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민요 소리꾼이었던 어머니 밑에서 나고 자라 뱃속에서부터 군밤타령을 들으면서 자라온 내게 경기민요는 우리가 숨을 쉴 때 공기가 필요한 것처럼 당연한 것 중 하나였다. 아리랑, 태평가, 또는 이별가 등의 대표곡이 있는 경기민요는 흥겹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노래에서 흔히 '은쟁반에 옥구슬'이라고 말하는 맑고 청아한 느낌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바로 경기민요다. 하지만 한국에서 '국악' 또는 '경기민요'를 전공한다고 하면 열에 아홉은 다음과 같은 말이 돌아온다.
아, 창을 하시는구나! 그럼 판소리? 저 사랑가 불러주세요!
경기민요는 판소리와 다른 것이며, 경기민요의 대표곡은 '사랑가'가 아니라 '아리랑'이나 '창부타령', '한오백년'이라고 말하면 그제야 '아아아!' 하고 반쯤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이 돌아온다. (솔직히 '한오백년'도 '가왕 조용필'님 덕분에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국악이 유행가이던 시절을 살아보지 않은 90년대생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런 실정에 영어로 경기민요를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 글에서는 영어로 민요를 소개할 때 유용한 표현 및 개념을 소개한다.
민요란 무엇인가? 통상적으로 민요는 영어로 'Folk Song'이라고 칭한다. 7080년대 통기타를 메고 부르던 '포크송'의 그 '포크'가 바로 이 'Folk'이다. 쉽게 말해 포크(Folk)는 '사람', '민속', '민간' 등을 뜻한다. 그러므로 Folk Song으로써의 민요는 바로 "사람들의 노래", "민중의 노래"를 뜻하는 셈이다.
여기서 잠깐, 흥미로운 디테일이 있다. 보통 영미권에서는 'Folk Song'과 'Folksong' 모두 띄어쓰기 유무와 상관없이 '민요'라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한국의 경우 1970년대에 미국의 모던포크의 영향을 받은 '포크송' 장르가 등장하며 그 결을 달리한다. 이로 인해, 'Folk Song'은 일반적인 '민요'로, 'Folksong'의 경우는 명사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Folk의 사전적 의미
1) 민속의 2) 민요의 3) 민간의 4) 민속 음악의
+ 명사로 사용할 때, '여러분! 얘들아!'의 의미로 'Folks!'를 쓸 수 있다.
출처: 다음 사전
그렇다면 이 '사람들의 노래'는 한국 음악 안에서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성악 부문에서 한국 전통음악의 스펙트럼은 생각보다 넓다. 선비들이 즐기던 가곡인 '정가(正歌)*'가 있고, 전문 소리꾼에 의해 가창되던 판소리의 다섯 마당도 있다. 민요는 그사이 어디쯤, 왕족이나 귀족이 아닌 일반 서민(Peasant/Working class)들의 삶 속에서 피어난 노래다.
* 선비들이 향유하던 음악을 '풍류음악'이라고 한다. '영산회상'으로 대표되는 '기악곡'과, 판소리나 민요보다 우아하고 정갈하다는 의미에서 '정가(正歌)'라고 불리는 '가곡, 가사, 시조'가 있다. 가곡은 1969년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되었고, 2010년에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정리하자면, '민요'란, 양반이나 왕족이 아닌 일반 시민에 의해 생성되어 불러진 구전 전통 음악이다. 다음의 두 가지 어휘를 기억해 두면 좋다.
구전 (Oral tradition music)
농민/노동자 계층 (peasant/working class)
하지만 민요는 "서민의 노래"라고 퉁치기엔, 그 결이 너무나 다양하다. 논을 매다가 부르던 <모내기소리>와 1930년대 탄생한 유행가로서의 "신민요"들은 그 탄생 배경부터 전승까지, 그 맥을 달리한다. 이 점에서 민요는 또 두 가지의 큰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바로 '토속민요(土俗民謠)'와 '통속민요(通俗民謠)'다.
토속민요(土俗民謠)는 말 그대로 어느 한 지역에 뿌리를 내린 '흙의 노래'다. 국립국악원의 정의에 따르면, 이는 "일정한 지역에 한정되어 불리며, 전문적인 음악 훈련을 받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부르는 노래"를 뜻한다. 토속민요는 '지역성'과 '생활'이 핵심이다. 모내기 같은 노동의 현장에서, 혹은 마을의 의식이나 놀이판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口傳)됐다. 악보도 없이 즉흥적으로 가락과 노랫말이 변했을 것이다. <모심기 소리>나 <상엿소리>처럼 특정한 기능을 가진 '기능요'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속민요는 예쁘게 만들어진 공연이라기보다는 일의 고단함을 잊게 해주는 삶의 BGM이었을 것이다. 21세기에 토속민요가 있었다면 아마도... <키보드 치는 소리>, <정수기 물통 가는 소리>, 혹은 <1호선의 노래> 같은 게 아닐까.
반면, 통속민요(通俗民謠)는 '기능'이 아니라 '유희(Entertainment)'를 위해 탄생했다. 국립국악원은 이를 "직업적인 전문 소리꾼에 의해 불리며, 본래 발생한 지역을 벗어나 널리 퍼져서 불리는 노래"라고 정의한다. 19세기말부터 20세기 초, 흙냄새 나는 토속민요들이 도시(서울)로 올라와 전문 소리꾼들의 목소리를 입었다. 투박한 가락은 세련되게 다듬어졌고, 대중이 듣기 좋게 편곡되었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명창들이 갈고닦은 화려한 기교를 선보이는 예술성의 극치였고, 장구와 악기 반주가 더해져 음악적 완성도가 더해졌다.
우리가 흔히 '민요'라고 알고 있는 아리랑, 태평가, 늴리리야 등은 모두 이 통속민요의 결정체다. 이것들은 1930년대 레코드판과 라디오를 타고 조선 팔도로 퍼져나갔다. 그렇게 통속민요는 태생적인 지역(경기, 서도, 남도 등)의 색깔은 간직하되, 그 경계를 넘어 전국의 대중에게 사랑받는 '당대의 유행가'로 자리 잡았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날 다섯 곡의 노래들은 모두 '통속민요'다. 엄마가 뚝딱 차려준 '집밥' 말고, 미슐랭 셰프가 재해석한 '파인다이닝'. 당대의 셰프(명창)들이 요리해 1930년 경성의 대중에게 내려놓았던 가장 핫한 메뉴들이다.
그렇다면 '경기민요'는 무엇일까? 경기민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의 민요가 몇 가지로 나눠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한국의 민요는 다섯 가지로 나뉜다. 경기민요, 서도민요, 남도민요, 동부민요, 그리고 제주민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을 나누는 기준은 바로 '지역'이다. 이 중,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경기민요(제57호, 예능보유자 '이춘희' 외 2인)와 서도민요(제29호, 예능보유자 '김광숙' 외 2인)이고, 남도민요의 경우 판소리(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 '신영희' 외), 가야금 산조 및 병창(제23호, 산조 예능보유자 '이영희' 외)이 있다. 제주민요(제95호)의 경우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만 보유자 없이 '자율전승형 보유단체'로 계승되고 있으며, 동부민요는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로 지역 문화재로서 보호되고 있다.
사실 한국은 중국, 일본과 함께 유네스코가 인정한 '무형유산 덕후' 국가다. 유럽보다 훨씬 더 오래전부터 무형유산 보호 및 분류 체계가 잘 마련되어 있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서 "국가무형문화재 제57호가 어쩌고, 제29호가 저쩌고..." 하며 법전을 읊다간 여러분의 뇌에 지진이 날지도 모르니 (우리의 목표는 학위 논문이 아니라 힙한 플레이리스트니까!) 복잡한 족보는 쿨하게 스킵하고 '실전 압축형 잡학 지식'만 챙겨가자. 혹시 아나? 훗날 연인과 전주 국립무형유산원 공연장에 갔을 때, "어? 저건 콧소리를 보니 서도 민요네?"라고 무심하게 한마디 던지며 전통문화 사랑하고, 깊은 문화적 조예가 있는 사람 이미지를 챙겨갈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자, 그럼 복잡한 건 걷어내고 우리가 살면서 가장 흔하게 마주칠, '민요계의 3 대장'부터 만나보자.
A. 경기민요
'경기'라는 말을 들으면 '경기도'를 떠올리기 쉽다. 하지만 민요 세계에서 경기는 경기도의 지역적 범위보다 넓은 '중부 지역'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서울, 인천, 경기, 충청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대표 곡으로는 아리랑, 도라지 타령, 태평가, 그리고 늴늬리야가 있으며,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특징이다. 남도 민요에 비해 멜로디가 극적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보통 우리가 흥얼거릴 수 있는 민요라는 점에서 common & well-known 이란 단어를 포함시켰다.
다음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1. Region : Seoul, Gyeonggi, Incheon, and some part of Chungcheong area
* Metropolitan City area (수도권)이라는 말 또한 알아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2. Characteristic : fast, rhythmical, pure, clear
3. Other: common & well-known
별다방의 메뉴로 비유해 보자면 경기민요는 쿨 라임 피지오와 같은 음료다. 톡 쏘는 탄산의 청량함이 고막을 탁 때린다. 경기 소리꾼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튀는지, 사람들이 가득한 합창단 무대에서도 누가 경기 소리꾼인지 바로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Taste: 맑고 달콤하면서도, 탄산처럼 톡톡 튀는 경쾌함.
Vibe: 한여름 서울 도심에서 마시는 세련된 음료.
Why: 경기민요의 맑은 발성과 통통 튀는 리듬감이 피지오의 탄산과 꼭 닮았습니다. 가장 대중적이고 호불호 없이 누구나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맛입니다.
B. 서도민요
서도민요는 평안도, 황해도 지역에서 불리는 이북 지역의 소리를 일컫는다. 경기민요나 남도민요를 하는 사람들보다 (체감상) 적어 쉽게 만나보기 힘들다. 다만 경기민요를 배우면서 동시에 서도 민요를 배우기 때문에 경기 소리꾼들이 서도 민요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경기민요와 서도민요의 가장 큰 차이 중 하나는 바로 꾸밈음. 서도민요는 한 번 딱 들으면 잊히지 않을 독특한 꾸밈음/장식음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 팬텀 싱어에 나왔던 라비던스의 <몽금포 타령>의 원곡이 바로 서도민요다.
다음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1. Region : Pyeongan-do, Hwanghae-do area
* North Korean Region (이북 지역)이라고 칭해도 무방하다.
2. Characteristic : Unique ornaments
별다방 메뉴로서의 서도민요는 아이스 자몽 허니 블랙티다. 쌉싸름한 자몽의 맛과 홍차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지만, 한번 맛보면 끊을 수 없고, 결국 자허블 마니아가 되고야 만다.
Taste: 홍차의 그윽한 향기에 자몽의 쌉싸름함이 섞인 오묘한 맛.
Vibe: 서늘한 바람이 부는 북쪽의 가을 저녁.
Why: 서도민요의 특징인 '콧소리(비성)'는 마치 홍차의 향기처럼 코끝을 맴돕니다. 서도민요의 대표곡인 '수심가'의 애절하고 쓸쓸한 정서는 자몽의 쌉쌀한 맛과 퍽 닮았다.
C. 남도민요
남도민요는 전라도, 충청남도, 그리고 경상남도 지역에서 불리던 민요이다. 보통은 '판소리 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되기 쉬우나 사실 <진도아리랑>과 <사랑가>는 다른 종목... 이긴 하다. 경기민요에 비해 굵고 거친 발성을 가지고 있고, 멜로디의 변화가 극적이며, 슬픈/한스러운 감정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줄 수 있는 민요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의 단어들을 사용해서 문장을 만들어 볼 수 있다.
1. Region : Jeonla, Southern Chungcheong, and Southern Gyeongsang area
2. Characteristic : drastic changes in melody
3. Other: difference between Pansori?
별다방 메뉴로써의 남도민요는 아마도... 내 영혼까지 파고드는 진한 여운이 남는 에스프레소가 아닐까 싶다. 커피 향이 그 어느 메뉴보다도 깊고, 혀 끝의 커피 맛은 진한 여운을 남긴다. 윽, 너무 쓴가! 싶다가도 에스프레소의 맛을 알게 되면 에스프레소만을 찾게 되기도 한다. 많은 크로스오버 가수들이 있는 장르이기도 한 판소리. 트로트 가수로써 전국을 누비고 있는 '송가인'님, 국악계의 아이돌 '김준수'님, 팬텀 싱어의 피아니스트 '고영열'님, 그리고 '조선팝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서도밴드의 '서도'님이 모두 판소리를 기반으로 가지고 있다. 에스프레소는 쓰지만, 이렇게 바닐라 아이스크림과 아포가토를 만들어 달달하게 즐길 수도 있다는 점이 남도민요가 가진 매력이 아닐까 싶다.
Taste: 크레마가 가득한 묵직한 바디감. 혀끝에 남는 씁쓸한 여운.
Vibe: 비 오는 날, 깊은 생각에 잠겨 마시는 진한 커피.
Why: 남도민요 특유의 굵고 거친 탁성은 에스프레소의 묵직함과 같다. 한국인의 대표 정서라는 '한'을 노래로 만들어놓은 것만 같은 그 진한 맛은 처음엔 쓰지만,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중독성이 있다.
자, 여기까지 왔다면 당신은 이미 어디 가서 "민요 좀 아는데?"라고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 이제 실전이다. 스타벅스에서 커피 취향을 고르듯, 외국인 친구에게 우리의 '조선 팝'을 자신 있게 권해보자.
혹시 영어로 설명하려니 입이 잘 떨어지지 않는다면? 걱정 마시라. 댓글이나 '제안하기'로 당신만의 문장을 보내주면 된다. 2N 년 차 소리꾼이자 영어쟁이인 내가, 당신의 표현이 더 '환하게' 빛날 수 있도록 1:1 원 포인트 레슨을 해드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