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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Apr 23. 2023

방콕 올드타운의 시작, 왓포 (wat Pho) (1)

사기꾼을 조심하세요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제대로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새벽녘에 잠이 깬 첫째 날 아침. 동남아에 와 있다는 것을 깨우쳐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대충 말아도 맛있는 쌀국수가 가득한 배를 통통 두드리며 호텔 문을 나섰다. 원래 삼욧(Sam Yot) 역 주변의 오래된 맛집이라는 온록윤(On Lok Yun)에서 태국식 아침을 맛볼 예정이었지만, 생각보다 오랜 비행과 이동을 마친 후에 제대로 자지도 못한 상황에서 이미 2만 보 이상 걸어 다녀야 할 첫째 날, 굳이 호텔에서도 먹을 수 있는 아침을 위해 몇 천 보를 더 걸어 다닐 자신이 없어 쿨하게 포기하고, 초록 라인인 아속(Asok)이 아닌 블루 라인 수쿰윗(Sukhumvit) 역으로 변경, 올드타운의 관광지가 지척에 있는 사남차이(Sanam Chai) 역으로 이동하였다.


관광객들을 위해 각 잡고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사남차이역은 그 위용이 대단했다. (사실 뒤돌아보면 국수 한 그릇이 45밧 - 50밧인 태국의 물가에 미루어볼 때, 약 35밧의 지하철 가격은 물가 대비 비싼 편이므로 태국의 지하철 역이 번쩍번쩍(?) 한 것도 어쩌면 타 대중교통보다 더 비싼 가격을 받기 때문인 것 같다) 태국의 왕궁과 사원의 양식을 본떠 만든 역은 관광명소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정도로 화려하고 그 규모가 컸다. 코시국이 아니었다면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쉬이 상상할 수 있을 정도였다.


사남차이역 출구 옆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와중에 우리 옆을 지나가는 스페인 단체 관광객의 뒤를 슬쩍 따라 사남차이역 1번 출구로 나오니 10시도 되지 않은 아침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후덥지근한 여름의 더위가 몸을 휘감았다. 얼마나 나와 있었다고 왕궁과 사원을 가기 위해 입은 긴 바지가 다리를 휘감았고, 아직 마르지 않아 풀고 있던 머리카락이 목덜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12월에서 2월이 제일 여행하기 좋은 선선한 날씨라던데, 해를 피할 곳이 없어 무조건 아침에 가야 한다는 왕궁에 들어서기는커녕 도달하지도 못한 오전부터 더위에 양 뺨을 맞으니 습도 75프로에 수렴하는 동북아 찜통더위와 나를 구울 작정으로 내리쬐는 덕분에 까맣게 타 자연 팔토시와 다리토시를 선사한 미국의 더위를 겪으며 여름 날씨에 익숙해져 있다고 자만한 작은 동북아의 한국 여성의 마음속에서 백기가 스멀스멀 올라올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걷기 전에 역 주변 나무 그늘 아래에 엄마를 앉히고 구글 맵을 켜 지도와 위치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카메라를 짊어매고 지도를 켠 채 갈팡질팡하며 관광객 티를 내니 길거리에서 일하고 있던 현지인들이 주변을 맴돌며 다가오기 시작했다.(치마 두르고 분을 바르면 일단 캣 콜링을 하고 보는 것은 전 세계 공통인 것 같다) 해외에서 모르는 현지인이 나한테 다가오는 건 짓궂은 캣콜링이든, 소매치기든, 원하지 않은 물건의 강매든 결코 좋은 끝이 있지 않기에 더위에 혀를 내두르며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있던 엄마의 팔을 끌고 일단 그곳을 벗어나려 아무 곳으로나 걷다가 반대로 가는 바람에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오는 과오를 범하기도 했다 (길치는 오늘도 웁니다).


동남아 시장에서 일본 제품의 점유율이 크다고 하더니, 광고도 왠지 태국이라기보단 일본같은 경우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여차저차 맞는 길을 찾아 사원으로 향하는데, 이번에는 ‘툭툭 사기꾼’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사원 혹은 왕궁까지 가는 길이 머니 200밧에 데려다주겠다는 것이었다. (역에서 사원의 거리가 조금 있기는 하지만 못 걸어갈 정도는 아니다) 택시 기본요금도 안 나올 거리에 50밧도 아니고 100밧도 아니고 200밧 (약 7600원)라니. (잊지 말자, 태국에서는 그랩 아니면 볼트다)


코웃음을 치며 지나치자 이번에는 ‘사원 휴일’ 사기꾼이 다가왔다. 사원이 휴일이라 못 들어간다면서 다른 관광지로 데려가 보석을 강매한다는 한국에서도 유명한 사기 유형이었다. 완윳, 완윳(휴일), 홀리데이, 태국어와 영어가 귓전을 울렸지만 눈길도 주지 않고 직진했다. 차라리 관광객이 많았으면 금방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갔을 텐데 아무리 눈을 씻고 쳐다봐도 그 거리를 걷고 있는 것은 나와 엄마뿐이었으니, 그 사기꾼은 우리의 걸음 속도에 맞춰 한참을 곁에 머물다 떠났다. 이미 긴 옷을 입고 있어 100밧을 받고 유료로 긴 바지를 빌려준다는 ‘코끼리 바지 사기꾼’과 상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이 왓포 가는 길의 유일한 위안이었다.


“이것 봐, 사원은 열었어.”


365일 문을 연다는 왓포 사원의 입구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긴장을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긴 한숨이 새어 나오며 다리의 힘이 풀렸다. 매표소에 다가가 400밧을 내고 입장권 두 개를 받아 들었다. 코로나로 인해 관광객이 별로 없어 좋을 것만 같았는데 이게 웬걸, 관광지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기꾼을 조심합시다!


어쨌든, 녹음이 우거진 풍경은 멋있다. 마치 명륜당 은행나무처럼 크고 멋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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