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달 동안엔 병원 가려고 출근했다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날들이었다. 회사 근처에 좋은 선생님들이 계셔서 정말 다행이야. 나는 수연을 만나고 나서 한의원에 대한 마음의 벽이 많이 낮아졌다. 한방은 예민하고 잔병치레가 잦은 내게 잘 맞는 방식인 것 같다.
얼만큼 시간이 지나면 지나간 시간들에 대해 힘들었어도 다 좋은 시간이었다고 회상하게 될까? 어쩌면 그런 기억들이 있어서 또 앞으로 한걸음 내딛을 수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날은 내가 상상했던 결말 중에 가장 최악이었다. 내가 그렇게 나빴던 걸까. 수연의 반응에 나는 어딘가 얻어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나면 영혼만 투명해져서 부유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한 일주일 기절한 사람처럼.
그렇게 둥둥 떠다니던 나를 페마가 와락 안아서 땅에 내려줬다. 작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건 무척 특별한 일이었다. 가까이 친구의 아기를 지켜보면서 나는 아이를 마주할 때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이 차츰 잦아드는 걸 발견했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기도 한다. 아이 앞에 섰을 때 내게 가장 크게 느껴지는 두려움은 그것이었던 것 같다. 지워낼 수 없는 기억이 된다면 나는 스스로를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작은 사람들은 두려움보다 재빨리 앞질러 사랑하는 존재들이었네. 어쩔 줄 몰라 얼어버린 나를 한순간에 볕으로 데려가는 존재. 역시 아이를 양육하겠다는 결심을 하는 건 오롯이 부모의 욕심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그런 존재에게 무엇을 바라게 되는 건 분명 옳지 않은 일이겠지.
한편으론 파도에 서서히 질식해가는 서래의 마음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서래가 생존하는 방식은 포기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기어코 참아버리는 것이었을 테니까. 산에서 서래가 박박 닦아 보여준 사랑을 해준은 알아보지 못했다. 물안개가 자욱한 바다에서 그 눅눅함에 온통 젖어버리고 마는 건 서래가 견뎌온 시간의 밀도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침내 그렇게.
더는 그러지 않고 싶다. 그러려면 내겐 더 많은 안정감이 필요하다.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면 그때는 새로운 삶의 방식, 어떤 가족의 모습 같은 것들을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기억이 머물고 있는 장소들을 더듬어 보고 싶다. 평안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