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I miss you #4

by 규니동


어릴 적 엄마는 항상 나를 무시했다.


엄마는 청소 중이었고 앉아 있던 내게 비키라고 했다. 나는 옆으로 몸을 옮겼다. 엄마는 하필 비켜도 먼지를 모아둔 쪽으로 가냐고 나보고 멍청하다 했다. 이게 내 기억 속 첫 번째 슬픔이다. 버림 받을까봐 두려웠다. 엄마가 집에 없던 날, 현관문 앞 종이쓰레기를 모아둔 상자에 들어가 이를 달달달 떨어대며 그녀를 기다렸다. 초가을의 어느 날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좋은 아들이 되고 싶었다. 엄마에겐 좋은 아들에 대한 많은 기준들이 있었다. 높은 성적, 그를 위해 다녀야 하는 학원들, 엄마가 골라준 친구들과의 사귐 같은 것들 말이다. 엄마는 절대적이었고 난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엄마는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당신을 위해 이뤄온 것들에 만족해하는 법이 없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반장 선거에 나갔다. 나는 말이 없고 수줍음이 많은 아이였다. 반장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나갔다. 엄마의 뜻이었으니까. 나는 부반장이 되었다. 기뻐서 집까지 달려갔다. 엄마에게 부반장이 되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엄마는 웃지 않았다. 기억나지 않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그래?’라고 하였다. 아직까지도 그 표정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날 이후 다른 어느 누구의 얼굴에서도 그 표정을 찾진 못했으니까.


처음 교복을 입어본 해의 일이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을 나가게 되었다. 일과가 끝난 후 친구 몇 명이 좀 더 놀다 가자고 했다. 곤란했다. 좋은 아들이 되려면 시험 한 달 전부터 공부를 해야 했다. 하지만 평소와는 다른 장소, 분위기에 이끌린 나는 작은 일탈을 감행하게 되었다. 친구들과 뭘 하고 놀았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고 평소 귀가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늦게 되었다.


거실엔 아무도 없었다. 내 방으로 들어갔다. 늘 봐오던 풍경과는 많이 달랐다. 방 한가운데 토해져 있는 책 더미 앞에 엄마가 씩씩거리며 앉아 있었다. 순간 깊은 슬픔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껏 느껴오던 것과는 달랐다. 버림받는다는 두려움, 절대자에 대한 공포와는 다른 스스로를 향한 것이었다. 내 자신이 너무 가여웠다. 탈출구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연민은 분노로 격변했다. 엄마는 늘 그래왔듯이 날 비난했다. 나는 전과는 달랐다. 달랐어야 했다. 처음으로 소릴 지르며 대들고는 집을 뛰쳐나왔다.


그날 이후 나는 많이 변했다. 엄마는 더 이상 결핍과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다. 증오와 반항으로 가득 찬 시기를 보냈다. 학교에선 선생님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선생님에게 욕을 하고 뺨을 맞은 다음 날, 엄마가 학교에 불려왔다. 엄마는 당장이라도 땅속에 처박힐 듯이 연신 고개를 숙여댔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눈물이 흐르지도 가슴이 아프지도 않았다. 엄마가 누군가에게 굴복당하는 모습을 나는 그때 처음 보았다.


엄마는 요즘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녀 평생의 소원이었지만 외할아버지의 반대로 미대입시를 포기했었다. 내가 아주 어릴 적 그녀는 집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나는 옆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몰래 덧칠하여 엄청나게 혼났던 적도 있다. 그 그림은 내가 덧칠한 모습 그대로 액자에 넣어져 꽤 오랫동안 거실 한 편에 걸려있었다. 언제 사라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시 본 그녀의 그림을 보며 그 그림 생각이 났다. 그리곤 문득 그녀가 가여워졌다. 아무도 없을 거실에 홀로 앉아 그림을 그릴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림 속 집은 수수했고 푸른 신록은 물결치고 있었다. 어릴 적처럼 그림에 덧칠을 하고 싶어졌다. 더 이상 야단맞을 일은 없겠지만 할 수가 없었다. 영원히 하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너무 슬프고 원망스럽고도 미안해 방에 들어가 혼자 울었다. 그리고 그날 밤, 긴 꿈을 꾸었다. 푸른 초원 위 빨간 지붕의 집 앞에서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던 그런 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