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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정아 May 18. 2020

때로는 등 떠밀림만 한 동기부여가 없다

생각과 끌어당김의 힘에 대하여

다이어트나 금연을 할 때 주변에 소문을 내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당신은 등 떠밀려 뭔가를 시작한 적이 있는가?


처음 글을 써볼까 했던 건, 주말도 없이 일했던 직장을 일 년 쉬고 있던 중이었다.


한 달 가까이 쉬며 닥치는 대로 이런저런 책을 읽다가 문득 "나도 책을 한 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책을 끼고 살아온 내가 의외로 처음 해본 생각이었다. 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나 하면 딱히 한 가지 이유나 배경은 없었다. 책으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읽고 마음을 다스리려고 했던 것뿐인데, 그날 밤 책을 덮으며 불현듯 그런 생각이 스쳤다.


세상에 책이 이렇게 많고 막상 펴보면 알맹이가 없는 책들도 수두룩한 현실이다. 이런 세상이라면 나도 내 이름으로 책 한 권은 쓰고 죽어야겠다는 각오가 불타올랐다. 왜 더 일찍 생각하지 못했나 싶은 답답함도 섞여있었다. 야구장에서 공이 시원하게 날아가는 모습을 보고 처음 소설가가 되기로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극적인 씬은 아니었지만, 수년간 혼자 습작만 하던 내가 처음으로 "남이 읽을 만한 글쓰기"에 대한 생각의 씨앗을 뿌린 날이었다.


내가 쓸 수 있는 건 유학, 인턴십, 해외 취업에 관한 책이었다. 어학연수부터 취업까지 다 경험해본 입장에서 시중에는 없는, 나만 쓸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다. 그렇게 마음을 다지고 난 다음날, 평소엔 들어갈 일이 없는 한인 사이트 구인광고 게시판에 들어갔다. 별생각 없이 들어간 사이트에는 한글 대필작가를 찾는 광고가 있었다. 미국 생활 십몇 년 만에 처음 보는 구인광고였다. 한국에서의 출판을 목표로 미국에서 한국어 대필 작가를 고용할 일이 얼마나 자주 있을지 생각해보면, 그날의 우연은 정말 특별했다. 심지어 바로 전날 올라온 따끈따끈한 광고였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난 생각의 중요성과 끌어당김의 위대한 힘을 믿지 않을 수 없다.


몇 달간 억지로라도 책 한 권을 쓰면 내 책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바로 이력서를 보냈다. 면접에 가보니 쓰고자 하는 책의 주제가 내가 엊그제 계획한 내 책의 주제와 신기할 정도로 일치했다. 내가 엊그제 쓰려고 마음먹었던 책과 80% 비슷한 책을 쓰기 위해 작가를 찾는 중이었다. 경력도 없는 주제에 "저를 안 뽑으셔도 저는 어차피 이런 책을 쓸 계획이에요"라며 당돌하게 인터뷰를 마쳤다. 며칠 후 뉴욕의 많은 경력 있는 작가들을 제치고 무경험자인 내가 그 일을 따냈다.


매일 어느 정도의 질 좋은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극한의 상황으로 나를 밀어붙이기에 성공했다.


그렇게 3개월 간 매달린 끝에 초고를 완성했고, 이듬해 겨울 책이 출판됐다. 대필 경험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재능과 열정을 깨달은 나는 바로 대학교 영문학과에 편입했다. 혼자 글쓰기 공부를 하려고 하면 게을러질게 뻔하니, 어떻게 해도 물러날 수 없는 상황으로 또 한 번 밀어붙인 것이었다. 내 나이 서른두 살이었다. 학교에서 3년간 영문학, 문예창작과 씨름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열정만 갖고 있던 분야에 어느 정도의 기초가 다져진 것 같아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신감도 생겼다.


그렇게 글쓰기에 물꼬를 트고 브런치에 글을 쓰며 운 좋게도 많은 독자분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된 내가 최근 등 떠밀려 시작한 게 바로 유튜브다. 요즘 십 대들의 장래희망이라는, 직장인 2대 허언 중 하나라는 유튜브 시작하기. 처음 친구들과 해볼까 생각했던 건 거의 십 년 도 전의 일이고, 최근에 다시 한번 해 볼까 말까 생각이 든 게 일 년 전의 일이다. 영상편집을 해 본 적도 없고, 주변에 할 줄 아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 짧은 영상을 수도 없이 찍었다 지우기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일 년 넘게 "유튜브 할 거야"라고 입으로만 떠들며 시작하지 못하던 내게 전혀 예상 못한 계기가 생겼다. 바로 유튜버 이웃이 생긴 것이다. 그것도 그냥 유튜버가 아닌, 구독자 40만에 가까운 거물급 유튜버다. 일 년 넘게 생각만 하던 내게 유튜브의 신이 거대한 힘으로 밀어서 보내준 것 같았다. 사실 유튜버를 알게 된 것과 나 자신이 유튜브를 시작하는 건 전혀 별개의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와 친해지고 나서 그녀의 구독자 중 몇 명이 내 빈 계정을 구독하는 일이 생겼다.


영상도 없는 채널에 26명이나 구독자가 생긴 걸 보니, 소심한 성격에 이보다 더 큰 등 떠밀림은 없었다. 마침 시험 삼아 찍어본 영상을 처음 해보는 편집 실력으로 하루 만에 올리며 얼떨결에 유튜브를 시작했다. 올리고 보니 마음만 먹으면 하루 만에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일 년 넘게 고민한 게 허무할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영상편집 학원 초급 코스 정도는 떼고, 좋은 편집 프로그램도 갖추고, 살도 한 10킬로는 빼고 시작하려고 했던, 그래서 시작하지 못했던 유튜브. 찍고 편집하고 올리기까지 겨우 하루 반나절 걸렸다. 글쓰기는 내가 자신을 밀어붙였다면, 유튜브는 그야말로 남에게 등 떠밀리듯 시작됐다.


내 얼굴이 들어간 영상을 공개된 곳에 올리면 큰일이 나고 천지가 개벽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 사진하고 너무 다르네요, 편집이 별로네요 하고 악플이 달릴 줄 알았는데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무 일 없이 잠잠했다. 실체 없는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마음이 편하고 자유로워졌다.


얼떨결에 시작한 유튜브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다. 기획, 제작, 편집까지 혼자 다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전 정신과 창의력을 자극하는 즐거운 과정이다. 블로그를 했고,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인스타그램을 하는 나에게는 자연스러운 다음 과정이었던 것처럼 유튜브는 편안하고 재미있다. 시작하고 4개월 만에 소소한 수익 창출도 시작됐다. 이 모든 건 분명 내 의지 하나만으로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뭔가를 도전하고 계속해 나가는 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으로 끊임없이 밀어붙이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러면서 중간에 소소한 성공을 맛보며 점점 발전해 나간다.


https://youtu.be/sLKHU_O7ijs

별거 다 올리는 재미가 있는 유튜브 놀이터

시작과 도전의 아이콘인 나는 대학교를 세 번이나 다니며 세 번 다 다른 전공을 했고, 일하는 분야도 셀 수없이 바꾸며 늘 새로운 걸 시작하는 삶을 살아왔다. 시작과 도전은 내 삶의 일부분이고 취미였다. 책 쓰고 싶다,라고 처음 생각하고 바로 다음날 대필작가 이력서를 넣었던 나다. 그런 나도 생각에서 시작까지 가장 오래 걸린 게 유튜브였고, 아마 외부로부터 기회와 압박이 들어오지 않았다면 지금도 시작하지 못했을 게 분명하다.


늘 나 자신의 등을 떠밀어서 도전을 시작하다 처음으로 등 떠밀리듯 유튜브를 시작하고 지속해보니 깨달아지는 게 참 많다. 때로는 내가 밀어붙이는 것 이상의 의지가 필요하고, 압박이 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내가 생각만 하고 실행하지 못하고 있는 그 무언가가 내 인생에 어떤 파급력을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도전의 건너편은 내가 해보기 전엔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다. 뭔가 할까 말까 고민만 하고 있는 당신의 의지를 북돋우고 밀어주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고, 백번 보는 것보다 한 번 하는 게 훨씬 더 강력하다. 그러니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는 게 있다면 그냥 눈 딱 감고 한 번 해보시길.


이런저런 도전을 해보고 나니, 생각만 하는 것보다 딱 한번 해 보는 게 얼마나 효과적인지 몸소 깨닫는다. 예를 들어 유튜브는 영상 하나만 어떻게든 올려보면 느낌이 올 것이다. 한두 달만 해 보면 이게 내 새로운 취미가 될 수 있을지 아닌지 답이 나온다. 운동을 시작하고 싶으면 생각만 하지 말고 피트니스 하루 체험이라도 해 보고, 글을 쓰고 싶으면 읽기는 잠시 쉬고 한 줄이라도 쓰는 게 낫다.


유튜브 한다고 말로만 하던 지난 일 년 여 간의 시간이 머리를 스친다. 진작에 해 볼걸.


이제라도 시작해서 다행이고 감사하다. 뭐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긴다. 지금 당신이 생각만 하고 있는 그것, 잘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그것을 하루라도 빨리 과감하게 시작해보시길 바란다.


시작이 반이라는데, 막상 해보면 의외로 간단하고 별거 아닐 수 있다. 대충이라도 시작해보길 바란다. 어마어마한 신세계가 펼쳐질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지의 선택은 온전히 자신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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