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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raSue Nov 17. 2021

언니일 필요가 없는 사회

[2021. 10월 첫째주]


온라인 수업이 본격적으로 오프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드디어 같은 석사과정을 밟는 동기들과 거의 매일 만나게 되었다. 

대개 유럽은 university 학사 과정이 3년이라, 

학사 칼 졸업 후 바로 석사로 넘어온다면 만 22살에 석사를 시작할 수 있다. 

그 말은 곧, 나와 함께 공부하는 아이들의 절반 이상이 22살이라는 말이다. 

나이가 좀 많다, 싶은 애들은 만 25 정도고,  

거기에 30이 넘은 나같은 학생들이 있다. 

다행히도(?) 내가 제일 나이 많은 학생은 아니다!

나보다 나이 많은 동기가 둘이나 더 있다.

하지만 둘 다 마흔이 넘었기에 내 또래라고 하기엔, 또 좀 차이가 난다.



서양 문화권은 어차피 나이에 크게 연연하는 편이 아니라 친구를 사귀는데 큰 문제는 없다.

사실 나이 어린 친구들과 어울리고 친하게 지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그렇게 어색하진 않다. 

나도 어차피 나이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자유 분방한 오픈 마인드(라고 말하지만 한국식으로는 자칫 개념이 없어 보일 수 있다) 를 가진 사람이기에,

나이가 많은 사람이나 혹은 나이가 아주 어린 친구들과도 마음이 맞는다면 친한 친구가 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 특히나 해외 생활을 할 때 나이 차가 나는 친구들이 많은 편이다.


영어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존댓말도 딱히 없고, 호칭도 없고.

불어 같은 경우도 나이보다는 덜 친한 관계, 더 친한 관계 같은 관계를 중심으로 존댓말을 쓰기 때문에

오히려 처음부터 대놓고 나이를 물어보는 것이 필요도 없고 무례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괜히 나이 물어보기도 어색해서 몇살인지도 모르고 꽤 오래 친하게 지내기도 한다.



학교 친구들 말고는 하우스 친구 그룹이 있다. 

호수 공원에서 같이 살던 아일랜드 출신 Eva는 거의 단짝이 되었는데 이번 주에 런던으로 인턴십을 떠나게 되었다. 네덜란드랑 런던은 의외로 가까워서 꼭 다시 만나기로 하고 헤어졌다.


새로운 하우스메이트는 7명이다. 그 중 3명이 더치고 3명이 외국인이다. 

내 옆방에 사는 이만과 요아킴은 빅데이터를 전공하는 같은 틸벅 대학원생이고 둘다 카탈루냐 출신이다.(스페인이라고 하면 싫어한다.) 하지만 이만은 부모님이 이집트인이라 아랍어를 잘 하고, 요아킴은 런던, 벨기에에서 오래 살아서 카탈란이나 스페인어보다 영어와 네덜란드어를 모국어로 쓴다. 

이만은 스물 둘, 요아킴은 스물 다섯이지만 바로 옆 방이라

맨날 서로 들락날락 하다 보니 하우스 메이트 중에 셋이 제일 친한 편이다.

나머지 더치 하우스 메이트 중 두명- 클라우디아와 라헬-과 특별히 친한데,

둘다 28이고 현재 일하고 있어 그나마 나와 삶에서 비슷한 시기(결혼 전, 커리어를 추구하는 시기) 를 지나고 있어 공감대 형성이 그나마(?) 잘 되기 때문이다.



학교 동기들 사이에서도 더치들과 친하긴 하지만 

자연스럽게 외국인 학생 무리와 더 어울리는 편이다.

어딜 가나 현지인 그룹에 끼는 것은 쉽지 않다. 

대부분 이미 자신들의 친구 그룹이 있기 마련이고, 굳이 낯선 외국인을 초대하거나 끼워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엄청난 절친까지 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아마 내가 엄청 노력하면 끼워주긴 할텐데, 그렇게까지 하면서 친구 찾아 삼만리 하고 싶지도 않고,

반대로 적극적으로 끼워주려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건 정말 행운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도 이해가 가긴 한다. 

언어적 장벽도 있고, 이미 우리는 함께 있으면 편한 친구 모임인데, 거기에 굳이 낯선 이를 끼워 넣는 것은 모임의 모든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니까. 

하지만 상황이 바뀌어 본인이 어딘가에서 '타지인'이 되어 낯섦과 배타성을 겪어본 사람이라면

외부인을 보았을 때 챙겨주려는 성향이 확실히 더 보인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외로운 외국인 international 학생들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는 편이다.

심지어 우리가 공부하는 분야가 diverstiy and inclusion ( 문화적 다양성과 포용성) 인데도 배타성이 이 지경이니, 의식 수준이 더 낮은 그룹 안에서는 얼마나 더 두루두루 친해지기가 힘들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만이 아니라 스페인, 그리스, 터키, 독일 등 다른 나라에서 온 다른 외국인 학생들이 함께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든든하고, 사실 그게 더치들하고만 노는 것보다 훨씬 흥미롭기도 하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혼자인 것보다 함께 할 누군가가 있는 편이 훨씬 낫다.

(나도 20대 후반이 가면서야 인정하게 되었다.)




외국인으로서 타국에서 인간관계를 맺으면서 나이보다는 국적을 더 중요시하게 된다.

솔직히 같은 석사 레벨이니 열살 차이가 나도 지적 수준 차가 크게 난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내 입장에서는 애들이 유치하거나 어리다는 생각이 든 적도 별로 없고, 

내 스스로도 이 친구들이 나를 언니 대접(언니 대접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지만…)해 주길 바라지도 않고, 

내가 이 친구들을 나보다 훨씬 어린 풋내기(?) 들로 대하지도 않는다. 

그야말로 나이, 배경, 지위, 계급장 다 떼고 우리는 이 교실에서, 이 집에서 동등한 학생들, 동등한 세입자인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동등한 인간관계를 맺어 보면, '나이'가 관계에 끼치는 영향이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윗사람은 윗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고, 기대되는 역할이 있고, 아랫사람은 아랫사람으로서의 도리가 있고, 기대되는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 관계를 시작하기도 전에 서로를 틀에 가둬버린다. 

윗사람은 리드를 해 주고, 밥도 잘 사주고, 좀 더 양보해주고,  상대적으로 성숙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귀하게 대해주는 모습 - 먼저 수저를 세팅해 준다든지, 허드렛일을 대신 해 준다든지 -을 보여 주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나이에 대한 모든 기대치가 없는 관계란 어떤가?

내가 괜히 '언니니까 애들 챙겨 줘야지' 하고 챙기면, 얘네는 나보고 왜이렇게 엄마같이 구냐고 한다.

내가 연장자라고 해서 '언니니까 여기 와서 좋은 자리 앉아' 같은 대접 따위 없다.

내가 '어른답게 상대방에게 양보해야지' 하고 행동한 것을 알아주지 않거나

'동생이니까 나에게 양보하겠지' 같은 기대감이 와장창 깨어지고

그래서 섭섭하다고 하면

'원하는게 있으면 니 생각을 확실히 말해야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라지 말라'고 한다.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정말로 '동갑'인 관계에서만 일어날 일들 - 내가 언니/누나 로써 혹은 동생으로써 할 행동이 있다는 부담감이 전혀 없는 관계 - 가 여기서는 내가 만나는 모두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으로 정신연령이 얼마나 비슷한가, 성격이 얼마나 맞는가,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느냐, 에 중점을 두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토종 한국인인 내가, 온전히 나이 차를 잊는 건 아니다.

가끔씩 왜 이런식으로 행동하지? 참 유치하게.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준다. 

따지고 보면, 아직 어린 애들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조금 너그럽게 이해해 주자고. 




하지만 가끔 나도 그냥 유치하게 굴고 싶을 때가 있다. 

내가 연장자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닌데 왜 연장자 역할을 해야 해? 

내가 왜 더 관대하고 성숙한 모습을 보여야 해? 

나도 그냥 똑같이 하고 싶다! 



어쩌면 한국에서는 나는 진정으로 관대하고 성숙한 것도 아닌데, 좀 더 나이가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성숙한 척’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실은 동생들이랑 같은 정신 연령이면서, 언니라는 이유만으로 언니 행세를 하고 살았는지도 모른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윗사람으로서 가져야 하니까 타인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자질이 아닌, 

진정한 나 자신으로서 좀 더 너그럽고 이해심이 많고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

얼마나 더 이런 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마음의 수양을 해야 그 경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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