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오후, 클래식과 와인 한잔

하루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때

by Classico

늦은 오후라는 시간은
하루가 끝났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그렇다고 더 애써야 할 필요도 없는 시간입니다.
이미 해야 할 일은 대부분 지나갔고,
앞으로의 시간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설명이 많은 것들이 잘 어울리지 않습니다.
집중을 요구하는 말이나,
결론을 재촉하는 소리 대신
곁에 머무는 것들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늦은 오후에 클래식 음악을 틉니다.
그리고 와인을 한 잔 따릅니다.


클래식 음악은
이 시간에 감정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설득하지도, 끌어당기지도 않습니다.

그저 곁에 머무르며 지금 이 상태를 방해하지 않습니다.


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분석하거나 정답을 찾기 위해 마시기보다,
말을 조금 줄이기 위해 와인을 선택합니다.
향과 맛을 설명하지 않아도, 이 시간이 조금 느려졌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순간이 됩니다.


음악과 와인을 함께 두는 이유는 둘이 닮아 있기 때문입니다.
둘 다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으며,
지나간 뒤에야 그 존재를 또렷하게 느끼게 됩니다.


음악은 연주가 끝난 뒤에 남고, 와인은 삼킨 뒤에 남습니다.
우리는 그 여운을 통해 방금 무엇을 들었고, 무엇을 마셨는지를 천천히 이해합니다.


이 점에서 음악과 와인은 결과보다 과정에 가깝고, 정답보다 상태에 가깝습니다.


프라하에 살고있는 13년동안, 이 감각은 더 분명해졌습니다.

이 도시는 음악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공연장은 일상의 연장선에 있고,
와인은 특별한 날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늦은 오후에 음악을 틀고 와인을 한 잔 마시는 일은
삶을 더 잘 살기 위한 기술이라기보다,
삶과 잠시 거리를 두는 방법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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