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빛을 밝히며 - 경기민요, 영어를 입다
모든 조명이 꺼진 무대 위에 첫 발을 딛는다. 얼굴에는 고운 화장을 하고, 예쁜 비단옷을 입은 채로. 이제 곧 조명이 켜지면 세상의 모든 시끄러운 소리는 사라지고, 오직 조명 속에 빛나는 나와 내 입술 끝을 바라보는 관객들만이 남는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무대 한편에 있는 반주 선생님께 작게 고갯짓 하면, 장구의 퉁퉁거리는 진동과 가야금의 선율이 고막을 두드린다. "에에~ 에에~" 경기민요 특유의 맑고 고운 소리가 장내를 채운다. 그 시간만큼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것만 같다. 흥에 겨운 사람들의 작은 어깨춤과 박수 소리를 듣다 보면 긴장했던 것도 잊고 무대에 빠져든다.
강산이 두 번 바뀌고, 카세트테이프가 MP3로, 그리고 또 스트리밍 서비스로 바뀌는 동안, 나는 한국을 떠나 중국과 미국, 스페인의 낯선 도시들을 부유했다. 경영학도였다가, 커뮤니케이터였다가, 선생님이었다가, 프로젝트 매니저가 되기도 했다. 도대체 내가 서있는 곳은 어디였나, 내가 하고자 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나, 방향을 잃은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 준 것이 있다면, 바로 '노래'였다.
나는 내가 부르는 노래들이, '경기민요'가, 그리고 '경기민요 소리꾼'이라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믿었고, 언젠가 경기민요와 창극을 브로드웨이가 가지고 갈 미래를 꿈꿨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무참히 깨진 것은 2015년 초여름, 어느 화창한 야외 공연장에서였다.
"Wow, beautiful! But... what does it mean?" (와, 아름답네요! 그런데... 무슨 뜻인가요?)
가야금 선율에 맞춰 열창을 마친 나에게 한 외국인 소녀가 다가왔다. 그 순진한 눈망울 앞에서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관객들이 환호했던 순간은 '아리랑'이나 '뱃노래'라기보다는 드라마 <대장금>의 OST였던 '오나라'나, 영국의 밴드 '비틀스'의 명곡 'Let it be' 였던 것도 같았다. 13년간 세계를 돌며 '문화교류'를 외쳤지만. 정작 나는 그들에게 화려한 기교로 포장된 '아름다운 소음'만을 들려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갑작스러운 현실 자각에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얼얼한 기분이 들었다. 'Let it be'와 'Eres tu'에서 박수가 나왔던 이유? 이유는 단순했다. 그것들이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노래'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언어'였고, 더 깊게는 '맥락(Context)'의 부재였다. 한국인인 우리도 오페라를 원어로 즐기기 위해 자막을 찾는다. 하물며 낯선 땅의 이방인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한국의 한(Han)과 흥을 느끼라"라고 강요하는 것은 폭력에 가까운 불친절함이다.
그날 이후,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오페라나 뮤지컬은 시간이 지나면 번안곡이 나와 우리의 정서와 감성으로 작품을 온전히 향유할 수 있게 되는데, 과연 국악은 그런 친절함을 베푼 적이 있었나. 우리의 전통은 왜 박물관 유리장 안에 갇힌 유물처럼 느껴질까? 100년 전 조선의 거리를 휩쓸었던 이 힙(Hip)한 노래들은 왜 '지루한 옛것'이 되었을까. 왜 같은 한국인들 조차 '방탄소년단'도 아니고, 누가 21세기에 '국악'을 듣겠냐는 소리를 하게 됐을까. 아니, 무엇보다 그 노래를 부르는 나는 그 노래들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 왜 '짜증을 내어서 무엇하냐' 자문하고, 왜 그 시절 낭군님들은 모두 아내와 가족을 떠나 아리랑 고개를 넘게 되었는지, 나는 알고 있는지에 대한 자조적인 감상이 몰려왔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인들은 음악을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한국인들에게는 음미할 수 있게 해 줄 무언가를. 민요를 번역하고 해석해서 외국인과 한국인들 모두가 국악을 즐길 수 있게 해 주겠다고.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민요를 번역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을 거라고. '청사초롱'의 낭만을, '한양 십 리'의 거리감을 어떻게 영어로 옮기겠냐고. 그렇게 의욕을 잃은 채로 10년이 지났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은 경기민요 하는 사람 중에 영어를 제일 잘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 중에 소리를 제일 잘 아는 내가 하고 싶었다. 그렇게 문화 번역소 '더환한'과 작가 '환한'이 탄생했다.
'환한'은 어둠 속에 잠긴 가치를 빛으로 비추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이름이 있다. 노래하는 경기민요 소리꾼 조소현, 기획하고 큐레이팅하는 콘텐츠 에디터 현, 그리고 기록하고 번역하는 작가 환한. 이 프로젝트는 이 세 개의 자아가 충돌하고 화합하며 만들어낸 첫 번째 결과물이다.
<조선팝, 영어를 입다 - 1930 경성에서 온 힙한 위로>는 단순한 번역서가 아니다. 이 책에서 경기민요는 1930년대 경성을 휩쓴 '최신 유행가'로 재탄생한다. <경복궁타령>에서 노동자들의 힙합 정신을, <태평가>에서 불안한 청춘들의 허무주의를, <군밤타령>에서 얼어붙은 거리를 녹이는 생존 본능을 읽어낸다.
이것은 과거의 조선과 현재의 대한민국, 그리고 한국과 세계를 잇는 문화적 통역(Cultural Interpretation)이다. 노래가 언어의 장벽을 넘어 '의미'로 다가갈 때, 비로소 진정한 울림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빛을 비추자, 오래된 노래가 비로소 당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