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닮아, 무지개가 되고 싶었던 아들

막지 않았더니, 스스로 돌아왔다

가정통신문의 반란

아들이 중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 해맑은 얼굴로 가정통신문을 들고 왔다.

이 녀석이? 돈 내라는 통신문 외에는 보여주지도 않던 녀석이?

"엄마, 학교 규정이야. 읽어봐!"

해맑게 웃으면서, 뭔가를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내 시선을 종이 위로 끌어당겼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두려움 반, 설렘 반. 도대체 뭐길래.

아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읽었다.


두발자유화 시행 안내: 염색, 파마 가능. 단, 원색 불가.


아. 학생 인권 강화 흐름에 맞춰 규정이 바뀌었구나.

아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엄마, 염색할래. 미용실 가자!"



협상의 기술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미용실에서 염색은 자기가 돈 버는 사람만 가는 거야. 염색약 사오면 엄마가 해줄게."

크게 한 판 협상했다.

사실 아들이 염색에 이렇게 꽂혀 있는 건 나 때문일 수 있다. 나는 스무 살 이후로 검은 머리를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 정말로, 무지개를 다 얹어봤다.

예술하는 사람이냐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화려한 머리색을 시도했었으니, 그 DNA가 아들에게도 흘러간 모양이다.


우리는 마트에 갔다. 내가 해주기 가장 쉬운 염색약을 골랐다.

밝은 갈색.

엄마의 무지개에 비하면 아주 순한 선택이었다.



흡족한 등교

염색을 멋지게 마친 아들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머리를 넘기더니 흡족한 표정으로 학교에 다녔다.

나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우리 사회가 많이 변했구나.

라떼는 말이다. 귀 밑 3cm, '몽실이' 머리로 학교를 다녀야 했다.

염색은 꿈도 못 꿨고,

머리카락 길이가 기준을 넘으면 선도부에게 가위로 잘리던 시절이었다.

그 시절의 나는 규칙이 바뀔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지금,

내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머리색으로 당당하게 교문을 지나고 있다.

시대가 변한 거다.


한 1~2달,

아들의 밝은 갈색 머리 시절은 평화로웠다.


선생님의 조심스러운 한마디

학교 상담을 갔던 날이었다.

담임선생님이 조심스레 말을 꺼내셨다.


"어머니, ○○이 머리에 대해 말씀드릴 게 있어요."


심장이 철렁했다.


"선생님, 무슨 문제가 있을까요?"

"○○이 머리가 너무 밝아서요..."


나는 솔직하게 말씀드렸다.


"사실 저는 염색을 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규정에 원색만 안 된다고 해서 밝은 갈색을 샀거든요.

제가 잘못 안 걸까요?"


"아니요, 그게... 사실 학생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많이 나뉘어서요.

앞으로 규정이 바뀔 예정이에요. N호 이하만 가능하다고요."


"아, 네. 선생님, 아이랑 이야기해볼게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주시민의 교실

그 순간, 나는 우리 아들 학교가 정말 멋진 학교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이 너무나 좋은 경험을 한 거다.

생각해보면, 이 과정 자체가 하나의 민주주의 수업이었다.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규정이 바뀌었다.

실제로 운영해보니 문제점이 드러났다.

다시 의견을 수렴해 규정이 수정됐다.


이 경험이 얼마나 값진 건지, 교육학자로서 가슴이 뛰었다.

나도 강의 시간에 늘 이야기한다.

학교의 규칙은 학생들이 함께 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누구나 복종을 원하지 않는다.


선생님이 만들어둔 규칙을 "지켜!"라고 하는 건,

사실 복종을 요구하는 거다.


반대로, 규칙을 학생들의 의견을 수렴해 함께 만들었다면?

우리가 만든 것이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지키게 된다.


그래서 규칙을 함께 만들고,

누군가 규칙을 어겼을 때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만든 규칙이잖아. 규칙에 따르면 이렇게 해야 해."


이게 진짜 훈육이다.



검정 머리의 반전

우리 아들이 지금은 무슨 머리색이냐고?

다행히도,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밝은 머리가 너무나 안 어울리는 외모를 가졌다.

본인도 깨달은 모양이다.


헤어스타일이 완전히 자유로운 고등학교 졸업 이후,

실제로 검정 머리를 찰랑거리며 다닌다.


엄마는 스무 살부터 40대까지 온갖 색을 머리에 올렸는데,

아들은 딱 한 번의 밝은 갈색 경험으로 검정 머리에 안착했다.


뭐, 지금은 잠깐 군인이라 빡빡한 머리이지만.

전역하면 다시 검정 찰랑이로 돌아오겠지.



결국, 경험이 답이다

돌이켜보면, 염색 한 번이 아들에게 참 많은 걸 알려줬다.

하고 싶은 걸 해봐야 자기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안다.

규칙이 바뀌고 또 바뀌는 과정을 겪어봐야 규칙의 의미를 이해한다.


부모가 막기만 하면 아이는 평생 궁금해한다.

한 번 해보게 하면, 의외로 스스로 답을 찾는다.


밝은 갈색 머리가 안 어울린다는 사실.

그건 엄마가 백 번 말해줘도 소용없었을 거다.

거울 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스스로 검정으로 돌아왔으니까.

그게 경험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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