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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멋진고먐미 Dec 08. 2023

"퇴사하고 뭘 할까?"
─일단, 똥이나 드세요 [1편]

우주에게 답을 구했더니 다음 날 똥이 배달되어 왔다

오늘 아침, 나는 대뜸 동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출근 인사를 했을 뿐인데 다들 날 보며 웃음을 터뜨리다니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왜, 왜 웃어요?"

"아니, 오늘 왜 이렇게 얼굴이 친근해요?"


웃음을 참으며 동료가 말한다. 내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듣자 옆에서 팀장님이 부연설명을 한다.


"부은 거가, 아니면 화장한 거가?"


아, 퉁퉁 부어오른 눈두덩과 찐빵처럼 부푼 내 몰골을 보고 다들 웃음을 주체 못한 거였고만. ( 3_3 ) 이 이모티콘과 똑 닮은 인간이 현실에 걸어다니면 아무래도 웃기긴 하겠지. 나름대로 쉐이딩으로 눈깔에 입체감을 줘 보려 시도는 했으나 그다지 효과는 없었던 모양이다.


"부어서 화장한 건데요..."


내 얼굴이 모두를 웃겼단 걸 알고 덩달아 웃겨진 내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래, 너네가 웃겼다면 됐다. 누구라도 나로 인해 웃는다면 좋은 일이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대들은 모르겠지! 이 퉁퉁 부은 눈두덩은 아주 깊디깊은 슬픔의 산물이란 사실을 말이다. 회사원인 나는 가엾게도 회사가 가기 싫어 어제 밤새 울었던 것이다.





나는 '퇴준생(퇴사 준비생)'이다.


퇴준생. 이런 멋드러진 말이 존재한다니 참 다행이다. 이 단어가 없었다면 나는 스스로를 '퇴사를 결심했으나 무서워서 사직서는 못 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을 것이다. 아무렴, 이왕이면 자신을 표현할 땐 조금이라도 멋스러운 말을 고르는 게 낫지. 이 말을 만들어 준 누군가에게 참으로 고맙다.


퇴사를 결심한 이유는, 내가 갈망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자유롭게 움직이는 삶. 내가 사랑하는 일로 돈을 버는 삶. 그러면서 세상에 사랑이라는 가치를 더해 가는 삶. 이런 삶은 회사 바깥에 있다는 것을 마침내 인정한 것이다.


결심했다면 움직이면 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지금 당장 퇴사를 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유는 몹시 단순하다. 회사를 나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플랜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뭐라도 방향을 잡고 나가야지, 몽둥이 하나 없는 맨몸으로 냅다 광야로 뛰쳐나가서 "이제부터 뭘 할지 찾아보자!" 하기에 나는 31년차 겁쟁이 쫄보였고, 그런 건 생각만 해도 너무너무너무 두려워서 경기를 일으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단 회사를 다니면서 퇴사 후의 삶의 방을 물색하기로 했다. 나만의 몽둥이 하나는 건져서 나갈 요량으로 말이다. 한 마디로 '내가 사랑하는 일'이 뭔지 가닥이라도 잡은 다음 퇴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 탐색 과정은 길어도 1년 이내엔 끝마칠 속셈이지만, 어쨌거나 지금 당장 퇴사를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음, 상당히 긍정적이고도 합리적인 방향 설정을 했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그렇게 멋지기만 하다면 멋진고먐미가 아니지


애석하게도 눈앞의 고통과 자기연민은 언제나 가장 매력적이어서, 그 어떤 긍정적 에너지보다도 강렬하게 우리의 주의를 끈다. 나는 멋진 몽둥이를 구하는 작업보다도 "지금 당장 퇴사할 수 없는 나의 불쌍한 처지"를 극렬히 비관하는 데에 나의 집중력을 쏟기로 선택했다.


당연하지만 이 선택은 물론 나의 잠재의식(무의식) 단계에서 일어난 일이다. 나의 가련한 표면의식은 매일마다 계속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고자, 긍정적이고자 온 애를 썼다. 온 우주에게 "사랑하는 일을 찾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했다. 하지만 표면의식과 잠재의식이 싸운다면 언제나 잠재의식이 이긴다. 어쩔 수 없다. (그것이, 약속이니까...☆)


당신이 집중하는 바로 그것이 확장된다.
What you focus on expands.


잠재의식이든 뭐든 간에, 내가 집중하기로 선택한 것은 결국 좋은 것보다는 '싫은 것들' 쪽이었다. "나는 직장인으로 사는 게 싫어!" 하고 당당히 우주에 선포하고, 어떤 점이 그렇게 싫은지를 전심으로 살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는 언제나 한 치 오차 없이 정확하다. 싫은 것에 집중하면 세상은 싫은 것으로 가득해진다. 현재의 내 삶이 싫다고 생각했더니 순식간에 내 세상은 거지 같아졌다.


이 회사도 싫고 이 일도 싫고 다 싫어. 난 이딴 걸 원하지 않는다고! 그런데 나란 놈은 당장 그만둘 결단력도 용기도 없다니. 나는 스스로에게 몹시 화가 났고, 나의 미적지근한 결정이 몹시 실망스러웠다.


성실하게 내 인생을 미워한 덕택인지, 평생 인연도 없던 감기몸살까지 얻어걸려 며칠을 꼬박 앓았다. 몸이 아프니 더욱 부정적이고 무기력해진다. 한층 더 부정적이 된 나는 더욱 거세게 삶을 비관한다.


오, 이 얼마나 신비로운 악순환인가. 이 모든 불행을 내가 손수 창조했다. 단지 직장이 싫다는 한 마디 선언으로 순식간에 내가 이룩해낸 성과이다.


내가 빚은 불행 속에서 나는 며칠을 슬피 목놓아 울었다. 내 입장도 어찌 보면 황당한 것이, '내가 사랑하는 일을 찾게 해 달라'고 온 우주에 주문했는데, 바로 다음 날 배송되어 온 것은 '내가 극혐하는 것들의 패키지' 셈이지 않은가.


- 이런 똥덩어리 따위 난 주문한 적이 없어요.
- 아니요, 분명히 하셨어요.
- 없다고요, 없다고요.
- 지금 하는 일이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싫음을 종류별로 체험하길 원하시는 줄 알았지요.
- (서럽게 운다)


그 와중에 또 글은 써야겠답시고 안 써지는 걸 꾸역꾸역 붙잡고 한 편을 일주일 넘게 썼다. (글쓰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물색하기' 위해 시작한 것들 중 하나니까 그만둬선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 나온 글은 당연스럽게도 똥글이었다. 코가 예민한 내 남편은 당연히 그 냄새를 참아주지 않고, 글을 보자마자 "똥냄새 지독하다"고 한 소리 한다. 내 설움은 한층 더해진다. 그래, 나는 똥이다! 똥이 쓰는 글이야 똥글인 게 당연하지!


(노파심에 첨언하지만 사실 남편이 저렇게 심하게 말하진 않았다. 자격지심을 보태서 허위로 과장해 적은 것이다.)


썼던 글을 수치심에 떨며 지웠다. 그러고는 밤새 슬피 엉엉 울었다. 내가 어쩌다 이런 똥이 됐지? 나는 분명 고귀한 자유인이 되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비참한 불평 분자가 되고 말았지?


모두에게 웃음을 준 나의 퉁퉁 부운 삼자 눈( 3_3 )은 이런 진득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다. 결코 허투루 만들어지지 않았다. 사람을 웃기는 데에는 언제나 지극한 정성이 필요한 법이다.


[다음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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