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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래식타임 Jan 25. 2022

음악으로 보는 영화『기생충』(1) - '진짜 바로크'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 중심으로

 

영화 기생충을 안 본 사람은 없어도 이 영화에 클래식 음악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잘 모르곤 한다.

기생충에는 17,18세기 유럽의 상류층이 즐겼던 바로크 음악풍 선율이 종종 흘러나오는데..



영화의 또 다른 관전 포인트가 될 음악!


영화 기생충에 사용된 바로크풍 음악 중에 '진짜 바로크 음악'은 무엇이며 '가짜 바로크 음악'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 중에서도 이번 편에서는 '진짜 바로크' 음악에 대해 살펴보고자 하니 이 글을 통해 클래식 음악을 새롭게 즐길 수 있길 바란다.





아카데미 역사상 비(非) 영어권 영화 최초 4관왕 수상 '기생충'





2019년 상반기, 한국 영화 100여 년 역사에 한 획을 그으며 전 세계적으로 뻗어나간 영화가 있다.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 92년의 미국 아카데미 역사상 한국 영화 최초인 동시에 아시아 최초 4관왕(작품상 · 감독상 · 각본상 · 국제영화상)의 영예를 안으며 이후에도 K-콘텐츠의 위상을 한껏 끌어올리고 있다. 이 영화는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가족과 대저택에 사는 부자 가족을 등장시켜 암울한 사회상을 대변하며 빈부격차, 부의 양극화 등 인류 보편의 문제점을 블랙코미디로 잘 버무려냈다는 점에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봉준호 감독은 ‘봉테일’이라는 수식어답게 영화의 모든 요소와 장치들 하나하나에도 디테일을 놓치지 않았는데. 그중에서 배경음악 또한 예외가 아니다. 기생충에는 헨델이 작곡한 바로크 음악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2곡이 등장하며 영화의 핵심 주제인 빈부격차, 계급 간의 차등에 대해 조명하고 풍자적인 효과를 더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 기생충에 사용된 클래식 음악부터 알아보기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2막 아리아  <용서받지 못한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 (Spietati, io vi giurai)      

3막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  (Mio carobene) 




2막 아리아 <용서받지 못한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 (Spietati, io vi giurai)      





3막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  (Mio carobene) 












2. 음악은 영화에 어떻게 사용되었나?



영화에서 사용된 클래식 음악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선 '듣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 알고 봐야 하는 것. 먼저, 영화의 전반적인 서사와 핵심 주제를 먼저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하는데, 기생충에서의 스토리 전개를 현대사회에서의 사회계급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보여주는 사건 및 장면을 중심으로 살펴보며 영화에서 클래식 음악이 사용된 장면을 조금 더 집중해 보자.



영화는 전원 백수인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가 고액 과외 면접을 위해 박사장 네 집에 발을 들이면서 시작된 두 가족의 만남이 걷잡을 수 없는 사건으로 번져가는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영화 <기생충>은 반지하에서 보이는 바깥의 장면으로 시작되는데, 봉준호 감독이 이 영화에서 얘기하고 있는 ‘계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오프닝 장면은 기택 일가가 사는 반 지하의 창을 집안에서 바라보는데, 반 지하의 창이 시작되는 지점은 바깥 지면과 거의 맞닿는다. 이를 일종의 ‘선’으로 간주할 수 있다. 반 지하 창문틀과 지면의 선이 만나는 접점의 선은 곧 박 사장이 여러 번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선을 넘지 말아야 한다’는 말과 연관이 있다. 반 지하가 위치한 지면과 창문틀이 근사치로 겹치는 선은 기택 일가의 자리, 즉 사회적 위치와 계급을 의미하는 일종의 시각적인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윤지선, "영화 기생충 OST에 반영된 ‘계층’의 의미와 그 음악적 전개." 문화와 융합 42.3 (2020): 65-97)



기택네 반지하방에서 시작된 이 이야기는 부잣집인 박 사장(이선균)네 계단을 타고 오른다. 계급의 격차는 수직의 이미지로 뚜렷하게 드러난다. 전원 백수로 살 길이 막막한 기택네 가족은 휴대폰도 끊기고, 비좁은 화장실 변기에 올라앉아 근처에 잡히는 와이파이를 쓰며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고 있다.





장남인 기우에게 명문대에 다니는 친구가 박사장 집의 고액과외를 넘겨주는 것을 계기로 기우는 학력까지 위조하며 과외 자리를 맡게 되고, 곧이어 박사장 네 집에 동생 기정을 미술 선생으로, 전에 일하던 운전기사와 도우미까지 계획적으로 내 쫒으며 아버지인 기택은 운전기사로, 기택의 아내 충숙은 도우미로 그 집에서 일을 하게 된다.





이때 영화에서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용서받지 못할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Spietati, io vi giurai)’ 가정부 충숙이 박 사장 딸 과외 교사인 아들 기우에게 과일을 가져다주며 귀를 잡아당기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그 후 다송이는 퇴근하고 온 아빠(박사장)에게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면서 운전기사인 기택은 짐을 들고 거실에서 도우미로 일하고 있는 충숙과 마주치게 된다. 그런데 이때, 다송이는 충숙과 기택의 냄새를 맡고 둘이 냄새가 똑같다며 제시카 선생님(기정)한테까지도 같은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서서히 음악은 페이드 아웃된다.



여기서 말하는 ‘냄새’ 또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계급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중 하나인데, 이외에도 부엌 지하실에서 문광과 충숙네 가족에게 일어난 사건을 통해서 ‘지하 벙커’라는 공간의 의미가 계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하실에서의 사건 이후로 기택네 가족은 부부가 잠들 때까지 테이블 아래에서 기다리다 겨우 집에서 빠져나오게 되며 그 후, 기택네는 폭우가 내리는 가운데 자신들의 반지하 집까지 옷이 흠뻑 젖으며 내려간다.





이 장면은 특히, 영화에서 가장 계급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빗물의 물줄기가 아래로 쏟아지듯 흘러 내려가는 장면을 영화에서도 클로즈업하여 ‘하강’의 이미지를 강조하고 있다.



집에 도착해보니 반지하인 집은 이미 물에 잠겨있었고 기택네는 수재민들을 위해 체육관에 자리를 마련한 곳에 하루 묵게 된다. 그 후, 다송이 생일 파티를 열기로 한 박사장네집에서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기우는 지하로 돌을 가지고 가는데 이 돌 마저 기우는 손에서 놓치고 만다. 이때 지하로 내려가던 기우는 금세가 줄로 목을 당겨 도망가다 넘어지면서 금세는 돌로 기우를 내려찍게 되고, 바로 다음 장면으로 박사장 네 집 마당에서는 평화롭게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bene)’를 부르며 다송이의 생일 파티를 즐기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칼부림이 나고 살인을 저지르는데 순식간에 파티는 아수라장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다시 기우는 여느 때와 같이, 반지하에서 살아가고 있는 모습으로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마무리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3. 음악의 의미와 함께 다시 보기




- 음악으로 보는 영화의 재발견




기생충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클래식 음악 2곡과 영화 장면을 같이 보고 들으며 영화의 내용과 음악이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들어보는 것 또한 새로운 측면과 관점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되어 흥미로운 지점이다. 영화 '기생충'과 헨델이 작곡한 바로크 음악인 오페라 로델린다의 아리아 두 곡을 줄거리와 함께 살펴보자.



영화 기생충에서 사용된 진짜 클래식 음악인 헨델의 오페라 <로델린다>이탈리아 롬바르디아 왕국의 왕비 로델린다가 남편의 왕좌를 노리는 세력에 맞서 싸워 행복을 찾는다는 내용이며  랑, 배신, 모반, 용서, 정절이라는 모든 요소가 담겨 있는 오페라이다.



2막 아리아 ‘용서받지 못할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Spietati, io vi giurai)’ 



오페라 <로델린다> 줄거리 이해를 위한 인물관계도



영화에서 사용된 2막의 아리아가 바로 헨델 오페라 로델린다의 줄거리를 잘 나타내고 있는 음악이다.

잠시 로델린다의 줄거리를 보자.



(1막 줄거리 생략…)


오페라 <로델린다> [제2막]  줄거리

자문관 가리발도는 에두이제의 태도에서 그녀가 대장군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왕비 로델린다는 협박하는 대장군에게 한 가지 조건을 들어주면 결혼을 하겠다고 제안한다. 자기가 보는 앞에서 대장군이 직접 왕자를 죽여달라는 것이다. 대장군은 차마 결혼할 여인의 어린 아들을 어미 앞에서 죽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 중간 생략


한편 왕궁 마구간을 거닐던 에두이제가 우연히 전왕을 만난다. 전왕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에두이제는 말할 수 없이 기뻐하며, 전왕이 걱정하는 것처럼 왕비의 정절이 변한 것은 아니라면서 전왕의 오해를 풀어준다.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우눌포가 왕비를 데리고 온다. 전왕과 왕비가 감격적인 해후를 하지만, 대장군이 병사와 함께 나타나 전왕을 체포하고 옥에 가둔다. 전왕은 곧 처형당할 운명이다.




영화에서는 충숙까지 기택네 가족 모두 박사장 네 집안에 위장취업에 성공하며 새 가정부가 된 충숙이 박 사장 딸 과외 교사인 아들 기우에게 당당히 과일을 가져다주며 귀를 잡아당기는 장면부터 2막 아리아 ‘용서받지 못할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Spietati, io vi giurai)’ 가 사용된다.



이를 통해 본다면, 오페라의 줄거리와 영화 장면 자체는 큰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2막 아리아 ‘용서받지 못할 자여, 나는 맹세했노라(Spietati, io vi giurai)’




3막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bene)’



3막에서는 우눌포와 옷을 바꾸어 입는 바람에 전왕의 옷에도 우눌포의 피가 묻어있었는데 이것을 본 왕비는 남편 베르타리도가 죽은줄 알았던 것. 하지만 이후 남편과 재회하여 로델린다가 사랑의 기쁨을 노래한다. 이때 로델린다가 부르는 노래가 바로 3막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bene)’로, 흩어졌던 가족이 다시 모이고 모든 게 제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해피엔딩을 향한 아리아이다.

 


3막 아리아 ‘나의 사랑하는 이여(Mio carobene)’



하지만 영화에서는 박사장 네 집에서 다송이 생일 파티가 열리고 성악가가 첼로 반주에 맞춰 노래를 하는 장면에서부터 근세가 기정이를 칼로 찔러 파티가 곧 아수라장이 되는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 이 곡이 사용되며 영화 기생충에서 이 아리아는 비극으로 이어지는 장면에 사용되는 음악이다. 오페라 로델린다의 해피엔딩 이야기와는 반대되는 것이다. 이는 『기생충』 성악가 역 뮤지컬 배우인 이지혜의 한 뉴스 인터뷰와 국내 학술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오페라 주인공이) 아들과 남편과 함께 부르는 기쁨의 아리아예요. 나중에 전조 되는 (단조로 바뀌는) 부분을 감독님께서 그 음악적 부분을 잘 살리셔서 영화에 입히신 걸 보고, 감독님이 정말 다 계획이 있으셨구나….
- 기생충 성악가 역 뮤지컬 배우(이지혜) 뉴스 인터뷰
 
" 파티 참석자가 부르는 헨델의 오페라 작품 <로델린다(Rodelinda)>(HWV19) 제3막에 나오는 곡 <Mio Caro Bene(나의 사랑하는 연인이여)>의 멜로디가 소프라노의 높은 음역으로 흐른다. 이 장면에서 스코어가 아닌 라이브 연주라는 설정을 한 것은 다가오는 절정 부분을 더 생동감 있고 충격적으로 그리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파티에 등장한 근세의 돌발 칼부림으로 라이브 연주가 갑자기 끊어지면서 극한의 공포감을 전해준다. 이때 <피와 칼(Blood and Sword)> 트랙이 나오는데, 트랙의 시작 부분은 마치 히치콕 영화 음악의 작곡가 버나드 허먼(Bernard Herrmann, 1911-1975)의 스코어에서 느낄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기택의 감정선은 첼로 솔로가 맡았다. <피와 칼>은 기정을 찌른 근세에 대한 분노보다 근세의 냄새를 혐오한 박 사장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충동적 분노의 분출을 카오스적인 오케스트라 음향을 뚫고 나오는 첼로의 독주 라인으로서 처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윤지선, "영화 기생충 OST에 반영된 ‘계층’의 의미와 그 음악적 전개." 문화와 합합 42.3 (2020): 65-97.)




* 참고 자료

https://newsis.com/view/?id=NISX20200201_0000905130&cID=1060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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