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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Jul 09. 2020

이번에도, 또 못가는 겁니까!

[유학, 3번째 도전하다] 그리고 실패?


대학을 졸업한지도 벌써 7년째. 나는 만 나이로도 30대가 되어버렸다.

학사 학위를 받을 때, 학교를 벗어나 우선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 진학을 뒤로 미뤘지만 마음 한켠에는 항상 언젠가 석사 학위를 받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다만 언제, 무슨 공부를 구체적으로 더 할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이 없었을 뿐. 일년, 이년 시간이 지나면서 드디어 나의 대학원 진학 계획이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고,  한번의 퇴사와 어학연수, 재취업 후 본격적인 나의 첫번째 대학원 도전을 준비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첫 도전은 보기좋게 실패했다. 

첫번째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은 그때까지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몰랐다는 것이다. 

먼저 공부하고자 하는 과목조차 너무나 광범위했다.

계속 학부 때 주제를 이어서 공부해야 할까. 아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게 맞는 건지도 몰라.

하고 싶은 공부? 하고 싶은 공부가 뭔데. 데이터 사이언스? 브랜딩? 관광? 심리?아니 아예 통번역 대학원을 준비하는 건 어때?


심지어 한국에서 공부를 하고싶은지 유학을 가고 싶은지조차 모르겠다. 

한국에서 한다면 어느 학교? 무슨 전공? 유학을 간다면 어느 국가? 

지금 머무르는 중국? 중국이 얼마나 큰데. 베이징? 상하이? 홍콩? 

아냐, 그래도 영어권이 나은가?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학비가 너무 비싼것 같은데.

그럼 유럽쪽은 어때? 장학금이라도 받을 수 있을까? 



브레인 스토밍 및 자료 검색만 1년 동안(!) 했다. 그때 준비한 엑셀 자료는 나의 그 당시 심정을 대변하듯 지금 봐도  혼란스럽다. 그렇게 고민을 치열하게 했긴 했는데, 막상 지원을 하려니까 각 학교, 전공마다 필요한 추가 서류들이 (당연하게도) 있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공인 영어 시험 점수(IELTS 등), 그 외 대학원에서 요구하는 시험점수(GRE 등), 자기 소개서(SOP 등), 교수님 추천서 등등이 있는데 이걸 준비 하는게 또 장난이 아니었다. 해외에 거주하는 상황에서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서 몇년만에 얼굴도 가물가물한 교수님께 찾아가 추천서를 두장이나(!) 받아야 했고, 각종 서류 떼고, 거금을 들여 영어 시험도 다시 준비해서 봐야했다. 거기다 지원서, 자기 소개서 쓴다는 것이 취준 생활을 해 본 사람이라면 다들 공감하겠지만 말처럼 쉬운게 아니다. 하루에 하나씩 뚝딱 써지는 것도 아니라고. 학교와 학과의 특성을 파악해서 나를 어필해야 하는데 한글로 쓰는건 그나마 다행이지, 영어로 쓰려니 머리는 더 뽀개진다. 결국 나의 첫번째 도전은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끝은 아주 미약하게, 방대한 자료들 중 3개 학교를 겨우 지원해서 3개 다 떨어지는 걸로 끝났다. 




첫번째 도전이 실패로 끝난 후 절치 부심해서, 꼭 가고 싶은 학교만 추려내 3개 정도를 집중 공략하는 형식으로 한번 더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 확실히 한국 대학원이 아닌 해외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었고, 유학과 장학금을 위해서는 공인 영어 점수를 좀 더 올리는 것이 유리할 것 이라는 판단도 내렸다. 자소서도 더 정성을 기울여서 준비하고 말이다. 두번째 도전을 위해 겸사겸사 상하이 생활을 때려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 동생집에 얹혀 살면서 영어 학원을 한달간 다니고 시험을 두번이나 봤다. 영어 시험에 100만원은 더 투자했을 것이다. 얼굴에 철판깔고 주스 사 들고 또 다시 뻔뻔하게 교수님들께 찾아갔고, 자소서도 낑낑거리며 썼다. 그렇게 지원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뉴질랜드 워홀을 떠났다. 결과에 따라 뉴질랜드 워홀 이후 생활이 결정될 것이다.


모든 것은 마무리 되었다, 하고 한국을 떴는데, 나의 공인 영어 점수가 지원 자격에 조금 못 미친다는 것을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통지 받았다. 이런 젠장! 이번 도전은 이렇게 포기할까 생각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투자한 금액과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도박을 해 보기로 했다. 영어 시험을 마지막으로 한번만 더 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도 당장 시험을 봐야 하는 형국이라 내가 준비했던 토플 시험이 아닌 난생 처음 보는 아이엘츠 시험을 신청 했고, 그때가 뉴질랜드에서 막 취직한 시기였는데, 간신히 사정해 휴가까지 냈다. 심지어 시험보는 타 도시(더니든)까지 이틀 걸려서 버스 타고 갔다. 더니든 대학 앞 서점에서 아이엘츠 책을 처음으로 보고 시험을 쳤는데 오후에 면접관과 말하기 시험을 보기 전 혼자 샌드위치 먹으면서 현타가 왔다. 이 시험 보겠다고 또 다시 100만원 가까이 들었는데 (시험비, 교통비, 숙박비, 식비 등) 내가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는 거지.

 

다행히 시험을 보고 2주 만에 받은 결과는 합격(?) 이었다. 영어 성적 보고 진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났었다. 그렇게 난리를 피우면서 지원을 했고, 원하던 학교 중 1군데에서 입학 허가를 받았다. 

받긴 받았는데, 문제는 장학금이 똑 떨어졌고, 나의 세이빙도 똑 떨어졌다는 거다. 원래 계획은 뉴질랜드에서 학비를 모으는 거긴 했지만 차를 사서 교통사고가 나고 무지막지하게 비싼 치과 치료를 세번이나 받는 바람에 번 돈은 다 날아갔다. 그 전에 모은 돈도 정착비, 여행비용으로 써서 남은 돈으로는 택도 없었다. 장학금이 절반이라도 되길 기대했는데 말 그대로 기대일 뿐이었고, 집에서는 부모님이 무슨 사업인가 시작했다고 돈을 빌려주긴 커녕 대출 받아 드려야 할 상황이었다. 허가 받은 학교가 런던에 있는 학교다 보니 학비와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나는 두번째 대학원 진학 실패를 인정해야 했다. 내가 현실을 너무 만만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또 일년, 이년이 흘렀고 나는 뉴질랜드에서 호주로 갔고, 세번째로 또다시 대학원 도전을 결심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재취업하고 절치부심해서 유학을 준비했다. 학원 다니면서 영어 공부 하고, 이번에는 현실적으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학교를 지원했다. 이 학교에서는 특이하게 나의 영어 논문을 내라고 해서 학부 영어 논문이 없는 나는 영어 논문도 써야 했는데 이 논문 쓰는 과정도 정말 눈물겨웠다. 써 본적이 없는데 어떻게 써? 책과, 인터넷과, 원어민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장장 6개월에 걸쳐 논문 한편을 완성했다. 어찌됐든 그렇게 지원한 네덜란드 대학원에서 드디어 올해 입학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아무리 대학원 입학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유학 이후 취직이라도 될 수 있을지, 들뜬 마음과 동시에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래도 내가 그렇게 간절히 바랐던 길이니 최대한 열심히 해보자, 라고 다짐하며 짐을 쌌다. 그런데 이번에는 전대미문의 코로나 사태가 발생했다. 들려오는 이야기는 유럽에서 죽어 나간다는 이야기, 인종차별 당한다는 이야기. 심지어 학교로 서류 보내야 하는데 우체국 EMS 서비스는 네덜란드가 발송 금지 국가라고 받아주지도 않는다. 결국 7월에 학교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는 통보를 받았고 나는 고심 끝에 한국에 남아서 수업을 듣기로 했다.  



입학 허가까지 받았건만, 또다시 '정상적인' 유학 실패다. 나는 온라인 학습이나 하기 위해 이렇게 노력한게 아니었다. 대체 왜, 언제까지 나는 이놈의 실패펀치를 맞아야 하는 것일까! 나는 최선을 다해서 원하고자 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최선을 다해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벗어나 일이 계획한 대로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때 우리는 실패했다고 말하고 좌절한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내가 바라던 유학생활을 지금까지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게 실패다, 라고 생각하면 맞다. 나는 계속 도전했고 계속 실패했다. 지금도 무력감, 허탈감, 억울함을 느끼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정으로 실패했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해본적이 없다. 

실패가 아니라, 때가 아닐 뿐이다!



내가 했던 모든 도전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명확한 결론으로 끝이 나지 않았다. 모든 도전의 끝은 항상 또 다른 길로 이어졌다. 수능에 성공했나 싶었는데 정작 입시에 실패했고, 그러다 대학 입학할 때는 그래도 이만하면 성공이다 싶었는데 대학 졸업할 때는 학부 생활이 실패라고 느껴졌었다. 하지만 진짜 실패였다면 취업난에 입사조차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취직이라는 도전에 성공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결국 퇴사로 끝났고,  퇴사해서 패배자가 될 줄 알았더니 외국에서 또 취직했다.



이 길이 끝인가,해서 옆을 보면 항상 그 옆에는 또 다른 수 갈래의 길이 있었다. 내가 원래 생각했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것을 실패라고 할 수 있을까?  반대로 내가 생각했던 길로 장애물 없이 쭉 간다고 해서 그것을 성공이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처음부터 다른 도움을 받아(부모님과 유학원의 도움을 받아) 간단하게 유학을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입장이었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몇년동안 대학원을 준비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4개국에서 5번의 다른 직업을 경험하면서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공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그 공부를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다듬어 나갈 수 있었다. 

내가 대학원 진학을 하지 못하고 돌아간 길에서 오히려 엄청나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른 삶을 보았고, 수많은 새로운 것을 배우고, 느낄 수 있었다. 4년 전 입학 원서를 쓰기 위해 무슨 말을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했던 나는 그동안 내가 공부하고 싶은 연구 주제를 뚜렷이 찾아 논문 초안까지 제출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나는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실패한 것일까?




아니, 사실 그런 평가조차 아직은 너무 이르다. 나의 도전은 아직도 진행 중인데 어떻게 성공인지 실패인지 평가 할 수 있단 말인가. 수많은 좌절과 또 수많은 성취 속에서 단 한가지 확실하게 배운 것은, 계속되는 실패도, 영원한 성공도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인데, 어떤 사람은 실패라고 하고 다른 사람은 성공이라고 한다. 이 순간에서 보면 실패인데, 저 시기에서 보면 성공이다. 어쩌면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한국에서 한학기 온라인 수업을 듣게 된 것이 유학 실패가 아니라 학비를 아끼고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나에게 두번 다시 오지 않은 성공적인 기회인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대학원 유학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에 대하여 논하는 글은 아마도 먼 훗날 다 늙은 노인이 되어서야 당당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 때가서 '대학원, 성공적' 이라고 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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