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ck 02. 늴리리야

1930년 청춘들이 2026년 청춘들에게 보내는 시대의 위로.

by 환한

Intro: 3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던.

11살 무렵, 스승님 따님의 결혼식 축가로 <늴리리야>를 부르게 되었을 때, 나는 그저 신이 났다. 결혼식이라는 경사에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가 마이크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고, <늴리리야>의 "청사초롱 불 밝혀라"는 가사가 결혼식과 딱 맞는 화려한 축복 같았으니까. 11살 꼬마에게 늴리리야는 그저 빠른 비트에 흥겨운 음률을 가진 신나는 음악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연습시키는 엄마의 표정은 왠지 복잡해 보였다. 고작 11살짜리가 잔칫날에 부르기엔 가사가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네가 부르고 싶은 가사를 직접 붙여봐". 결혼식과 <늴리리야>의 가사가 왜 안 어울린다는 것인지 이해하진 못했었지만, 그렇게 이 노래는 생애 첫 창작의 씨앗이 되었다.


시간이 흘러 2013년, 어린시절 나의 롤모델이자 아이돌 지드래곤(G-Dragon)의 <늴리리야>가 발매되었다. 심장을 울리는 비트 위에 얹어진 익숙한 후렴구는 전율 그 자체였다.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는 가사가 이렇게 힙할 수 있다니. 지금에야 국악풍의 케이팝 노래들이 종종 나오지만, 그때만 해도 국악을 한다고 하면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을 때였다. 어깨춤이 절로 나는 그 세련된 선율 속에서 그의 음악은 나에게 '우리 음악도 현대적일 수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심어주었다.


https://youtu.be/kQePV6RYQe8?si=7aZEKAdzDbCKwgmp


그리고 지금. 30대의 문턱에서 다시 가사를 뜯어본다. 어? 이게 이런 노래였나? 빠른 템포 속에 숨겨진 "왜 왔던고"라는 탄식은 날카로운 가시처럼 마음을 찔렀다. 11살의 내가 몰랐던, 흥겨운 멜로디 속에 숨은 슬픔과 허무함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내가 평생 불러온 <늴리리야>의 진짜 스토리가 궁금해졌다. 이토록 신나는 음악에 구슬픈 가삿말이 붙은 이유는 무엇일까? <늴리리야>는 그렇게 <조선팝, 영어를 입다> 시리즈의 계기이자, 민요 번역의 '시작'이 되었다.


2. 늴리리야의 탄생

<늴리리야>는 작자 미상의 경기민요로, 그 탄생에는 흥미로운 가설들이 공존한다. 하나는 서울 지방의 무가(巫歌)였던 <창부타령>이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세련되게 편곡되었다는 설이고, 또 하나는 일제강점기에 음반 유통과 방송 송출을 목적으로 의도적으로 작곡된 '신민요'라는 견해다. 어느 쪽이 진실이든 중요한 것은 이 노래가 '대중의 귀'를 사로잡기 위해 철저히 계산되고 다듬어진 곡이었다는 것이다.


<늴리리야>라는 곡명은 피리 소리를 흉내 낸 구음 '늴리리' 소리가 수 놓인 후렴에서 따 왔다. 피리 소리를 흉내 낸 이 경쾌한 흥청거림과 달리 정작 가사는 구슬프고 가슴 시린 내용을 담고 있는데, 초기에는 임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과 서민들의 고달픈 삶을 주로 노래했으며, 후에는 인생의 무상함과 늙음에 대한 한탄이 추가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가사는 '벽파 이창배' 선생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서울 지역에서 역사가 깊은 <창부타령>을 전문 소리꾼들이 각 잡고 예쁘게 치장했으니, 사실 <늴리리야>는 언제든, 어떻게든 세상에 나와 대중의 사랑을 받을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노래의 성공에 결정적인 불을 지핀 일등 공신을 단 하나만 뽑으라면, 그것은 바로 1927년 경성방송국(JODK)의 개국일 것이다. <늴리리야>는 당시 방송계를 주름잡던 <한성권번>과 <조선권번>의 여성 음악인들에 의해 많이 가창되고 송출된 곡 중 하나로, 지금으로 치면 'Top 100' 리스트에서 1위를 놓고 싸우는 '히트곡'이 아니었을까. 경성방송국(JODK) 라디오를 통해 울려 퍼진 그녀들의 목소리는 지금의 케이팝처럼 조선의 밤거리를 휩쓸었을 것이다.


(늴리리야를 배워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7gWNYAYyEHs&t=1283s)


3. <늴리리야>의 가사 톺아보기

이제 100년 전 차트 1위를 휩쓸었던 조선판 'Top 100', <늴리리야>의 가사를 깊게 들여다볼 시간이다. 오지 않는 낭군을 오매불망 기다리며, 타들어 가는 속내를 '니나노'라는 흥겨운 가락 뒤로 숨겨야 했던 어느 남겨진 이의 심정에 기대어 노랫말을 번역해 보았다.


⭐️ 늴늬리야 늴늬리야 니나노 난실로 내가 돌아간다 닐 닐리 늴리리야


번역 1: Nilliliya Nilliliya, Ni-na-no Nan-sil-lo! Nil-nilli Nilliliya!

번역 2: Nilliliya Nilliliya, Dance the night away, Nil-nilli Nilliliya!

'늴리리' '니나노'처럼 말 자체의 뜻보다는 의성어나 의태어에 더 가까운 후렴구를 번역할 땐 항상 고민이 많아진다. '난실'이 '내가 태어난 날'이나 '조국'과 같은 것을 뜻한다는 가설도 있지만, 그 가설을 뒷받침해 주는 사료는 찾지 못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1) 음역(Transliteration) 버전 하나와 2) 나라 꼴도 이런데 춤이나 추자 하고 해탈한 1930년대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Dance the night away'라는 문구를 붙여보았다.


1️⃣ 청사초롱 불밝혀라 잊었던 낭군이 다시 돌아온다

번역: Light up the lantern, red and blue, my long lost love is finally coming back home.


늴리리야의 1절은 바로 여러 민요의 가사에서도 등장하는 '청사초롱'이 장식하고 있다. 과거 왕실/세손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조선 후기에 이르러 일반 대중의 혼례식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한 청사초롱. 그래서인지 청사초롱은 '결혼'이나 '신혼부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청사초롱: Korean Traditional Lantern (with a red-and-blue silk shade)

청사초롱의 유래와 상징하는 바를 간단히 덧붙여서 소개하면 좋겠다. 청사초롱을 만들 때 사용되는 빨간색과 파란색, 음과 양(Yin and Yang, Positive and Negative)까지 설명할 수 있으면 플러스!


그런데 여기서 가사의 제일 중요한 포인트는 레드니 블루니 하는 실크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오는 낭군을 위해 불을 켜는 것이다. 청사초롱(lantern)을 준비했으니 이제 그 불을 밝힐 차례다.


불 밝혀라 - 불 V 밝혀라
불: fire ; light
밝혀라: light (up), brighten (up); Turn on


다음은 낭군. 혹시 <백일의 낭군님>이라는 드라마를 기억하는가? 극 중 원득(도경수분)은 홍심(남지현 분)의 '낭군'이다. 이는 (특히 신혼의) 아내가 남편을 부르는 호칭이다.


낭군: The way young female called their husband.


여기서 하나, 궁금증이 인다. '청사초롱'에 불을 붙이는 것을 보면, 갓 혼례를 올리거나 '신혼부부'가 분명한데 왜 같은 가사에 '잊었던 낭군'이 등장할까? <늴리리야>에서 '낭군'은 우리네 조국을 상징한다고도 한다. 노래하는 화자가 '우리/조선사람'이고, 청사초롱이 '광복'이라면, '낭군'은 우리네 조국이 된다. 나라 잃은 국민이 다시 찾을 광복을 그리며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조국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낭군'이라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강제로 징병되어 끌려가 전쟁이나 노역에 동원된 사람들이나, 독립을 위해 만주 벌판으로 번 길을 떠난 사람들이 많았을 시절이 아닌가. 남아있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를 그리는 마음을 한 줄 가삿말에 꾹꾹 담아냈는지도 모른다.


2️⃣ 일구월심 그리던 님 어느 시절에 만나볼까

번역: Day and night, I’ve longed for you. When, oh when, will we ever meet again.


명사로도 형용사로도 사용되는 일구월심은 '날이 오래고 달이 깊어간다'는 뜻으로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마음을 뜻한다고 한다 (출처: 다음 사전).


일구월심을 설명하기 전에 4자로 된 사자성어/고사성어라는 개념에 대해 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사자성어는 네 글자로 이루어진 (Four Character Idiom) 한자로 쓸 수 있는 (can be written with Chinese Characters) 교훈이나 유래를 설명하는 단어(Lessons or origins)이다. 일구월심 또한 다음의 네 한자가 결합된 고사성어이다.


일 (日) : day, sun
구 (久) : a long time
월 (月) : moon, a month
심 (深) : deep, deepen

일구월심(日久月深): The day is long and the moon is deepening. It basically means that somethings get larger and deeper as time goes by (e.g., I am desperate to have my own child more and more as time goes by)


이를 직역하면, 'The day is long and the moon is deepening'이지만, 의역하면 'Things get larger and deeper as time goes by'가 된다. Desperate (간절히 바라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고 보면 좋겠다. 마치 결혼 1년 차와 10년 차의 부부가 아이를 원하는 마음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크고 간절해지는 것과 같이.


마찬가지로 2절에 '조국'과 '광복'을 대입해, 그리던 '님'을 '조국'으로 해석한다면, '간절히 바라는 조국의 광복, 언제나 이뤄질까'와 같은 의미로 번역할 수 있겠다.


3️⃣ 산은첩첩 천봉이요 물은 잔잔 백곡이라

번역: Mountains are layered, peak upon peak. River is flowing, calm and deep.


세 번째 절은 '첩첩' '천봉' '백곡'처럼 함축된 의미가 담긴 여러 단어가 등장한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어렵다).

첩첩: Multiple layers
천봉: Many mountains


'여러 겹'이라는 뜻의 '첩첩'은 고속도로를 쭉 내려가다 보면 보이는 여러 겹의 산들이 생각나는 단어. '첩첩산중에 길을 잃다'와 같은 예시와 함께 설명하면 좋겠다.


천봉을 직역하면 천 개의 산, 또는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옛날 사람들에게 '천'이라는 숫자가 주는 크기를 생각해 보면 '여러', '많은' 봉우리라고 설명하면 좋을 것 같다. 이때, '열의 열 사십소서'가 백 살을 뜻하는 것처럼 백을 넘어 천 개의 봉우리를 생각할 때 '천봉'이라는 단어가 가져올 감정적 크기를 함께 생각해 보자.


잔잔: '잔잔-하다'(adj); being calm (e.g., water or wind), quiet, and peaceful atmosphere
백곡: all kinds of grains


'백곡'은 'all kinds of grains', '모든 종류의 곡식'이라는 뜻으로 사실 물이 잔잔하다는 것과는 매칭이 잘 되지 않아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 '모든 골짜기의 물이 모이는 곳;바다'라는 뜻을 가진 '백곡 왕(百谷王)'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다.


백곡왕: the place where the water from every valley gather together


백곡보다는 백곡왕인데 '왕'이 탈락된 것이 더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조상님께 시적 허용을 허용하자)


4️⃣ 어제 청춘 오늘 백발 가는 세월을 어이하리

번역: The youth is gone, now I got old. Who can stop the time flying by?


"어제 청춘이 오늘 백발이라"는 말은 우리가 세월이 빠름을 이야기할 때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이 문장이 흔히 사용되는 '관용구'라는 점에서 한국어의 특징까지도 알려줄 수 있는 좋은 절이다.


"어제 청춘이 오늘 백발이라" : a famous idiom used by many Koreans. It essentially means that 'time flies'.

예시: "Yesterday, I was young. But today, I got white & gray hair (=I'm old). We cannot do anything about the time that pass."


5️⃣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리고 갈 길을 왜 왔던고.

번역: Why did you come? Oh, why did you come? Did you come to just see my cry?


번역하는 과정에서 정말 머리를 탁 쳤던 가사이다. 첫 번째 버전은 남편을 보내는 아내의 입장에서 '나를 이렇게 울리고 갈 거였으면 왜 왔냐'라고 이야기하는 다소 일반적인 해석.


직역: (From the perspective of seeing someone goes away) If he's gonna make me cry like this, why did he come. he shouldn't have come.
남아있는 자의 관점에서 - 나를 이렇게 울게 만들 거면, 도대체 왜 왔어! (책망하는 느낌)


하지만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본 가사를 남자 가창자가 가창할 경우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마치, "내가 왜 왔던가, 저렇게 우는 것을 보러 왔던가." 하고 읊조리는 것을 말이다.


Ver 1: Why did he come, why did he come, did he come to make me cry.
(떠나는 남편을 보며) 왜 왔던고, 왜 왔던고, 날 이렇게 울게 하려고 왔나.
Ver 2: Why did I come, why did I come, all the way to make her cry not smile. or "Did I come to see her cry?")
(아내를 두고 길을 떠나며)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아내의 우는 얼굴 보자고 그 먼 길을 돌아왔나.


4. <늴리리야>에 담긴 2030의 청춘 - N포 세대와 번아웃

1930년과 2026년 사이, 100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의 공백을 메우는 것은 결국 '부재(不在)'에 대한 간절함이다. 과거 조선시대였다면 과거시험을 보고 규장각 각신을 꿈꾸며 살았을 당시의 지식인들은, 일본 유학 후에도 그럴싸한 직장을 잡지 못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모던보이가 되었을 것이다. 펜과 총을 들고 독립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은 쥐어질 듯 쥐어지지 않는 조국의 광복을 그저 망연자실하게 기다렸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늴리리야>는 허망함과 허무함만이 남은 모던보이와 모던걸들이 모든 것을 놓아버린 채 해탈한 심정으로 읊조리던 나름대로의 포기 선언이자 '번아웃'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1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청사초롱을 밝히며 기다렸던 '님'은 때로는 연인이었고, 때로는 남편이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빼앗긴 '조국' 그 자체였다. 그들은 광복과 독립이라는 분명한 형체의 '님'을 향해 일구월심의 마음을 바쳤다. 그렇다면 2026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님'은 과연 누구일까?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또 잃어버린 것은, 100년 전보다 훨씬 더 모호하고 불투명한 '미래'일지도 모른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업시장에 뛰어든 2016년의 나는 약 200만 원의 월급을 받았다. 그것도 유학 경험 덕분에 100만 원대 중후반이었던 업계 평균보다 1-20만 원을 더 받을 수 있었다. 약 2400만 원의 초봉은 나 자신보다 엄마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던 것 같다. 딸이 풍족하게 살기만을 바라고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는데, 정작 자식의 손에 쥐어진 것은 한 학기 학비의 절반 수준인 2400만 원이었으니 말이다.


시간이 흘러 두 번째 석사 과정이었던 MBA를 마치고 다시 세상에 나왔을 때는 어땠었나. '유학파 우대', 'MBA 우대', '해외 영업 경험자 우대', '2년 이상의 경력 우대', 각종 우대사항에 해당되는 내게 제시된 연봉은 2700만 원이었다. 5년 이상의 경력과 두 개의 석사 학위를 가지고, 평균 이상의 비즈니스 영어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는 직원이 주 5일, 포괄임금제로 일해주길 바라지만, 줄 수 있는 연봉은 한정되어 있는 현실 (혹은 마음). 구천 만원을 들여 겨우 겨우 따 낸 내 빛나는 졸업장 두 개가 갑자기 썩은 빛으로 보였다.


https://youtu.be/4osogSFa7hA?si=mjWHoODFSHKLzER_

회계사, 개발자가 설 곳을 잃고, 5년차 변호사의 자리를 위협하는 AI.


그렇게 2025년, 대 AI시대에 다시 취업 시장으로 던져진 자발적 퇴사자인 내가 마주한 세상은, 그 어떤 시대보다 흐릿한 '님'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10년 전보다 물가는 2배 넘게 오른 것만 같은데 여전히 채용공고 속의 연봉은 3천만 원이 채 되지 않는다. 기업들의 '경력자 우대' 경향으로 인해 기존에 '경력직'이었던 3년 차도 '신입' 포지션에 '중고신입'으로 지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사진만 던져주면 상세페이지를 뽑아준다는 '나노 바나나 프로'나 '챗 지피티'는 또 어떤가. 원래였다면 '신입'들이 했을 법한 일들을 몇 초, 몇 분의 시간 안에 처리해 주는 AI덕분에 2030대의 '임'은 그 어느 시절보다 더 흐릿하기만 하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집값과 성공이라는 이름의 '낭군'은 또 어떤가? 아무리 등불을 밝혀도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90년대생이 온다며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 어제만 같은데, 어느덧 94년생이 부장이 되고 00년생들이 왔다. 요즘 애들은 노력과 끈기가 부족하고, 틈만 나면 해외여행을 가고, 한 장에 8~9만 원짜리 티셔츠를 척척 사 입는 사치스러운 삶을 산다고 지적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아끼고 모아도 집이라는 '님'은 너무 멀고, 꽁꽁 얼어붙은 채용시장에 그저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불과 어제 대학을 졸업한 청춘이었던 우리가 멀리 있는 임을 잡지 못하고 백발이 되어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흥겨운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현실도피를 하는 것뿐이라는 차가운 현실 말이다.



outro: 우리 모두는 각자의 늴리리야를 부른다

가사의 마지막은 결국 묻는다. '왜 왔던고, 왜 왔던고. 울리고 갈 길을 왜 왔던고.'


1930년대의 모던보이도, 2026년의 우리도 이 질문 앞에 서면 자꾸만 목이 멘다. 기대했던 미래는 오지 않고, 세월만 야속하게 흐르고, 그 사이에 선 청춘은 수없이 '현타'를 맞으며 울고 또 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노래의 마침표는 눈물이 아니라 다시 시작되는 <늴리리야>의 경쾌한 후렴구다. 아무리 슬픈 가사를 불러도, 결국 노래는 후렴을 한 번 반복하고서야 끝이 난다.


11살의 나는 몰랐지만, 이제 30대가 된 나는 안다. 희망이 없어도 춤을 춰야만 하는 날이 있다는 것을. 슬픔을 억누르려 토해내는 '니나노'가 때로는 가장 치열한 생존의 외침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기억하자. 텅 빈 통장과 불투명한 내일 앞에서 홀로 '늴리리'를 웅얼거리고 있는 당신은 결코 혼자가 아니다. 100년 전 한성권번의 여가수도, 라디오 앞의 이름 모를 노동자도, 그리고 2026년의 나도 각자의 방에서 똑같은 피리 소리를 내며 버티고 있다. 우리는 이대로 그만두지 않을 것이다. 울면서도 다시 신발 끈을 묶고, '니나노' 비트에 맞춰 다시 한번 세상 속으로 달려 나갈 것이다. 우리의 '늴리리야'는 끝이 아니라, 내일을 견디기 위한 가장 힙한 에너지가 될 테니까.



부록: 내 안의 창작혼을 불태워 볼 차례!

11살 때 사람들 앞에서 내가 만든 몇 줄의 가사를 공개한다!


한양 서울 좋다는데 내가 한번 가보리다
하나뿐인 우리 지구 내 아니면 뉘 지키리


한국어와 영어로, 그 어느 언어로라도 자기 안의 창작혼을 불태워 작사가가 되어 볼 생각이 있는가? 직접 만든 가사를 댓글로 남겨 준다면,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나의 마음이 더 풍족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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