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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고먐미 May 13. 2024

나의 철천지 원수, 부장님과의 마지막 싸움

"퇴사 얘기까지 꺼냈는데 혼만 내다니 섭섭해!" ─ 부장은 더 섭섭했다.


[지난 회 요약] 결과보고서를 늦게 써서 부장님에게 호출당함.




    "최멋고 선생님? 지금 당장 내 자리로 오세요."


결과보고서를 한참 뒤늦게 상신하자마자 허영미 부장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처음 든 생각은 '엿됐네.'였다.


'그러게 빨리빨리 좀 하지 그랬어!' 가슴 속에서 가장 먼저 올라온 것은 자기 비난의 목소리였다. 뒤이어 변명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그러고 싶었어. 하지만 도저히 일이 손에 안 잡히는데 어떡해. 이것도 겨우겨우 쥐어짜내서 쓴 거라고.'


또 시작이었다. 비난과 죄책감의 루프. 지긋지긋한 내면의 목소리들을 내버려둔 채, 나는 한숨을 쉬며 부장님을 만나기 위해 A부 사무실로 향했다.




자기가 잘못해 놓고 눈이나 부라리는 몹쓸 부하직원


    "안녕하십니까."

    "최멋고 쌤."


사무실에 들어서서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네자, 허영미 부장은 대답도 않은 채 경직되고 날선 어투로 곧장 나를 불러세운다.


A부 직원들은 일제히 모니터에 코를 처박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그들 중 누구도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꽁꽁 얼어붙은 침묵은, 사무실의 모든 신경이 온통 우리 두 사람에게 쏠려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못말리는 호모 사피엔스들 같으니라고. 하긴야 이런 재미난 구경거리를 인간의 탈을 쓰고 어찌 놓치겠는가?


일제히 집중된 부하들의 이목을 인지했는지 못했는지, 허영미 부장은 나에게 세찬 분노를 보란듯이 쏟아내기 시작했다.


    "결재 올라온 거 뭐야? 장난해? 이게 언제적 행산데 결과보고를 이제야 해? 내가 한두 번 말해? 어?"


정당한 비난이었다. 나는 어서 고개를 숙이고 풀죽은 표정으로 죄송하다고 말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수없는 자기 비난으로 죄책감에 빠진 상태였다. 말하자면, 나는 내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수치심에 빠져 있을 때 타인의 비난이 더해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비록 못난 짓이기는 하지만, 비난을 당한 사람은 순간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서 폐쇄적인 자기 방어 모드에 들어가게 된다. 이때, 상대방이 비난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되면 그 분노의 화력은 크게 배가된다. 여기에 기름을 더욱 퍼붓고 싶다면, 그 비난을 일대일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가하면 된다.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나는 모욕감과 수치심으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몸도 마음도 분노와 하나가 되었다. 나는 말없이 부장님을 노려보면서 속으로 경멸의 말을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자신의 잘못으로 열세에 몰렸을 때 이처럼 뻔뻔하게 구는 것은 결단코 좋은 처세가 아니다. 착한 어린이는 절대 따라하지 말고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기 바란다.)


    '하, 내가 결과보고서를 늦게고 뭐고 영영 안 올렸다면? 과연 내가 결과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당신이 알았을까? 절대 몰랐을 거면서!'


어찌보면 정당한 생각이었다. 실제로 내 전임자는 같은 행사를 하고서 결과보고서를 아예 올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팀장이고 부장이고, 그 누구도 내 전임자가 결과보고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3년이 지나도록 눈치 채지 못했다. 과거 3개년의 실적 증빙을 위해 뚜껑을 열었을 때, 행사 결과보고서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후임자인 내가 발견할 때까지 말이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결과보고서를 늦게 썼다는 이유로 혼이 나고 있는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늦게나마) 결과보고서를 써서 상사의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그 순간까지 누구도 내게 '왜 결과보고서가 올라오지 않느냐'고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 증거였다.


    '아니, 애초에 왜 늦게 쓰면 안 되는 거야? 어차피 단순 기록용일 뿐이잖아. 언제 해도 상관없는 거잖아. 그렇게 빨리 하길 원했으면 기한을 정해주든가!'


내가 하는 모든 생각은 물론 타당하고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일을 능률적으로 해내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서 즉석에서 지어낸 타당함에 불과했다.


나는 스스로를 향했어야 할 모든 분노의 화살을 나를 몰아세우는 부장에게 쏘아댔다. 그런 방법으로 나의 무능에 대한 자기 비난과 죄책감에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고 애썼던 것이다.


(거듭 말하지만 착한 어린이는 상대가 아무리 밉고 자존심이 상하더라도, 자신이 잘못한 상황에서는 꼭 재빨리 사과하기 바란다. 아니면 애초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단을 미리미리 전략적으로 대비해 두거나.)


내 입에서 좀처럼 '죄송합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지 않자, 부장의 눈꼬리는 점점 더 치켜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도저히 여기서는 말이 통할 것 같지 않았는지, 자리를 옮기기를 제안했다.


    "허,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눈빛이네? 잠깐 탕비실로 가서 얘기 좀 하지."




부하를 비난하는 것만이 상사의 권위를 지키는 방법이다


허영미 부장과 나는 오랜 앙숙이자 원수지간이었다.


우리의 영미 씨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 마성의 리더십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사소한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5,000가지의 요소'를 모두 똑같은 비중으로 아주 신중하게 고려해서 의사결정을 내리는 타입이었다.


불쌍한 부하들은 문자 그대로 '5,000개의 요소'를 모두 면밀히 조사하고 정리해서 그에게 보고해야 했고, 허영미 부장은 그 '모든' 요소 각각에 대해서 '모든' 직원들의 의견을 구했다.


그러나 허영미 부장의 마음 깊은 곳에는 언제나 그만의 고집스러운 답안이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그 답안은 부장 자신조차도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직원들은 부장님께서 표출한 몇 가지 단서를 혼신의 힘을 다해서 조합한 후 그 답안을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겁이 많고 우유부단한 부장이 최후의 불안까지도 날려버리고 흡족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최선을 다해서 그에게 확신을 심어 주어야 했다.


그렇게 수십 번의 회의를 거듭해 심사숙고하여 내려진 의사결정은, 우리가 미처 고려하지 못했던 5,001번째의 요소가 뒤늦게 나타나면 순식간에 모조리 없던 일이 되었다. 허영미 부장은, "왜 5,001번째의 요소를 빠뜨렸어? 큰일날 뻔했잖아!" 하고 부하를 야단치면서 모든 의사결정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그는 심지어 일이 무사히 마무리된 후에도 "알고 보니까 5,002번째 요소가 있었잖아? 이 요소가 일을 그르쳤으면 어쩌려고 그랬어!" 하고 부하를 비난하곤 했다.


불쌍하게도, 그는 상사로서의 권위를 지키는 방법이라고는 '부하를 꾸짖고 트집 잡는 것' 말고는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불행한 인생을 살아내는 방법이라고는 '자신을 의심하고 비난하는 것' 말고는 없다고 굳게 믿는 것과 마찬가지로.


당연하지만 이런 상사를 존경하며 따르는 부하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 직원들은 모두 사회생활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직원들은 언제나 아무런 반박도 없이 부장의 지시에 따랐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은 뒷담을 까는 것뿐었다.




평소에 버릇없이 굴었던 업보는 청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조직에는 이상한 놈이 하나쯤 끼어 있게 마련이다. 모두가 참을성 있게 묵묵히 시련을 인내할 때, 속내의 부글거림을 견디지 못하고 겉으로 터뜨리는 인간이 꼭 있다. 우리 조직에서는 바로 나, 최가의 멋진고먐미[최멋고]가 그 역할을 맡고 있었다.


나에게는 "상사가 일을 도와줄 필요까지는 없지만, 최소한 방해는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굳센 신념이 있었다. 나는 부장이 내 일에 '훼방'을 놓는다고 느낄 때면 그것을 저지하는 데 사력을 다했다.


이 작업은 아주 수월했다. 나는 거의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알고 있었고, 허영미 부장은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붙으면 아는 자가 이길 수밖에 없다.


우리의 업무 패턴은 언제나, ① 내가 어떤 일을 하고자 하고, ② 허영미 부장이 트집을 잡고, ③ 내가 '논리적'인 근거를 들이밀며 그의 의견을 묵살하고, ④ 내가 뜻하는 바대로 밀어붙이고, ⑤ 그 결과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대부분의 경우에 공손하고 예의 바른 부하직원의 탈을 쓰고 그렇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겉으로 상냥하게 대할지라도 속으로 사람을 바보 취급하면 그것은 티가 날 수밖에 없다.


허영미 부장은 나와 일을 할 때마다 자신의 의견은 무가치하며, 자신이 쓸모없다는 메시지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 취급을 달가워할 상사가 세상에 누가 있겠는가? 그런 기분을 들게 하는 부하를 예뻐할 상사가 세상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허영미 부장이 내게 반감과 보복 심리를 품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내가 드디어 틈을 보인 것이다. 누가 봐도 명백히 내가 잘못했지 않은가. 행사가 끝나고 2개월이나 지나서야 결과보고를 올렸지 않은가. 이런 절호의 기회는 붙잡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영미 씨는 그렇게 했다.




이 싸움의 진짜 이유는, 고작 서로에 대한 섭섭함에 불과했음을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지, 빨리빨리 하라고. 행사가 끝난 게 언젠데 이제 올려? 내 말을 무시하는 거야?"


탕비실로 가서 마주앉자, 부장은 비난의 말들을 다시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몇 번이고 '나를 무시하냐'며 나를 다그쳤다. 


그가 정당한 상사의 권리로 나를 야단치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오만 감정이 안에서 울컥울컥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우습고 뜬금없게도, 그 중에는 '섭섭함'이 큰 비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확실히 부장과 나는 오랜 원수지간이었다. 그러나 매일 쥐어뜯고 싸우는 부부도 오래 살다 보면 정이 든다. 나 역시 허영미 부장과 자주 반목했지만, 한 조직에서 오랫동안 부대끼는 과정에서 우리에게는 알 수 없는 동지애와 온정이 싹터 있었다. 우리 사이에는 명백히 서로에 대한 애정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힘든 '퇴사' 얘기를 꺼냈음에도 나의 사소한 허물을 감싸주기는커녕,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드러내어 비난하는 부장에게 크나큰 서운함을 느끼고 있었다.


'이딴 결과보고, 하든 말든 회사에도 고객에게도 아무런 영향도 없는 형식적인 결과보고. 고작 이런 사소한 일이 나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내가 나가든 말든 상관이 없다는 뜻인가.'


나는 부장을 미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의 인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조직에 필요한 직원이라고 인정해 주기를 바랐다. '요즘 들어 업무 무기력이 두드러지는 것을 보니 이 친구가 많이 힘든가 보구나', 하고 따스하게 알아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깊은 내면의 진실이었다.


서운함과 수치심이라는 감정으로 똘똘 뭉쳐 얼룩진 어린아이가 된 나는, 허영미 부장에게 날을 세워 되물었다.


    "부장님은 못 들으셨나 봐요?"


그것은 '내가 퇴사한다는 얘기를 들었으면서도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어요?'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무시하냐며 다그치는 데 여념이 없던 부장은 마침내 내가 입을 열자, 눈이 더욱 날카로운 세모꼴로 변해서는 다시 반문했다.


    "뭘?"


내가 침묵하자, 부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퇴사한다고?"

    "네. 팀장님한테 전해 들으신 줄 알았는데요."


내가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그 순간 부장의 목소리에는 더 큰 분노가 일었다.


    "그래! 다 들었어! 도대체 나는 뭔데? 그런 중대한 이야기를 팀장한테만 이야기하고! 그것도 내가 휴가 간 사이에! 도대체 나는 뭔데?"


아, 그 신경질적인 외침 속에서 나는 부장의 감정적 뒤틀림을 읽어낼 수 있었다. 그것은 부장 역시 분노의 탈을 뒤집어 쓰고서 나에 대한 뼈아픈 섭섭함을 쏟아내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왜 나한테는 안 알려줬어? 내가 너한테 그것밖에 안 되니? 왜 중요한 일은 나한테 하나도 안 알려주는 건데? 왜 나를 계속 무시하는 거야?' 하는 그의 내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철천지 원수인 우리는 서로 '섭섭함'이라는 동일한 감정을 목놓아 토로하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진짜로 바랐던 것이 나를 '꼭 필요한 직원'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었던 만큼, 부장은 내가 자신을 상사로서 존중하고 인정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이 싸움의 본질은 우리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을 결코 주지 않는 데 있었다. 유치한 사랑 싸움을 하는 중이었던 것을 알아채자, 나는 더 이상 그에게 분노할 수 없었다.





[넋두리]

또다시 글 업데이트가 무척 늦어졌다. ㅠㅠ 이번에도 이에 대해 그럴듯한 변명거리가 있다.


그것은 이 편을 아무리 열심히 써도 내가 극악무도한 악당이고 부장이 선량한 피해자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번 편(+다음 편)을 한 줄로 요약하면 "퇴사하기로 맘 먹고 난 후 일하기 싫어서 실컷 미루다가 상사에게 혼이 나자 도리어 그를 후들겨 팬 이야기"이다. 나는 사람들이 나를 버릇없고 무능한 폐급 직원으로 볼까 봐 겁이 났다.


부장에 대해 공통적으로 원한을 품고 있던 동료 직원들에게는 큰 지지를 받았던 일이었지만, 막상 글을 써 놓고 보니 아무리 봐도 내 쪽이 경우 없는 나쁜 놈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나를 정의롭고 멋지게 포장해 보려고 끝없이 궁리했지만, 결국 무익한 싸움을 포기하고 나의 못난 부분을 그냥 날것 그대로 드러내어 쓰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 많이 늦어졌다. 도대체 언제 완결을 내려고 이러는지 걱정이 태산이다.


아무튼 다음 편은 더더욱 가관이니 파렴치한 악당 최멋고의 활약을 기대해 주시길 바란다.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사랑과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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