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re are you from 에 대한 대답
외국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말문 연답시고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물으면
아무 생각 없이 “코리아!” 라고 대답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꼭 노스 냐고 사우스냐고 이어지던 질문.
진짜 모르는 건가 해서 충격을 받고 친절하게 사우스라고 가르쳐주기도 했었고,
놀리는 건가 싶어 진지하게 물어보는 거냐고 되묻기도 했었고,
노스코리아라고, 김정은 밑에서 탈출했다라고 조크를 하기도 했다.
“where are you from?” 이라고 묻는 것이, 당연히 나를 외국인, 이민자, 이방인으로 가정하고 묻는 질문인 것 같아 예민해질 때쯤은 그냥
“I’m from here”. 이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머나먼 이국의 나라를 가정하고 묻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르는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조금 통쾌하기도 했다. 그들의 기대치에 반하는 대답, 혹은 기대에 미치지 않는 대답을 주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선긋기였다. 함부로 나에 대해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무의식속의 차별과 상처에 나는 한껏 예민했고, 날이 서 있었다.
Where are you from? Why? Why are you asking? Are you already assuming I’m not from here? Because I don’t look like you?
한때는 내가 1.5세라면, 2세라면 얼마나 좋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진실로 I’m from here 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지만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에서 자랐다.
내가 아무리 너와 같은 여기 사람이라 외쳐도, 나의 액샌트에서 코리안을 지울 수는 없다. 미묘한 문화적 코드들을 나도 자연스레 알고 싶다. 자꾸만 ‘우리’와 ‘너희’를 나누는 그들의 기준을 통과해, 정말로 ‘우리’에 속할 수 있도록.
하지만 이민 1.5세대나 2세들 또한 ‘우리’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을 보았다. 결국 차별적인 문화, 인식이 문제인 것이지 내가 현지인이 된다고 해서 -그 나라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모국어로서 그 나라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라도- 아마도 나는 영원히 Where you from 의 늪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어디서 왔는지 궁금하지도 않고 물어볼 필요도 없는, ‘그들’의 일원이,
나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이다.
시간은 흘렀고, 5개의 국가에서 물 흐르듯이 살아온 삶을 지나,
나는 이제 “where are you from?” 에 그냥 웃으며 “South Korea” 라고 답한다.
나의 악센트에는 내가 그간 살아온 나라들의 흔적들이 옅게 남아있고, 나는 이방인, 여행자, 방문객으로 여겨지는 것에 대해 더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이제 내가 South Korea 라고 대답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이방인과 대화하고 싶다는 기대를 가득 안고 물어본 거라면, 그러면 행복하게 그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거다. I’m from here. 은 너무 지루하니까.
만약 나를 어설픈 여행객이나 멋모르는 이방인, 이민자라고 생각해 얕잡아본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다. 그들의 잘못이다.
그렇게 생각하라지. 그들이 뭐라고 생각하든 나와는 상관 없다. 나는 그저 그들의 질문을 순수한 호기심으로 받아들이고 친절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일 뿐이다. 나와 더 이야기를 해본다면 아마도 내가 그들의 생각보다 외국에 오래 살았으며, 언어도 유창하게 구사하고, 흥미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South Korean 이라는 대답으로만 나를 판단한다면, 그러면 그러라지 뭐. 편협한 사고 방식으로 살아가는 듯한 사람들은 그냥 안타까울 뿐이다. 미워하고 비난할 에너지 소비조차 아깝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나는 종종 where you from 이라는 질문을 받는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도, 해외에서도 ‘여기 사람이 아닌 것만 같은’ 느낌을 주는 걸까.
어딜 가든 그 겉도는 듯한 느낌이 싫어서, 최선을 다해 어딜 가든 거기에 동화되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되려 노력한다. 자연스럽게 더 편안해지고, 당당해진다. 굳이 날을 세울 필요도 없이,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인, 이방인이 되어버린 나를 받아들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