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벌써 여유로워지고 싶음 어떡해?
지난 한 주, 겨울 휴가 기간을 이용하여 제주에 내려갔다. 석사학위논문에 필요한 설문자료를 얻기 위한, 어디 로보나 일과 학업의 연장선이었던 일주일이었지만 비행기를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까지 이어지는 학원 일, 퇴근 후 대학원과 학위논문의 무게에 시달리기를 2년. 석사 4학기였던 지난가을 학기, 논문 예심 준비를 하면서 한 과목 청강까지, 무려 4과목을 들었던 터라 지쳐있던 나에겐 매일 반복되던 일상에서 벗어날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위안이 되었다.
12월 31일부터 1월 5일. 신정연휴인 1월 1일이 끼어 있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 돈 들여 내려갔는데 결국 아무도 만날 수 없을 테니까 - 그래도 연말연시를 타지에서, 그것도 해넘이와 해돋이로 유명한 성산일출봉이 있는 제주도에서 보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인터뷰 자료보다도 앞서, 아껴두었던 필름 여러 롤을 챙기면서, 신정연휴를 어떻게 보내야 잘 보냈다고 소문이 날까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6년간의 유학시절, 부모님과 떨어져 혼자 머나먼 타지에서 보내던 1월 1일이 그리도 싫었는데, 그때의 고요함과 조용함이 퍽 그립기도 하였다.
12월 31일 새벽, 웅웅 울리는 진동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잠에 한껏 취한 정신으로 더듬거리며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6시 20분. 이번 조사 기간 동안 신세를 질 전 동네 이웃, 현 제주도민인 친구가 돌아가는 비행기 시간이 비슷해, 친구 아버지께서 함께 공항으로 데려다 주시기로 했었던 것과, 픽업 시간이 6시 30분이었던 것, 아직 다 넣지 못한 짐과 씻기는커녕 잠옷바람으로 비몽사몽인 나 자신이 차례로 떠올랐다. 곧 출발한다는 카톡에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네 집에서 우리 집은 걸어서 10분. 차로는 채 2분이 되지 않는 짧은 거리였다.
"엄마아아아아아ㅏ!!!"
아직 단잠에 빠져있는 엄마를 부랴부랴 깨워 반찬류를 트렁크에 채워 넣고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뒤 옷 안에 몸을 구겨 넣었다.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부터 공항을 찾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화장할 여유조차 사치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자위하며 대문 밖을 나섰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아직 모르겠지만, 인생 첫 번째 현지조사가 내 발 앞에 있었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그것도 나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것이 겁났지만, 이제 와서 무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딸과 친구를 위해 한 해의 마지막 날 아침에 기꺼이 공항으로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고마운 아버님께 인사를 드리며 차에 몸을 실었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다.
제주로 가는 비행시간은 유난히도 짧았다. 중국 유학시절 밥먹듯이 왔다 갔다 했던 대련보다도 훨씬 짧은 것 같았다 (실제로 짧다). 눈을 감았다가 떼니, 엉덩이를 붙였다 떼니 제주에 도착해 있었다. 환승, 대기시간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던 미국, 13시간 정도의 마드리드, 그리고 8시간 정도 걸렸던 하와이와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속도였다 (당연하다). 다른 비행기로 약 15분 정도 늦게 도착한 친구를 기다리다, 또 차를 가지러 간다고 짐을 맡기러 간 사이 핸드폰으로 폭풍 촬영도 했다. 내가 왔노라고 인스타그램에 흔적을 남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건 비행기 타고 가면 여행이라는 직장동료의 말이 생각나 혼자 미친 사람처럼 쿡쿡 웃기도 했다.
제주에서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친구와 브런치를 먹는 것이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사람들을 만나 설문조사를 해야 하나 마음은 무거웠지만, 아침도 먹지 못해 텅 빈 배는 하염없이 가벼웠다. 렌터카를 픽업하고 바로 애월읍에 있는 한 카페로 들어갔다. 훌륭한 경치와 토마토 스튜, 떡갈비, 그리고 맛없는 커피. 그것이 2018년 마시는 나의 마지막 커피였고, 제주에서 느끼는 첫맛이었다.
"아참, 우리 내일 해돋이 못 본대."
"왓? 그게 무슨 소리야?"
"전라도 땅끝마을이랑 제주만 구름이 많이 껴서 해넘이랑 해돋이 둘 다 못 본대."
세상에. 며칠 전부터 학수고대하던 새해 첫 해돋이에 대한 환상도 와장창 깨진 순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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댕댕댕 보신각 종이 울리자 핸드폰에 고정되어있던 우리의 시선이 드디어 티브이 화면으로 옮겨갔다. 훈련하고 연구한다고 드라마도 안 보고 가수들도 모르는 둘이었기 때문에, 제야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틀어 놓은 것일 뿐이었다. 각자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고 12시를 기점으로 울리기 시작하는 핸드폰을 보면서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아 스물다섯. 결코 많지는 않지만 부정할 수도 없게 이십 대의 중반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오늘만은 함께 자자며 거실에다 이불을 펴면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스물다섯의 나는 뭔가 더 나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아직도 스무 살, 열여섯의 나와 별다른 바 없이 나이만 먹었구나 싶었다. 올해는 또 얼마나 바쁘고, 또 얼마나 일에 치여 살까 잠깐 생각하다가 이내 마음을 고쳐먹었다. 황금돼지의 해니까. 그리고 찬란한 20대를 살고 있으니까 무엇이든지 다 해낼 수 있다고 다시 굳게 마음을 먹으면서.
아직 어리니까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새해의 다짐은 겨우 일주일도 가지 않아 해변의 모래와 같이 잘게 부서져버렸다.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거절의 문. 대학이며 취업이며 이제까지 큰 어려움 없이 성취해온 과거의 나를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학생 신분의 나를 거들떠도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 좌절했다. 학생이냐 물어보고 학생이면 설문에도 대답해주기는 커녕 만나주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좌절했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논문을 완성해서 이미 석사를 졸업하고도 남을 시기인 여름휴가 때가 되어야 이렇게 제주를 내려올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좌절했다 (그렇다, 직장인인 나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였다). 몇몇 좋은 분들을 만나 의견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다시 육지로 돌아오기 전날 저녁, 친구와 저녁을 함께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엄마에게 손을 뻗지 않으려고 했는데, 엄마의 도움으로 겨우 전화 인터뷰를 하게 되면서 비로소 입맛이 돌아올 참이었다. 이번 논문이 끝나면, 이 주제로는 다시도 연구 같은 것 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밥도 굶고 다니면서 서귀포로, 월정리로. 좁은 제주를 800km 넘게 다니면서 정작 아무런 소득도 없었다는 것이 한심했다. 그냥 오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미 매달 월급의 반이 학비로 들어가고 있는데, 그 이상의 돈을 쏟아붓고 온 조사였다. 직장에 속해 일하는 것도 신물이 났고, 이렇게 초조하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여름이 오기 전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먹은 것도 짜증 났다. 마지막 날인 내일은 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리라, 하루라도 꼭 늦잠을 자리라 다짐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XX책방 꼭 가봐!"
마지막 날 오후, 훈련한다고 바쁠 텐데도 제주에 머무는 동안 매일 내가 점심을 먹었는지, 하루를 잘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던 친구가 추천한 작은 독립서점으로 향했다. 한림읍의 돌담 사이에 있는 작고 아기자기한 책방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위치를 찾지 못해 짜증 났었는데, 연두색의 대문을 통과하자마자 보이는 작은 마당과 소박한 분위기에 가슴까지 따뜻해졌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책이 가득한 제주식 구옥이라니. 거기다 나를 반겨주는 작은 강아지까지도 너무 반가웠다.
"엄마, 나 제주 와서 살아야겠어."
제주에 와서 작은 책방을 열고, 영어를 가르치리라. 일하지 않는 시간엔 대학원을 다니며 계속해서 연구하리라. 학교는 서울에 있고, 인천에서 일을 하고 있음을 완벽히 무시한 계산이었다. 수많은 독립서점이 문을 닫고 있고, 어지간히 팔아서는 하루 수입도 보장하기 어렵다는 것, 나조차도 서점 갈 시간이 없어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하는 것을 깨끗하게 무시한 단순 무식한 생각이었다. 책방에 발을 들이던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 차오른 평안과 따뜻함, 그리고 나를 반겨주던 작은 강아지와 서점 한편에 '주인장 책장'이 좋았다. 작은 구옥을 새로 인테리어 해서 꾸미고, 손님이 없을 땐 얼마든지 책을 읽고, 연구에 매진하리라, 세상 물정 모르는 소리를 또 뱉어냈다. 아무렴 어떤가.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치열하게 독기를 품고 살지 않아도 되고, 퇴근시간 통학 지옥을 겪지 않아도 되지 않으니, 좋지 아니한가?
독립서점을 통해 잠자고 밥 먹기도 어려운 삶 속에서 여유를 꿈꿔본다.
결국 내가 선택한 바쁜 삶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