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
글 시리즈를 중간에 내팽겨치고 달아난 지 일 년이 되었다.
회피는 공포를 강화하는 속성이 있다. 아주 잠시 글쓰기를 외면하려 했을 뿐이었는데, 정신 차렸을 때는 브런치가 공포의 화신이 되어 있었다. 다시 접속할 용기를 내기까지만 일 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실은, 퇴사 에세이 시리즈를 연재하던 중에 나는 이미 직장을 그만두었다.
2023년 11월에 퇴사 충동에 대한 글을 처음 올렸고,
2024년 3월 부로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2024년 5월에 마지막 글을 올린 후로
2025년 7월 현재까지 잠수를 탔다.
지난날 써 놓은 글뭉치들을 찬찬히 다시 읽어보니 낯설었다. '이 사람, 직장에서 참 힘들었나 보군.' 하는 짠한 감상이 들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이 바로 나였다. "그래, 그랬었지."라는 마음보다는 "이랬었다고?" 하는 놀라움이 들었다.
이미 직장과는 아무 상관 없는 삶에 늘어지도록 익숙한 나에게 있어서, 직장에서의 소회를 밝힌 과거의 내 글은 마치 전생의 기억을 다시 엿보는 듯한 생소한 감각을 주었다.
직장을 그만두고 글쓰기에 매진할 작정이었는데, 결국 중간에 글쓰기도 그만두게 되고 말았다. 그 이유를 한 마디로 축약해 '의지 박약'이라고 표현하더라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납작하게 퉁쳐버리기엔 좀 불쌍하니, 아래에서 구구절절 늘어놓아 볼까 한다.
1년 반 전에 퇴사를 했다. "사랑하는 일"을 새로운 직업으로 삼겠노라고 호언장담하며 나온 것도 무색하게, 그 후로 나는 단 한 푼도 벌지 못하는 백수가 되었다.
어쩌면 퇴사 전에 가장 두려워하던 모습이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내게 있어서 돈을 번다는 것은 살아 있을 자격을 주는 허가증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준으로 보면 한 푼도 벌지 못하는 나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다.
새로운 허가증을 얻어야 했다. 내가 찾아낸 것은 "무언가를 하는 한, 나는 가치 있다."라는 새로운 믿음이었다. 꼭 당장 돈을 벌지 않더라도 지금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이 언젠가 새로운 직업으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부여잡은 것이다.
그래서 최면과 글쓰기를 배웠다. 최면에 대해서는 다음에 쓰도록 하고, 오늘은 글쓰기에 대해서만 써 보겠다.
출근 대신 글쓰기를 하려고 마음 먹었으나, 글을 쓸수록 나는 한 가지 진실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글에는 내 무의식이 곧이곧대로 묻어난다."라는 것이었다.
지금껏 나는 내가 밝고 진취적이고 재미있고 상냥하며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글을 써 놓고 읽어보면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조바심과 시기 질투, 미움, 분노, 두려움, 불안, 애정 결핍, 회피적인 성향과 우유부단함 등, 전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과 자아가 글을 통해 자신을 드러냈다.
한동안 그것을 어떻게든 유머러스하게 포장하려고 한껏 애를 썼다. 부정적인 내 모습도 괜찮아하는 쿨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모습을 유머로 포장하려 했던 건 부정적인 나를 괜찮지 않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보통 글을 쓰면서 자신을 알게 되고 치유가 이루어지던데, 우습게도 나는 점점 나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글을 통해 드러난 자신을 부정하려 했으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글에는 '나'가 드러나야 하는데 정신 차려 보니 더 이상 내놓을 '나'가 없었다.
솔직한 글을 쓰겠다고 지향해 왔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내 글에는 대개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허풍과 과장이 들어 있었다. 실제보다 더 유쾌한 척을 했고 더 유능하고 똑똑한 척을 했으며 아량이 넓은 척을 했다.
그러나 계속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나의 속알맹이는 끝없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야. 돈을 벌지 못하는 나는, 유쾌하지 않은 나는, 능력이 없는 나는 살아 있을 가치가 없어."라고 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이걸 알고 나자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었다. 지금껏 써 왔던 글, 곧 발행하려 했던 글의 초안들은 여전히 내가 뭐라도 된다고 뻐기는 허세와 거짓된 당당함으로 점철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간극을 어떻게든 버무려서 그럴듯한 것으로 꾸며내려고 전전긍긍했지만, 애초에 달성될 수 없는 목표였다. 극심한 공황과 부담감에서부터 나는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직장도 그만두었으면서 글조차 쓸 수 없게 된 자신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돈도 못 벌고 글도 못 쓰다니, 수치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거의 죽다 살아날 정도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내가 글을 너무 잘 쓰고 싶어서, 잘 못 쓸까 봐 안 쓰려는 줄 알았다. '못 써도 돼. 일단 쓰고 생각해!'라는 말이 끝없이 마음 속으로 들려 왔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따를 수가 없었다. 글을 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돌덩이처럼 굳어 버리고 숨이 가빠져 왔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글쓰기를 회피하고 변명만 하는 자신이 더 싫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 안 쓰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당시의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자기 기만적인 글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때는 일단 철수해서 <정말 최악인 나>를 온몸으로 경험하며 느끼고 경험하는 일이 필요했다.
그때 계속 억지로 글을 썼다면, "그래도 글은 계속 쓰고 있으니까 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아니야?" 하는 변명을 했을 것이다. 겉보기에 글쓰기라는 행동에서는 도망치지 않은 것처럼 보였겠지만, <진짜 나의 심연>에서부터는 도망을 친 상태였을 것이다. 그러면서 도망쳤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아무것도 보증해 주지 않는 상태를 경험해 보는 일이 내게는 필요했다. 일도 하지 않고 글도 쓰지 않는 나. 누구도 가치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 나.
도망친 곳에는 그런 내가 있었다. '차라리 죽을지언정 이것만큼은 되고 싶지 않다'고 여겼던 밑바닥인 내가.
오랫동안 식충이인 나와 함께 지냈다. 뭐라도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쭉 지켜보았지만 우리의 식충이는 정말 오랫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 눈물 겨운 스토리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풀어보겠다.
놀랍게도, 오랜 침묵과 절망과 무력감과 체념 끝에, 내면에서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라는 울림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글을 지지리도 못 써도, 아무도 안 읽어줘도, 형편없는 민낯만 드러나서 또 다시 수치를 당하게 된다 할지라도, 그래도 글을 쓰고 싶다는 충동과 열망이 들었다.
(아, 물론 나는 여전히 글을 잘 쓰고 싶고, 아주 많은 사람들이 내 글을 읽어주면 좋겠고, 끝내주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 하지만 그런 희망이 모조리 좌절된다 할지라도 글을 쓰고 싶다는 말이다.)
한번 도망친 곳으로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고서도 몇 달이 더 걸렸다. 그러고 나서 겨우 완성한 이 글도, 초고를 쓴 이후로 또 다시 열흘 넘게 고치기만 하면서 발행을 하지 못했다. 속에 천불이 나는 느림보에 겁쟁이, 그게 바로 나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뻔뻔하게도, 나는 1년 전에 내팽겨쳤던 퇴사 시리즈를 이제 와서 조금씩 마무리 지어 보려고 한다. 미완성인 채로 남으면 찜찜하니까, 하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백수가 된 지 일 년 반이나 지나서 쓰는 퇴사 에세이라니. 당시가 기억이 날지도 모르겠고 어떤 글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 쓰다가 또 벽에 부딪히고 나자빠질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단은 써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