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던 해. 그 해가 21년 육아 중 가장 힘들었다.
매일 아침, 학교 앞까지
늘 학교 가기를 싫어하고 아침에 일어나길 힘들어했던 아들. 마음 같아선 때려서라도 야단을 치고 싶었지만, 폭력적인 행동을 학습시키면 안 된다는 신념으로 꾹 참았다.
나는 매일 아침 아이를 깨워 학교까지 태워다 주고, 강의를 하러 갔다.
야간 강의가 많아 집에 돌아와 다음날 강의준비 하다보면 새벽 3~4시.
아침에 8~9시까지 자도 되는 날인데, 아들을 깨우고 데려다주려면 6시엔 일어나야 했다.
늘 피곤했다.
울화통이 터진다는 게 무슨 말인지, 눈물을 삼킨다는 게 무슨 말인지, 그때 처음 알았다.
도망가지 마라
내가 너무 힘들어하니까, 나와 육아를 처음부터 같이했던 언니가 나보다 더 걱정했다.
"애 버리고 도망가지 마라..."
설마... 하지만 순간 고민도... 아, 이건 비밀.
몸이 먼저 무너졌다
어느 날, 머리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갔더니 뇌수막염이라고 했다.
검사를 하고 또 하고. 대상포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있다가 뇌수막염이 된 거라고.
10여 일을 입원했다.
퇴원 후, 이제 좀 내려놓고 살아야지... 한숨을 돌리고 있을 때.
청천벽력 같은 메시지가 왔다.
"어머니 안녕하세요? ○○ 담임입니다. 현재 올해 ○○의 결석 일수는 40일입니다. 1년에 결석할 수 있는 최대 일수는 60일입니다. ○○가 결석하지 않고 학교에 잘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ㅠㅠ 조퇴나 지각은 카운트되지 않으니 조퇴나 지각을 이용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담임 ○○○ 드림"
40일
4일도 아니고, 40일.
나는 매일 새벽에 일어나 학교에 데려다줬는데.
그 아이는 학교에 갔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자고 있었다.
40일 동안.
그 아이는 집에 있었다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선생님, 학생이 학교를 안 오면 저한테 말씀해 주셨어야죠... 저는 매일 학교에 데려다주고 왔습니다."
"죄송해요."
그 한마디가 끝이었다.
죄송해요, 그 한마디
솔직히 원망스러웠다. 40일 동안 단 한 번의 연락도 없었다니.
하지만 돌아서며 생각했다. 저 선생님도 힘드셨겠구나. 말 안 듣는 아이, 예민한 학부모, 쏟아지는 업무. 내가 가르치는 학부생들 나이인데. 나라도 어떻게 했을까.
1학년 때 담임과의 갈등 이야기를 들으셨는지, 아이를 그냥 내버려 두신 것 같았다.
가정과 학교가 협력자가 되어야 하는데, 그 단절이 있었던 거다.
가장 큰 잘못은 나에게, 우리 아들에게 있기에 그냥 인정했다. 그다음부터 아이가 학교에 오지 않거든 꼭 연락을 달라고만 했다.
혼나고 싶었던 아이
아들에게 물었다.
"왜 그랬어?"
"한번 학교에 안 갔는데 엄마한테 연락이 안 가길래..."
"우리 선생님 엄청 이쁜데, 우리한테는 관심이 없어. 아무 말도 안 해."
그 말에 할 말을 잃었다.
혼나고 싶었던 거구나. 누군가 "왜 안 왔어?"라고 물어봐 주길 바랐던 거구나.
아이들은 무관심보다 잔소리를 덜 두려워한다. 야단을 맞아도 "나를 보고 있구나"라는 안도감이 있으니까.
아들은 40일 동안 아무도 자기를 보지 않는다고 느꼈던 거다.
매일 학교 앞까지 데려다주면서, 나는 정작 이 아이의 마음은 데려다주지 못했다.
마음은 데려다주지 못했다
그 불안함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미안했다.
선생님의 어려움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해서 죄송했다.
그런데 그 순간, 나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결석 일수의 쓸모
그래도 모든 일이 나쁜 건 아니었다.
해병대 가고 싶다던 녀석이 계속 지원에 떨어졌는데, 아무래도 그때 결석 일수가 한몫한 것 같다.
우리 엄마는 너무 좋아하셨다.
"손주가 해병대 가면 어떻게 발 뻗고 자냐"라고.
지금이야 웃으며 이야기하지만,
그 해는 정말 힘든 한 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