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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고먐미 May 28. 2024

상사에게 배울 것이 없어 슬프다면

내가 상사를 가르치면 된다는 오만한 발상

직장 인간 관계에서 서열과 주도권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직급, 직책, 직위?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다소 순진한 것일지도 모른다.


일터에서 서열이나 주도권은 반드시 직급이나 직위만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누가 일을 더 잘하는가, 직원들 사이에서 누가 더 지지를 받는가, 누가 더 인간적 카리스마가 있는가 등이 때로는 직급 못지않은 힘을 지니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회사에는 엄격한 수직적 질서가 있었다. 처장 아래 부장, 부장 아래 팀장, 팀장 아래 정규직, 정규직 아래 계약직. 하위에 놓인 자는 상위에 놓인 자에게 깍듯이 복종해야 했다. 이곳에서 이것은 상식이었다.


그러나 하나의 질서가 존재한다면, 그 질서에 의문을 표하는 종자 역시 반드시 존재하게 마련이다. 이제 전혀 놀랍지 않겠지만, 이 회사에서는 바로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의 보들보들하고 순종적인 아기 시절


물론, '윗사람들'을 공손히 존경하며 따르던 귀염둥이 신입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왜 없었겠는가?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선배들은 많은 것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몽매한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과 호감의 눈으로 좇으면서 무엇이든 배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세월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나는 몇 년간 열심히, 착실히, 그리고 즐겁게 직장생활을 해 나갔다. 많은 성과를 올렸고 많은 보람을 느꼈으며, 그 과정에서 내가 생각보다 일을 능률적으로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ADHD답게 내 업무 스타일은 체계적이거나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과감하고 창의적이고 감각적이라는 큰 장점이 있었고, 이것은 언제나 성과 창출로 이어졌다.)


어느덧 후배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새로운 인연이 너무도 반갑고 사랑스러웠던 나머지, 후배들에게 친절과 애정을 듬뿍 담아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때로는 그들이 알고 싶어 했던 것보다 많이 알려주기도 했다. 후배들은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우리는 금세 친밀해졌다.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후배들 사이에서 상냥하고 업무적으로도 의지가 되는 든든한 선배가 되어 있었다. 후배들은 직장에서 힘든 일이 있거나 조언이 필요할 때마다 나를 찾아왔다. 나는 언제나 그들을 진심 다해 지지해 주었고, 그럴 때마다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더 이상 존경스러운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절망감


그러면서 슬슬 판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그 많던 선배들이 모조리 우수수 낙엽처럼 은퇴하고, 내가 입사할 때만 해도 20명에 달하던 정규직원은 어느 새 고작 8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 내 위에는 고작 3명밖에 없었다. 허부장, 강팀장, 차팀장이었다.


어느 날, 나는 누구에게서도 배울 점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누구도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일을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궁리를 하지 않았으며, 바람직한 리더의 역할에 대해서도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넘기면 족한 듯했고,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연차와 직급을 들이대면 자연히 복종이 돌아온다고 믿는 것 같았다. 비록 그들은 논리적으로도 감성적으로도 후배들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으나, 세뇌 문구를 끝없이 반복적으로 되뇌는 훌륭한 최면술사적 재능은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우리 회사는 보수적이니까 말이야."




그대가 부장이면, 그게 뭐 어쨌다는 말입니까?


여기서 우리의 주인공 멋진고먐미 씨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 정규직원 8명 중 서열(?) 4위이고, 업무는 이제 손에 익을 대로 익어서 뻔할 수준이며, 창의적인 업무 처리로 상도 몇 번 받았, 실무자들모두  내 편이며, 성인군자보다는 오만방자에 가까운 성정을 타고난 이 사람이 말이다.


당연히 상사를 점차 우습게 보지 않겠는가? 아무리 봐도 내가 저 사람들보다 꿀릴 게 하나도 없는데 왜 내가 머리를 조아려야 하는지 의문을 갖지 않겠는가? 나의 업무 실력과 인적 네트워크를 방패 삼아 그들과 맞먹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직급, 직위? 시대가 어느 때인데 그것만으로 사람을 지배하려 하느냐며 코웃음을 치지 않겠는가?


나는 선량하고 여린 마음을 지녔지만, 동시에 인간 관계에서 무엇이 권력과 파워를 부여하는지 잘 아는 교활함도 갖추고 있었다. 나는 상사들 앞에서 스스로에게 상당한 권력을 부여했고, 그것을 원하는 만큼 휘렀다. 그들이 결코 나를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 이른바 나의 권력(?)을 악용한 것이다.


특히 비참할 정도로 업무 능력이 없는 허영미 부장은 내 안에서 '바보 멍청이'로 라벨링되었다. 나는 그를 철저히 무시하면서 내 업무에서 배제시켰다. 나는 그에게 어떤 것도 상의하지 않았고, 내 업무에 대한 결정권을 결코 넘겨주지 않았으며, 심지어 보고도 자주 생략했다.


어느새 나의 우주에서는 그들과 나 사이에 수직적 관계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장이니 팀장이니 하는 것은 내게 있어서 단지 책임과 역할의 범주를 뜻하는 단어에 불과했다. 나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들과 전적으로 동등한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상사를 절대신으로 모셔야 한다는 신앙을 엄숙하게 고수해 온 선배님 세 사람이 얼마나 나를 미워했을지 상상해 보라. 하지만 이미 늦었다. 내 정신머리는 너무도 썩어빠져서 영원히 되돌릴 수 없게 되고 말았으니.




가증스러운 눈물, 따뜻한 위로의 티슈


    "왜 나한테는 말 안 했는데? 강팀장이랑 처장님한테만 얘기하고!"


허영미 부장은 날선 어조로 쏘아붙였다. 내가 진지하게 퇴사를 고려하고 있음을 왜 자신에게는 하지 않았느냐고. 그제서야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침묵했다.


    '아, 당연히 당신에게는 하지 않으려 했다. 왜냐하면 당신의 의견은 나한테 하나도 중요하지 않으니까.'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나는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철저히 무시당한다면 누구나 기분이 썩 좋지 않을 터였다. 부장도 마찬가지겠지. 분노가 누그러지고 연민과 미안함이 그 틈을 타자, 한결 부드러워진 감정을 타고 내 눈에는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나를 도대체 뭘로 보는 건데. 그렇게 퇴사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였으면 당연히 나한테도 말했어야 하는 거 아니야? 보고 좀 빨리빨리 올리라고 해도 듣는 척도 안 하고 맨날 늦고!"


그가 서운함에서 비롯된 신경질을 부리자, 나는 기가 막혀서 드디어 울음을 터뜨렸다.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자기 방어의 눈물이었다.


    "제가 무슨, 부장님 엿먹으라고 결과보고를 늦게 올린 거 같으세요? 악의적으로 그렇게 한 거 같으세요? 저도 빨리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애써도,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이렇게밖에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이 얼마나 낯짝 두꺼운 발언인가! 심지어 눈물까지 곁들인!


직장에서 흘리는 눈물을 경멸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뭐 가끔은 어떠하랴. 때로는 눈물이 내뿜는 '나는 나약하다'라는 비겁한 선언이 가장 효과적인 무기가 될 때도 있다. 특히, 허영미 부장처럼 감성에 잘 휩쓸리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물론 내가 이렇게 사악한 의도를 가지고 계산적으로 울음을 터뜨렸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는 그 정도로 감정 콘트롤에 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순간 진심으로 서러웠다. 느린 업무 처리로 이 사람에게 흠을 잡혔다는 사실이 너무도 수치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연, 이 상황에서 눈물은 효과적인 무기였다. 부장은 나의 눈물을 보는 순간 연민으로 마음이 한층 누그러진 듯했다. 그는 허둥지둥 테이블의 티슈를 뽑아 주면서 마치 엄마가 딸을 달래듯이 나를 달래기 시작했다.


    "아니, 이렇게 울 정도로 힘들었으면 진작 얘기 좀 하지..."


우리의 부장 허영미 씨는 업무적으로나 상사로서는 최악으로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비열했지만, 아주 때때로 이렇게 인간적으로 상냥하고 부드러워질 때가 있었다. 그는 만인에게 극렬한 경멸을 받았지만, 바로 이 드물게 다정한 순간들은 그의 평판이 "순수한 악인"으로까지 치닫는 것을 막아주었다. 이 가끔의 상냥함은 그야말로 이 사람의 생존 전략이라고까지 보일 정도였다.




다 울었니? 이제 몽둥이를 들자


나는 얼마간 울고 난 후 이성을 되찾았다. 방금까지 삽시간에 얼마나 많은 감정이 나를 투과해 갔던가? 분노, 증오, 경멸, 그런 다음에는 연민, 억울함. 그리고 방금 부장이 뽑아준 티슈는 최종적으로 나에게 일말의 감동까지 선사해 주었다.


심호흡하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자 순식간에 모든 감정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나는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침착을 되찾은 내 입에서는 곧 담담한 어조로 폭탄 같은 언어가 쏟아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은 훗날 나의 남편이 "...너무 많이 말했다."라고 당혹스럽게 평했던 언어들이었다.


    "부장님은 이렇게 따뜻하고 좋은 분인데..."


나는 코를 풀며 착하고 순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맥락 없고 느닷없는 칭찬에, 부장 허영미 씨는 의문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다음에 얼마나 무서운 폭격이 쏟아질지도 모른 채.


    "부하들에게 항상 이런 따뜻한 모습으로 다가갔더라면 훨씬 좋은 상사가 되셨을 텐데. 정말 안타까워요."


그 순간, 나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그러니까 '그 어떤 비난의 의도도 없이' 이 문장을 내뱉었다. 이것은 "당신은 좋은 상사가 아니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몹시 모욕적인 문장이었다. 그러나 이 무례하고 주의가 산만한 부하는 그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그 입을 다물지 않았다.


    "어?"


주의력이 부족하여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기로는 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직 자신이 얼마나 큰 모욕을 당했는지 알아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한번 아가리가 터진 평등주의자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가 진정으로 '그와 동등한 인간의 입장에서' '부하들에게 사랑받는 상사가 되기를' 바라는 따수운 진심을 가득 담아 '조언'을 이어갔다. 물론 상대방은 결코 원한 적도 없는, 들을 준비도 전혀 되지 않은 그런 조언이었다.


    "이렇게 상냥하고 다정하실 땐 부장님이 참 좋은 분이구나, 하고 느껴요.

    하지만 평소에는 항상 신경질적으로 트집을 잡으시죠. 그게 부하들 입장에서는 정말 힘든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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