는 심적으로 훨씬 여유로워진다. 앞서 이야기한 가용시간의 생산적 활용에서부터 오는 여유도 물론이거니와, 불필요하게 내 머리로 침투하는 잡다한 정보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대표적으로 SNS 상에서 불필요하게 마주하는 수많은 광고로부터 벗어난다. 내가 구글에 검색해 본 내용이나,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클릭한 것들을 나름의 알고리즘으로 분석해 나의 입맛에 맞추어 광고를 '엄선'한다지만, 이 광고들도 결국 SNS를 볼 때의 얕은 집중력을 더욱 얕게 만들어주는 방해 요소에 불과하다. 물론 알고리즘 자체는 획기적인 기능이지만, 광고를 보고 싶지 않은 시간에도 광고에 노출되고 이에 따라 불필요한 정보를 어쩔 수 없이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이와 같은 원치 않는 정보의 홍수는 요즈음 TMI라는 유행어로 표현된다. Too Much Information, 우리말로 옮기면 너무 많은 정보. 많은 사람들이 수용 한계 이상의 정보 속에서 고통받고 있기에 유행어로 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비단 나만의 문제의식은 아니라는 반증인 듯싶다.
두 SNS는 내 하루에서 꽤나 많은 비율을 차지했었고, 별다른 활동 없이 그저 '눈팅'만으로 새벽까지 잠을 미룬 적도 많다. 밤잠을 못 이룰 만큼의 영향력을 주던 삶의 일부를 어느 날 뚝 떼어 냈으니, 당연히 그 공백으로부터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단점인 듯 보일 뿐이었으며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먼저 정말 필요한 정보들까지 접하기 힘들게 된 '줄 알았다'. 팔로우 해 둔 수많은 페이지들은 내가 페이스북에 더 이상 접속하지 않자 흥미로운 정보들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 관심 있는 분야의 새로운 소식들, 커리어 관련 게시물들.. 하루가 멀다 하고 내게 지속적으로 배달되었던 유용한 정보들로부터 그렇게 멀어지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페이스북을 끊고 나니 내게 가장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즉, 매일 같이 올라오는 '중요한' 정보들은 내게 해당 분야에 대해 신경을 쓰고 있으며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는 희미한 느낌만을 제공할 뿐이었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감을 잡고 있으면(끊임없이 스크롤을 내리다 보면) 언젠가 내게 아주 적합한 정보를 발견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에서 벗어나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직접 알아보고 검색해 보는 능동적인 자세로 바뀔 수 있었다. 정보의 공백을 페이스북이 채워주기만을 기다리던 수동적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또한 직접 발품을 파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알게 된 정보들도 꽤나 유용했다. 만약 지금도 요행을 바라며 엄지손가락만 까딱이고 있었다면, 내 정보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SNS의 순기능 중 하나는 지인의 소식을 큰 수고 없이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군가가 올린 소식에 좋아요나 하트를 누르고 댓글을 달면 그 사람의 오늘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는 표시가 된다. 하지만 친구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던 두 개의 큰 연결망에서 벗어나자 어떻게 지내는지, 하던 일은 잘 되는지 등을 손쉽게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과 멀어지는 줄 알았지만...
우선 평소에도 지속적으로 소식을 공유하던 이들과는 비활성화 전후와 친밀도에 큰 차이가 없었다. 그들의 인스타를 확인할 수 없더라도 언제나 그랬듯 만나서 서로의 요즈음을 이야기한다. 시간이 맞지 않아 얼굴을 볼 수 없어도 늘 하던 통화와 카톡으로 안부를 확인한다. 그렇다면 긴 시간 동안 소식을 주고받지 못했던 사람들과는? 내가 먼저 안부를 묻고, 밥이라도 한 끼 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기 시작했다. 직접 얼굴을 보며 근황을 나누고, 다양한 이야기 속에서 상대방의 감정을 느끼며 그 안에서 더욱 깊은 대화 주제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가지게 된 더 큰 유대감은 친밀도를 높여주고, 상대방과는 이전보다 더 자주 소식을 나누는 사이가 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선순환이란 말인가!
비활성화 이후에도 유혹은 꽤나 자주 찾아온다. 이번 한 번만, 딱 몇 분만 그 세계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을 때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몇 번만 참다 보면 어느새 '접속'하지 않는 삶에 익숙해진다. 그리고 그 단절은, 내게 생각보다 큰 이로움을 가져왔다.
나는 두 계정에 올려 둔 추억들을 차차 백업한 뒤, 두 SNS에서 모두 탈퇴할 생각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서도 일단 한 번 해 보시면 좋겠다. 전과는 전혀 다른 삶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배경 사진 출처 - gadgetdos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