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에서 걸려온 두 통의 전화
아들이 어린이집에 다니던 때 이야기입니다.
참고로 대학원 입학 전이에요.
저는 그냥 스물몇 살의 어린 엄마였습니다.
교육학이 뭔지도 몰랐고, 아동 발달이 뭔지도 몰랐어요.
그냥 애 키우랴, 생활하랴, 하루하루 버티는 게 전부였던 시절.
어느 날, 어린이집 선생님께서 전화를 주셨어요.
화면에 뜬 '어린이집 선생님' 글자를 보는 순간
심장이 철렁했습니다.
"어머니, 오늘 00 이가 친구를 때렸어요."
... 네?
다행히 그 친구가 다치진 않았대요.
어린이집에서도 주의를 줬으니까 가정에서도 함께 지도해 달라고...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청천벽력이었어요.
우리 아들이?
때렸다고?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내가 이 아이를 잘못 키운 걸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이를 막 혼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뭐라고 말해야 하지?
아무것도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그 친구 어머님 연락처를 받았습니다.
전화기를 들고 한참을 망설였어요.
뭐라고 말씀드려야 하지?
어떻게 사과드려야 하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다행히 그 어머님이 너그럽게 받아주셨어요.
"괜찮아요, 애들이 그럴 수도 있죠."
원만하게 마무리됐습니다.
그런데요.
제 마음은 마무리가 안 됐어요.
그날 밤, 아들 재우고 혼자 앉아 있었습니다.
내. 가. 잘. 못. 키. 웠. 다.
이 문장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어요.
분명 잘 키우려고 했는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는데.
근데 우리 아이가 친구를 때렸다고?
'나 때문인가?'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다른 엄마들은 안 이러는데, 왜 나만?'
자책이 끝없이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요.
생각보다 오래갔어요.
몇 달이 지나도 문득문득 떠올랐습니다.
교육학자가 된 지금의 제가
10여 년 전의 저에게 한마디 할 수 있다면요.
"니 잘못 아니야."
진짜 이 말 해주고 싶어요.
그때의 나한테.
스물몇 살, 아무것도 모르고 울먹이던 그 어린 엄마한테.
사실 어린아이들은 갈등을 잘 해결할 줄 몰라요.
의견이 다를 때가 생기잖아요.
"나도 이거 갖고 놀래!"
"싫어, 내 거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이들은 배운 적이 없어요.
그러다 보면
만화에서 본 행동을 따라 하기도 하고
TV에서 본 장면을 흉내 내기도 하고
본능적으로 공격적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어요.
손이 먼저 나가는 거예요.
말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니까.
이건 아이 잘못도, 부모 잘못도 아닙니다.
그냥 아직 배우지 못한 것뿐이에요.
그때의 저는 그걸 몰랐어요.
그래서 그렇게 자책했던 거고요.
그때 제가 알았더라면 좋았을 게 하나 있어요.
이런 상황이 생겼을 때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라는 것.
"때리는 건 절대 안 되는 행동이야."
"화가 났구나. 근데 다음엔 이렇게 해보자."
차분하게, 단호하게, 대안을 알려주는 것.
이게 핵심이에요.
만약 이 상황에서 소리 지르고 야단쳤다면요?
아이는 다음에 화났을 때 어떻게 할까요?
똑같이 소리 지르고, 똑같이 공격적으로 나와요.
왜냐하면
부모가 화났을 때 대처하는 모습이
미래에 자녀가 분노 상황에서 보일 태도랑 연결되거든요.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배워요.
말로 하는 훈육보다
부모가 실제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 배워요.
무섭죠?
저도 그때 알았으면 덜 소리쳤을 텐데.
덜 야단쳤을 텐데.
지금도 후회돼요, 솔직히.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또 전화가 왔습니다.
핸드폰 화면에 '어린이집 선생님' 뜨는 거 보고
심장이 또 쿵 내려앉았어요.
두근두근.
'이번엔 또 뭐지?'
'또 때린 건가?'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런데요.
이번엔 누가 저희 아들을 때렸대요.
약간 손톱자국이 남긴 했는데
선생님이 바로 약 발라주셨다고.
전화 끊고 나서
정말 신기한 일이 일어났어요.
제 마음이 놓이더라고요.
이상하죠?
우리 아이가 맞았는데.
물론 우리 아이가 많이 다치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근데 그것만은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전화로 계속 미안해하셨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해요. 제가 더 잘 봤어야 하는데..."
우리 아이 걱정을 진심으로 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때린 아이 어머님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아이가..."
그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어요.
저도 그랬었으니까, 그 마음 알겠더라고요.
"괜찮아요, 어머니. 애들이 그럴 수도 있죠."
제가 그때 들었던 말을 그대로 해드렸어요.
그날 저녁, 어린이집에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손에 작은 상처가 있었어요.
근데 아들 표정이 이상한 거예요.
우울하거나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뭔가 신나 있는?
"엄마!!!"
아들이 손을 쫙 펴서 보여줬어요.
"선생님이 예쁜 반창고 붙여주셨어!"
캐릭터 반창고였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뽀로로 캐릭터.
그 반창고를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아들은 깔깔깔 웃고 있었어요.
그 모습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아.
다쳤는데도 아이가 괜찮은 건
선생님이 잘 케어해 주셨기 때문이고
상대 부모님이 진심으로 사과해 주셨기 때문이고
주변에서 다 잘 감싸줬기 때문이구나.
그리고 동시에 떠올랐어요.
그때 저한테 사과하셨던 그 어머님.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얼마나 자책하셨을까.
저처럼 밤새 울으셨을까.
이 경험을 하고 나서 깨달았습니다.
가해학생 부모님이 오히려 더 상처받으셨을 수도 있다.
피해자 부모는요.
물론 화가 나고, 속상하고, 우리 아이가 걱정되죠.
근데 주변에서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고, 사과받고
그러다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풀려요.
근데 가해자 부모는요?
사과하고, 죄송하다 하고, 고개 숙이고
집에 와서는 자책하고
'내가 뭘 잘못했지?' 괴로워하고
그 감정을 어디다 풀 데도 없어요.
위로해 주는 사람도 없고요.
저도 그랬으니까.
그 마음 알아요.
물론 막무가내인 가해학생 부모님도 있어요.
"우리 애가 왜요? 증거 있어요?"
이러시는 분들.
그런 분들은 우리가 답답해할 대상이 맞아요.
근데 대부분은요.
겉으로는 담담해 보여도
속으로는 무너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 마음 이면을 읽어줄 필요가 있어요.
학교에서 일이 생겨서 불려 온 가해학생 부모님.
교실 의자에 앉는 순간
그분들 마음속엔 이런 생각이 있을 거예요.
'선생님이 우리 아이 미워하시겠지...'
'문제아 부모로 찍혔겠지...'
'앞으로 우리 아이한테 더 안 좋게 대하시겠지...'
이미 방어적인 상태로 오시는 거예요.
마음의 벽을 잔뜩 세우고.
그 상태에서 선생님이
"00 이가 이런 문제가 있어요. 이런 잘못을 했어요."
이렇게 시작하면요?
그 벽은 더 높아져요.
협력?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예비교사들한테 강의할 때 늘 이 말을 해요.
"가해학생 부모님도 상처받은 분입니다."
그 마음을 먼저 풀어주세요.
어떻게요?
가해학생이지만, 그 아이의 장점을 찾고 찾아서 먼저 이야기해 주세요.
"어머니, 00 이가 목소리 좋은 거 아셨어요?"
"00 이가 큰 소리로 '조용히 해!' 해주면요, 애들이 진짜 조용해져요."
"제가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00이 덕분에 수업하기 훨씬 수월해요."
이렇게요.
처음엔 의아해하세요.
'어? 혼내시려고 부르신 거 아니었어?'
근데 표정이 점점 달라져요.
굳어있던 얼굴이 풀리고
눈에 물기가 맺히시는 분도 계세요.
'아, 우리 선생님이 우리 아이 미워하시는 게 아니구나.'
'우리 아이의 좋은 점도 봐주시는구나.'
그래야 협력할 수 있어요.
그래야 "그런데 이런 부분은 같이 고쳐나가면 좋겠어요"라는 말이 들려요.
그래야 그 아이의 달라질 모습을 향해 같이 갈 수 있어요.
학교폭력 같은 갈등 상황은요.
사실 그 누구 잘못도 아닐 때가 많아요.
아이들은 아직 배우는 중이에요.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내 마음을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하고
누군가를 다치게 하기도 하고
다치기도 하고
그러면서 배워가는 거예요.
아이들만 배우는 게 아니에요.
부모들도 배워요.
선생님들도 배워요.
저도 그때 두 통의 전화를 받으면서 배웠어요.
갈등은 끝이 아니에요.
성장의 시작일 수 있어요.
물론 그 순간은 힘들어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내가 다 잘못한 것 같아요.
근데 그 시간이 지나고 나면
분명 뭔가 배운 게 있어요.
아이도, 부모도, 선생님도.
10년 전, 어린이집에서 걸려온 전화에 울먹이던 저도
그렇게 조금씩 배워왔으니까요.
혹시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분 중에
저처럼 "내가 잘못 키운 걸까" 자책하고 계신 분 있으시면요.
당신 잘못 아니에요.
그냥 아이가 아직 배우는 중인 거예요.
그리고 당신도 배우는 중인 거예요.
같이 배워가면 돼요.
천천히.
오늘은 이만.