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8월 셋째주]
안 가면 안돼?
꼭 가야만 하는 거야?
가서 뭐가 있다고 그래?
그 다음엔 어쩔건데?
맨 처음 이런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는 처음 퇴사한다고 말했을 때였다.
그 누구보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듣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하지만 모두들 나에게 똑같이 질문만 했을 뿐 아무도 답을 주지 못했다.
현실적인 조언들은 비수처럼 꽃혔고,
용기를 주는 말들은 공허한 빈 말처럼 들렸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내 편이 아닌 것 같아서,
내게 믿음과 확신을 줄 수 있는 멘토를 간절하게 바랬다.
어학연수와 3번의 해외 취업을 거쳐,
인도와 중국과 뉴질랜드와 호주를 거쳐,
자취 생활과, 하우스 셰어와, 부모님과 사는 시간을 거쳐,
홀로 여행과, 함께 여행과, 코로나 시국을 거쳐,
지금 다시 짐을 싸는 지금, 같은 질문을 받는다.
안 가면 안돼?
꼭 가야만 하는 거야?
가서 뭐가 있다고 그래?
그 다음엔 어쩔건데?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고,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을 믿어 주고 확신을 줄 수 있는 멘토는 바로 나라는 걸.
문제는 항상 이것이다.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묻든 답해주든, 그걸 모두 떠나서,
'나'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나'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나'는 꼭 가야 한다고 생각해?
'나'는 가서 실패한다 해도 갈거야?
'나'는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해도,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다고 믿어?
leap of faith.
날개가 있다고 믿고 절벽에서 뛰어내려라.
어떻게 알아 내가 날개가 있는지 없는지?
그건 아무도 몰라.
하지만 나는 있다고 믿는가?
나 자신을 얼마나 믿는가에 대한 문제는
마음 깊은 곳의 자신감, 자존감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이것 저것 재고 따지지 말고,
그냥 하고 싶으면 해.
이십대가 지나고 삼십대로 들어서면서
이제는 더이상 '그냥' 마음대로 할 나이는 지났다고 한다.
이제 챙겨야 할 사람들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생기니까.
더이상 내 멋대로 살 수 없으니까.
그것이 '정착'한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남들이 다 그때쯤 정착한다고 해서 나도 그때쯤 정착해야 한다는 법이 있나.
나도 정착할 때가 오면 정착하겠지.
굳이 초조해 하면서, 영영 정착하지 못할까봐 불안해 하면서
섣불리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하면서 멈추어 서고 싶진 않다.
그래서 나는 계획에 차질이 자꾸만 생겨도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보기로 했다.
코로나 시국에 텅 빈 공항철도 안에서 검은 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니
존버가 승리한다는 말이 맞다, 실감한다.
내가 10년전부터 지니고 있던 작은 불씨.
토플 시험 리스닝 파트를 들으며 언제나 상상하던 나의 유학생활.
언젠간 강의실에서 이런 수업을 들을 것이고,
나는 이렇게 교수님이 강조하는 단어를 받아 적을 것이고,
학생들이 질문하는 것처럼 나도 손들고 영어로 질문을 할 것이라는 상상.
누군가는 참으로 쉽게 얻을 수도 있는 그 기회를,
나는 이 기회를 얻기 위해 얼마나 오래 버텨야 했던가.
그 불씨를 죽어도 꺼뜨리지 않고 끝까지 가지고
계속 불을 피우려고 난리 법석을 치니까
뭔가 되긴 되는구나.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심지어 공항철도를 타기 전까지도 얼마나 포기를 고민했던가.
심지어 이번에도 토요일까지 출근하고 월요일에 출국했다.
돈 한푼이라도 더 벌려고.
다행히 개강직전까지 버틴 덕에 운좋게 잔여 백신까지 접종했다.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말했었지.
넌 너무 감정적이라고.
너무 너의 '느낌'을 따른다고.
너무 비이성적이라고.
나의 '비이성적'인 결정들이
나의 인생을 불타오르게 만들어준다.
그 어느때보다 적막한 인천공항에서 또다시 나는 베팅한다.
특히 이 시국에 유럽에 가서 코로나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인종차별 당할지도 모르는데,
락다운 걸려서 유학 가봤자 학교도 못나가고 혼자 집에만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올인할 것인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어쩔 수 없다.
그냥 가야지.
가자.
서른 둘, 나 홀로 유학,
가자.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