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셰흐라드, 늦은 오후

by Classico

비셰흐라드는 관광지로 먼저 떠올려지는 장소는 아닙니다.
프라하 성처럼 눈에 띄지도 않고,

누군가에게 설명해야 할 이유도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곳을 좋아합니다.


해 질 무렵의 비셰흐라드는 조용합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느리고,

말소리는 멀어집니다.

강 너머로 노을이 내려앉는 동안 이곳은 하루를 마무리하기보다는
하루에서 조금 물러나는 장소에 가깝습니다.


이곳을 산책할 때 저는 음악을 틀지 않습니다.
비셰흐라드에는
굳이 소리를 더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한 리듬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나무 사이를 지나고,

멀리서 트램 소리가 희미하게 섞입니다.
이 정도면 음악이 없어도 괜찮은 시간입니다.


산책이 끝나갈 무렵 저는 와인을 한 잔 마십니다.

특별한 품종이나,

어떤 지역의 와인인지가 중요해지는 순간은 아닙니다.


이 시간의 와인은 설명될 필요가 없습니다.

차갑지 않고,

너무 무겁지도 않은 상태면 충분합니다.


이때의 와인은

무언가를 느끼기 위해 마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이 그대로 흘러가도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마시는 것에 가깝습니다.


한 모금씩 마시다 보면

와인의 맛보다

주변의 공기가 더 또렷해집니다.


비셰흐라드에는 드보르자크의 묘가 있습니다.

이곳을 산책하다 보면
그의 음악이 이 장소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보르자크의 음악은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곁에 머무는 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웅장하지만 과시하지 않고,

사람의 체온에서 멀어지지 않습니다.


비셰흐라드의 늦은 오후도 그렇습니다.
눈에 띄지 않지만 오래 남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됩니다.

말은 줄어들고,

속도는 자연스럽게 느려집니다.


노을은 사라지고,
강은 여전히 흐릅니다.

그 정도면 이 오후는 충분히 잘 지나간 셈입니다.

IMG_6261.jpg


작가의 이전글늦은 오후, 클래식과 와인 한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