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미국으로 던져진 가족의 미국 체류기
2016년 3월. 우리 가족은 미국 휴스턴으로 오게 되었다. 남편의 느닷없는 발령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우리의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다.
미국 나이로 8살, 6살이었던 아이들은 2학년과 유치원에 각각 입학해야 했다. 일주일 간의 시차 적응을 후에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입학을 위해 간단한 영어 레벨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살 때 영어는 그저 먼 나라 말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레벨'이라고 부르기조차 민망한 레벨을 받았다.
아이들이 걱정이었다. 이곳에 오기 전 몇 개월이나마 영어 학원에 보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만큼 남편의 미국 지사 발령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겨우 한 달여 영어 학원에 보낼 수 있을 정도였다. 아이들은 알파벳이나 깨쳤을까. 아이들의 학교 생활이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우연히 보게 된 블로그 내용은 오히려 큰 근심을 주었다. 상황이 우리와 같았던 한 엄마가 쓴 글이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초등학교 2학년 때 갑작스레 미국에 오게 된 아이. 영어를 못하는 아이가 학교에서 소변 실수를 했단다.
미국 초등학교는 휴식 시간이 없다. 우리처럼 5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 시간이 없다. 수업 도중 화장실에 가고 싶은 아이는 선생님에게 허락을 받고 화장실에 다녀와야 한다. 영어를 못했던 그 집 아이는 "화장실에 다녀와도 될까요?"라는 말을 못해서 결국 실수를 한 것이다.
미국 학교에 가기 전날 두 아이에게 한 문장을 무한반복시켰다.
"I want to go to a restroom."
아이들은 외우고 또 외웠다. 내일이면 학교에 가게 될 아이들이 혹시나 반에서 실수를 할까 봐 걱정됐다. 혹시나 그 한 문장조차 못 외우면 어떡하나. 문장이 생각나지 않을 때를 대비해서 "Restroom, Restroom, Restroom"만 말하라고 시켰다.
등교 첫 날,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준 그 순간부터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영어 한 마디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미국 학교에 두고, 집에 있기가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수업이 끝날 시간, 걱정스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갔다. 저 멀리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고, 아이들이 차에 타기 무섭게 "오늘 학교 어땠어?"라고 물어보았다. 의외의 반응. 두 녀석 다 '재미있었어요!!'란다.
아니 어떻게 재미있을 수가 있지?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서로 대화가 통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래도 엉망이라는 말보다 재미있었다는 말을 들으니 시작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들었다. '그래, 그거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은 흘러간다. 입학 후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처음으로 아이 담임 선생님(Homeroom teacher)과 미팅을 하게 됐다. 두 명의 선생님이 나와 남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명은 담임 선생님, 다른 한 명은 ESL 선생님이었다(ESL은 'English as a second language'의 약자로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는 프로그램이다).
선생님은 아이가 잘 적응하고 있다며 우리를 안심시켰다. 온 지 몇 달 되지 않아 영어가 서툴다고 말한 선생님은 아이가 할 수 있는 영어라고는 "Can I go to the restroom"뿐이라고 알려줬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했지만 나와 남편은 웃지 못했다.
학교에서 걸려온 전화 한 통, 지옥같은 하루
보통 한두 번씩은 학교에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한다던데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워하고 있을 무렵,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수업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체육시간에 둘째가 바지에 소변 실수를 했다는 것이다.
전화를 끊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안심하던 순간, 걱정하던 일이 터진 것이다. 학교 생활에 적응도 했고 화장실 다녀와도 되는지 묻는 것 정도는 쉽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즈음이었다. 하늘이 노래졌다.
바지와 속옷을 챙겨들고 학교로 달려갔다. 양호실(Nursing room)에 앉아 있던 아이는 나를 보자 울먹거렸다. 간호 선생님은 학교에 여분으로 있던 옷을 둘째에게 입혀 놓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히고 꼭 안아주며 아무 일도 아니라고 했다. 그럴 수도 있다고, 누구나 실수는 하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한동안 아이는 내 품에 꼭 안겨 있었다. 울먹거리던 아이는 진정이 되었는데, 오히려 내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그대로 꼭 안아주다가 차로 데리고 왔다.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기도 했지만 아이는 교실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집에 온 아이가 평온함을 되찾을 무렵,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넌지시 물었다. 아이는 체육시간 전 미술시간 때부터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아니라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낯선 선생님이 무서웠다고 한다. 연달아 담임선생님이 아닌 다른 선생님과 수업했던 아이는 소변을 참고 참았지만, 결국 체육시간이 끝나기 10여 분 전 실수를 하고 만 것이다.
그날 퇴근 후 집에 온 남편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주었다. 말 없이 듣던 남편은 조용히 일어나 와인 한 잔을 가득 채우고 말 없이 비웠다. 시간이 모든 일을 해결해 줄 것이라 생각하지만, 속상한 일이 벌어지면 '해결사'인 시간은 참 더디 간다. 미국에 온 지 반년이 지난 시간, 왜 아이는 'Restroom'이라는 한 단어조차 말하지 못했던 것일까.
어쩌다 미국에 와 정착해 생활한 지 2년이 흘렀다. 가까운 마트는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도 가게 된 지금, 우리 가족의 지극히 주관적인 미국 생활 적응기를 이제부터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